KPI뉴스 - 가입자에겐 '대박' 보험사엔 '위험'한 치매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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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자에겐 '대박' 보험사엔 '위험'한 치매보험

손지혜
기사승인 : 2019-03-12 18:16:15
상품 경쟁력 위해 보험금 한도 높여
"이런 식으로는 상품 판매가 끊길 수도"

지난 연말 판매되기 시작한 치매보험이 인기다. 작년 11월 현대해상화재보험이 출시한 치매보험은 지난 2월까지 총 3만 4480명 가량의 가입자를 모았다. 메리츠화재도 같은 달 치매보험 판매를 시작해 이달 6일까지 가입자가 3만 명에 육박했다. KB손해보험은 1월 중순에 상품을 출시해 1만 5300건을, DB손해보험도 역시 1월부터 3월 초까지 약 8600건을 팔았다. 손해보험업계 1위인 삼성화재는 대형 손보사 중 가장 늦게 상품을 출시했는데 약 2주 만에 1만 3000여 건을 판매했다.

 

이 보험상품의 인기는 후한 보장내용 때문이다. 경증치매에도 1000만~3000만 원의 보험금을 보장한다. 가입자에게 꽤 매력 있는 보험상품이다. 가입자에게 '좋은 상품'이라는 건 보험사 입장에선 '위험한 상품'일 수 있다는 의미다. 보험사가 예상치 못한 거액의 보험금 지급 사태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험 경고등은 이미 켜졌다.

 

▲ 작년 말 출시된 치매 보험의 인기는 후한 보장내용 때문이다. 가입자에게 '좋은 상품'이지만 보험사 입장에선 '위험한 상품'일 수 있다. [UPI뉴스 자료사진]


재보험 계약 거절당한 치매보험

"최근 치매보험이 봇물처럼 나오고 있지만 경증치매 환자 데이터가 부족한 실정이다. 리스크 측정에 실패했을 경우 향후 보험사에서 손실 볼 가능성이 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치매보험의 위험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해외 재보험사 RGA재보험의 경우 보험금이 너무 커 위험하다며 메리츠화재의 경증 치매 보험에 대한 재보험 계약을 거절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재보험사는 위험도가 높으면 보통 재보험료를 더 받지 아예 인수거절을 하진 않는다"면서 "치매보험 인수 거부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그 만큼 위험도가 크다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에서 가입 한도를 올리는 것도 문제다. 메리츠화재의 경우 특판으로 경증 치매에도 진단금 3000만 원을 보장하는 상품을 출시했다. 현대해상은 경증 치매 상품의 최대 가입 한도를 2월에 기존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으로 올렸다. 만약 경증치매로 1만 명이 각각 보험금 2000만 원을 청구한다면 총 지급보험금은 2000억 원이 된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16년 기준 65세 이상 치매 환자는 74만9000명으로 노인 10명중 1명꼴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중소형사 같은 경우 대형사보다 상품을 공격적으로 만들기 때문에 한도가 높다"면서 "이런 상품들은 결국에는 (보험금 지급) 폭탄을 맞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식으로 지급하다 보면 중간에 상품 판매가 끊길 것 같다는 얘기가 보험 업계에서는 종종 나왔다"라고 귀띔 했다. 한화생명의 경우 '간병비 걱정 없는 치매보험'을 다음달 개정해서 재판매한다. 한화생명 관계자는 "평균수명이 연장된 경험생명표를 다음달부터 적용해 상품을 개정하는 것"이라면서 "빠르면 4월 말부터 판매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 분쟁이 빈발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금감원 관계자는 "경증에 대한 보험금 지급 케이스가 많지 않고 경증과 중증을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의사의 몫"이라면서 "보험회사가 경증 치매를 다른 질병 때처럼 제3의 기관에 가서 또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나오면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고액 보험금 노려 중복가입 사례도

경증치매를 판단하는 기준은 모호하다. 치매를 판정할 때 국가에서 정하는 객관적 등급인 장기요양등급을 이용하지 않아서다. 대신 의사 소견을 근거로 하는 치매척도 (CDR)를 사용한다. 의사가 경증치매라고 진단하면 보험사는 진단금을 지급해야 한다. 병원이 보험금을 위해 허위 진단을 하더라도 보험사가 가려내기 쉽지 않다. 중증치매의 경우에는 보험금 지급 분쟁시 화학요법 등의 객관적인 방법으로 진단할 수 있지만 경증치매는 발병 사실 입증이 어려워서다.

 

치매에 있어 경증과 중등도, 중증의 경계가 모호한 것도 문제다. 한 정신과 의사는 "경계에 있는 환자들이 있는데, 이들의 치매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피검사처럼 간단하지 않다. 또 백 명의 의사가 한 환자에 대해 똑같은 진단을 내리기는 어렵다"면서 "때문에 가능한 한 의학계에서 객관적으로 선별한 척도들을 기준으로 해서 경증, 중등도, 중증을 나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고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중복가입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암보험의 경우 타 보험사의 계약 유무를 확인해 가입금액을 제한하는 '업계 누적 가입한도'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치매보험은 아직까지 이런 제한이 없어 여러개의 상품을 가입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 선점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업계 누적 한도를 두게 될 경우 가망 고객을 빼앗길 수 있다"고 누적 한도를 두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설계사 이탈 막기 위해 판매수당 10배로 올려

보험사들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치매보험을 출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신규 수익원 발굴'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암보험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설상가상으로 보험사의 지난해 순익은 사상 처음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런 배경과 함께 치매보험 판매 수당이 10배가 된다는 점도 불붙은 상품 판매에 기름을 부었다. 첫달 보험료가 15만원~20만원(손보사 기준)이라면 보험대리점(GA)에 떨어지는 수당은 200만원에 달한다. 보험사들이 설계사 조직 이탈을 막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똑같은 상품을 팔게 된 배경이다.

한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회사에서 치매보험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상품인데 중소업계에서 시작하다보니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해 판매하게 됐다"면서 "위(경영진) 에서 수익이 나지 않아도 고객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상품을 출시하라는 주문이었다"고 말했다. "보험상품 자체가 비자발적인 상품이기에 젊은층에 보험사 브랜드를 미리 알려놓으려는 의도"라는 설명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험사들은 상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리스크가 커지는데도 상품의 최대 가입금액 한도, 즉 보험금 한도를 높인 것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후발주자들 이 상품경쟁력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이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최대 가입금액 한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KPI뉴스 / 손지혜 기자 sj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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