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사면초가 신세다. 경영권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주주가치 하락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손보기에 나선 '강성부 펀드'와 주주권 행사에 돌입한 국민연금이 협공 태세다. 이들은 조 회장 일가 퇴진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퇴진 압박 나선 '강성부 펀드'
KCGI, 일명 '강성부 펀드'의 공세가 매섭다. KCGI는 '행동주의(activism)'에 기반해 수익을 추구하는 기관투자자다. 적극적인 경영 참여를 통해 저평가된 주주가치를 끌어올려 투자효과를 극대화한다.
조 회장 경영권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은 KCGI가 행동을 개시하면서다. KCGI는 작년 11월 장내 지분 매수로 한진 그룹의 지주회사 한진칼 지분 9%를 확보하며 단숨에 2대 주주에 올랐다. 여세를 몰아 작년 12월 27일엔 한진칼 지분 1.81%(107만주)를 추가로 사들이며 지분 10%를 넘겼다. 경영 참여형 지분 매입의 최저 기준인 '10%룰'을 충족한 것이다.
KCGI는 사실상 '조양호 회장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KCGI는 1월21일 '한진그룹의 신뢰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 5개년 계획'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지배구조 개선 △경영 효율 제고 △사회책임 강화가 골자다. 여기에 "범죄행위를 저지르거나 회사 평판을 실추시킨 자의 임원 취임도 금지하라"고 촉구했다.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나선다는 최후통첩이다.
이들이 압박에 나선 명분은 '기업가치'다. 조씨 일가의 일탈과 비리로 기업가치가 추락하는 것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2014년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2018년 조현민 전 전무의 '물컵 갑질'과 진에어 등기임원 불법 재직 의혹, 조 회장 부인 이명희씨의 갑질 폭행과 폭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인하대 부정입학 의혹 등 조씨 일가의 일탈은 끊이지 않았다. 조 회장마저 27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로 현재 재판 중이다. 결국 한진 오너 일가의 비리와 일탈로 기업가치가 하락했으니 '경영에서 손 떼라'는 것이다.
그러나 KCGI가 가진 지분으로는 조 회장 경영권이 크게 흔들리진 않는다.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의 경우 최대 주주인 조 회장(17.70%)과 특수관계인들이 지분 28.93%를 가지고 있다. 한진은 한진칼(22.19%)과 조 회장(6.87%)을 비롯한 특수관계인 보유 지분이 33.13%다. KCGI가 한진칼과 한진의 2대주주이긴 하지만 각각 10.81%, 8.03%의 지분율로는 경영권에 제동을 걸기 쉽지 않다.

주주권 행동 나선 국민연금
이 상황에서 캐스팅보트로 주목받는 곳이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은 더 이상 '거수기'가 아니다. 지난해 '스튜어 드십 코드' 도입 이후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모드로 전환한 터다. 국민연금도 조 회장 일가가 비리와 일탈로 주주가치를 훼손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각종 오너리스크가 기금 수익성에 악향을 끼쳤기 때문에 주주권을 행사할 명분은 충분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1일 한진칼에 대한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의 지분 11.56%를 가진 2대 주주, 한진그룹의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 7.34%를 확보한 3대 주주다. 다만 대한항공에는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한진칼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수준으로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한다"며 "대한항공의 비경영 참여적인 주주권 행사는 최대한으로 하고 구체적인 방안은 다음 번에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엇갈린 결정은 국민연금 보유 지분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 7.34%를 보유 중인데 비해 대한항공은 11.56%를 갖고 있어 ‘10%룰’에 걸린다.
10%룰이란 한 기업의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게 되면 투자 사실과 목적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한 규정이다. 단순 투자라면 상관없지만 경영 참여 목적이라면 주주권 행사 전후 발생한 주식 매매 차익을 반환해야 한다. 해당 시행령은 경영참여를 목적으로 특정 기업의 지분을 10% 이상 보유한 주요 주주에 대해 △지분 변동사항 5일 이내 공시△6개월 이내 단기 매매차익 반환 등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경영에 관여해 얻은 기업 내부정보를 활용해 시세차익을 노리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다.
박 장관은 대한항공에 대해 경영 참여를 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 대해 "스튜어드십코드 운영의 근본적 목적은 기금의 수익성"이라며 "사안이 악화한다면 단기매매 수익을 포기하면서도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겠지만 그런 단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3월 주주총회서 표대결
이제 공은 두 달 뒤 열리는 한진칼 주주총회로 넘어갔다. 3월 열리는 주총에서 조 회장 일가 대 국민연금, KCGI의 표 대결이 펼쳐질 예정이다. 2대 주주인 KCGI는 조 회장 일가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31일 KCGI는 3월에 임기가 만료되는 석태수 대표의 연임 반대와 2명 사외이사, 1명 감사 선임 등을 담은 주주제안서를 한진칼에 보냈다.
국민연금은 KCGI와 ‘반(反) 조양호 일가’ 연합 전선을 구축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주주권 행사에 힘을 실어준 터다. 문 대통령은 1월24일 청와대 공정경제추진 전략회의에서 "앞으로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를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한진칼 1대 주주는 조 회장(보유 지분 17.7%)이고 친족·재단 소유 주식까지 합친 조 회장 일가의 지분은 28.7%에 이른다. 국민연금과 KCGI의 지분은 합쳐도 18.15%다. 뚜껑을 열기까지는 누가 승리할 지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국민연금과 KCGI의 ‘반(反) 조양호 일가’ 엽합전선에 여타 기관투자자들이 얼마나 동조할 것이냐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대기업 일가의 일탈행위가 지금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지적하면서 "한진 오너그룹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기 때문에 여타 주주들의 호응도 분명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PI뉴스 / 김이현 기자 ky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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