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짜인 각본대로? 기이한 금호석유화학 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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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인 각본대로? 기이한 금호석유화학 주총

손지혜
기사승인 : 2019-04-01 17:07:55
배임죄 논란 박찬구 회장 사내이사 연임 성공
형 박삼구 회장 퇴진과 대비

"출석 의결권 과반수와 의결권 있는 발행 주식 총 수 4분의 1 이상 찬성으로 박찬구 후보가 사내이사로 선임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짜 맞춘 듯 일사천리다. 반론은 없었다. 오로지 주주들의 "동의" 외침과 박수뿐이었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회장은 3월 29일 주주총회에서 그렇게 사내이사 연임에 성공했다.

박 회장은 배임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CEO(최고경영자)이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작년 12월 14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박 회장의 상고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2008∼2011년 23차례에 걸쳐 금호석유화학의 비상장 계열사인 금호피앤비화학의 법인자금 107억여 원을 아들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상무에게 담보 없이 낮은 이율로 빌려주도록 해 회사에 손해(약 32억 원)를 끼친 혐의가 '유죄'로 확정된 것이다.

 

▲  3월 28일 퇴진을 발표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왼쪽)과 3월 29일 주주총회를 통해 사내이사 연임에 성공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오른쪽) [뉴시스]


반대, 비판, 질문 3無…오로지 "동의" 외쳐

3월 29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서울청소년수련관. 김성채 금호석유화학 사장이 안건을 읽는다. 한 주주가 동의 의사를 밝힌다. 이어 나머지 주주들이 "동의"를 제창하며 손뼉을 친다. 그런 식이었다. 반대나 비판은커녕 질문조차 없었다.

"제3-2-1호의 안 사내이사 박찬구 선임의 건을 상정하겠습니다. 의견이 있으신 분 말해주시기 바랍니다." 김 사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남성이 우찬 목소리로 말했다.

"의장! 주주 ○○○입니다. 박찬구 사내이사 후보자는 2009년 이후에 회사가 경영정상화를 이뤄내는 데 크게 공헌했으며 이미 여러 차례 회사의 대표이사를 역임하면서 회사의 발전을 이뤄낸 장본인입니다. 투철한 책임감을 가지고 회사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따라서 본 주주는 의장께서 말씀하신 이사 선임에 대하여 원안대로 승인할 것을 정식으로 동의합니다!"

그러자 주주들이 일제히 "동의합니다!"라고 외친 후 박수를 보냈다. 누군가는 배임에 대한 비판을 할 법도 한데 일체 없었다. 재무제표 승인의 건, 이사 선임의 건, 이사 보수한도 승인의 건 등 다른 주요 안건들도 같은 방식으로 가결됐다.

요즘도 주총장에 '바람잡이' 심나

"이미 새벽 6시에 직원들이 자리에 다 앉아있고 나머지 사복 직원들이 문밖에서 입구를 막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주인데 주총장 못 들어가고 있다는 소리를 하면서….", "입구를 막고 있는 게 진짜인가요? 진짜라면 국민권익위원회와 국민청원 감입니다."…. 이날 네이버 주식 게시판에는 주총장에 입장하지 못한 주주들의 불만이 게재됐다.

사측이 '바람잡이'를 심어놓은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상장사 관계자는 "주총에서 우호 여론을 형성하고 의장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바람잡이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오전 8시 50분쯤 150여 석의 주총장은 꽉 차 있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벌개혁본부 권오인 국장은 "자리를 꽉 채워놓으면 들어오는 사람들도 한정되고 하니까 예전에는 회사 직원들을 앉혀놓은 적도 많았다"면서 "여전히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고 말했다.

주주총회 선물을 가지고 나가는 한 여성을 취재하려 하자 "저는 주주가 아니다. 다른 일로 왔다"고 답했다. 금호석 유화학 관계자는 "주주가 아니면 위임을 받으신 분이 오신 듯하다"라고 설명했다.


▲ 지난달 말, 네이버 주식 게시판에는 주총장에 대한 주주들의 불만이 쇄도했다. [네이버 증권 게시판]


"전자투표제 도입 절실한 사례"

후진적 주총 문화를 바꾸려면 전자투표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권오인 국장은 "문제의식을 가진 주주들이 많을 텐데 주총장에 가기 힘드니까 그런 목소리를 반영하기 어렵다"면서 "이런 맥락에서 전자투표제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투표제란 주주가 의결권을 행사하기 위해 직접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더라도 온라인을 통해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날 국민연금은 박찬구 회장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에 반대했을까. 그랬을 것이다. 이날 한진칼 주총에선 이사자격을 강화하는 정관 변경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대외협력단 대외소통팀 관계자는 "의결권 행사는 10% 이상 가지고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사전에 공개를 하지만 10% 미만인 경우 14일 이내에 국민연금기금 운용본부 홈페이지에 공시한다"고 말했다.

 

▲ 한 주주가 배임죄를 저지른 박찬구 회장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며 국민연금의 입장 표명을 촉구하고 있다. [네이버 증권 게시판]

박삼구 회장은 동생과 다른 길 택해

하루 전인 3월 28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금융시장 혼란 초래 등 모든 책임을 지고 퇴진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2002년 그룹 회장에 오른 이후 17년 만에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전날 저녁 박 회장은 서울 시내 모처에서 이동걸 산업은행장을 만났다. 아시아나항공의 조기 경영 정상화와 금융 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협조를 요청했다고 한다. 산업 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의 주채권은행이다. 이 회장은 "먼저 대주주와 회사의 시장 신뢰 회복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며 "시장의 우려를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의 방안을 마련해 제출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박 회장의 이번 결정은 결국 그룹 해체를 막기 위한 극약 처방으로 보인다. 사퇴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서라도 산업은행의 지원을 끌어내려 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유동성 문제에 시달리는 아시아나항공이 채무 불이행 사태에 빠지면 그룹이 해체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 있다.

 

KPI뉴스 / 손지혜 기자 sj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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