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 기반으로 노동시간과 근태 기록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A씨는 근로계약서 없이 일했다가 한달치 초과근로수당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토로했더니, '시간 써놓은 장부를 찍어서 신고하라'는 댓글이 달렸다.
카페 아르바이트생인 B씨 역시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두 달 일했다. 사장과의 마찰로 일을 그만두려고 보니 그동안 받지 못한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미지급 신고에 대비해 시간 기록지와 월급 내역을 챙겨뒀다.

내년부터는 이 같은 어려움이 한결 개선될 전망이다. 고용주 혼자 관리하던 시간 장부나 기록지가 블록체인 기반 앱을 통해 고용주-고용인-정부 사이에 공유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블록체인 공공선도 시범사업으로 채택된 '시간제 노동자 권익보호' 사업을 올해 말까지 구체화해 내년 초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알바생 권익보호에 도입되는 블록체인
흔히 '알바생'으로 불리는 시간제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집단이다. 통계청의 근로 형태별 근로계약서 서면작성비율 및 증감을 보면,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04년 8월(14.3%)부터 2016년 8월(46.3%)까지 시간제 노동자의 근로계약서 작성률은 매해 최하위를 기록했다.
시간제 노동자의 근로계약서 작성률은 통계가 작성되지 않은 2017년을 제외하고 지난해 처음으로 비전형 노동자(49.8%)보다 높게(57.1%) 집계됐다. 그러나 여전히 전체 임금근로자 평균(68.5%)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지난해 기준 정규직 노동자는 70.8%, 비정규직 노동자는 63.7% 수준에서 근로계약서가 작성됐다.
이에 서울시는 블록체인과 스마트계약을 활용해 시간제 노동자 권익보호에 팔을 걷어붙이기로 했다. 전체 노동자 중 시간제 노동자의 비율이 계속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근로계약서 작성률과 사회보험 자격 취득률이 낮다는 점,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전국의 시간제 노동자는 2016년 249만명, 2017년 266만명, 지난해 271만명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시는 현행 근로기준법이 근로계약서 작성과 교부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지만, 노동현장에서 준수하지 않아 시간제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블록체인과 스마트계약을 도입해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산정하고 4대보험 가입을 촉진한다는 게 골자다.
서울시의 '시간제 노동자 권익보호' 사업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2019 블록체인 공공선도 시범사업'으로 채택된 12개 사업 중 하나다. KISA는 지난해 10월 전국 400여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블록체인 관련 수요조사를 진행, 각 기관에서 제출한 과제들을 평가했다. 지난해 12월 26일 사업 통합설명회가 열렸으며, 이달 11일부터 사업자 공모가 시작된 상태다.
하태균 KISA 블록체인확산팀 수석연구원은 "블록체인의 특성 중 공공성과 국민편익 제고 가능에서 주목해 이번 사업을 추진하게 됐다"며 "원래 과제가 6개에 불과했으나 대정부 설득작업 등을 통해 12개까지 늘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사업 외에 △블록체인을 적용한 신뢰 기반 기록관리 플랫폼 구축 시범사업(국가기록원) △인증서 없는 민원서비스 제공을 위한 블록체인 플랫폼 구축(병무청) △블록체인 기반 재난재해 예방 및 대응 서비스 구축(부산시) △식품안전관리인증(HACCP) 서비스 플랫폼 구축 시범사업(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이 있다.
블록체인 기반 근로계약으로 급여산정까지 간편화
서울시는 블록체인과 스마트계약이 근로계약 체결, 근무시간 관리, 급여명세서 발급 등의 전 과정을 매우 간편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는 블록체인 스마트계약을 구현할 애플리케이션 개발이 선행돼야 한다.
이 앱은 근로계약서 작성·합의 단계인 '근로계약모듈', 근로계약서 조회 단계인 '근로계약서조회모듈', 고용인이 자신의 근무 내역을 기입하고 고용주는 이를 수락하는 '근무관리모듈', 근무관리모듈에 의해 생성된 근무 내역을 근거로 급여를 자동 산정하는 '급여관리모듈' 등으로 구성된다.
서울시가 구상하는 안은 이렇다. 고용주가 시간제 노동자와 구두로 합의한 근로계약을 토대로 이 앱에 근로기간·급여·수당 등의 내용을 입력한다. 고용인은 고용주가 입력한 내용의 근로계약서를 확인·수락한다. 이후 변경사항이 있으면 고용주와 고용인이 합의한 내용을 스마트계약 기반으로 자동 처리한다.
조미선 서울시 정보기획담당관 사무관은 "최소한의 정보만 입력하고도 근로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한 '소상공인 근로계약서 앱'에 서울시가 기능을 추가·강화한 것"이라며 "알바생 같은 시간제 노동자가 근로 사실을 증빙하지 못해 받게 되는 불이익을 블록체인 스마트계약을 적용해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의 근로계약서 앱은 올해 말까지 개발된 뒤 내년 초께 공개될 예정이다. 조 사무관은 "현재까진 기본안이 나온 상태고 사업 수행업체 선정 후 구체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앱 하나만 내려받으면 근로계약서 작성부터 4대보험 가입, 근무시간 기록, 급여관리, 경력관리 등 근로계약의 제반 사항을 일괄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다.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근로계약은 고용주-고용인 간 합의 내용을 위·변조가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강점을 갖는다. 앱으로 입력하는 근로 사실은 블록체인에 남고, 이를 서울시가 공유하기 때문에 시간제 노동자의 불리한 입지가 대폭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블록체인 노드 4대, 데이터베이스 2대를 운영할 예정이다.
시간제 노동의 질적 개선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효과도 낳는다. 서울시는 한국은행의 통계를 인용해 노동 질 지수가 1%p 상승하면 노동 생산성도 약 0.01%p 증가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블록체인 공공사업에 대한 우려도 없지 않다. 한호현 아시아IC카드포럼 회장은 "일반 앱으로 구현해도 되는 사업을 굳이 블록체인을 쓸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시간제 노동자의 근로계약서 작성률이 낮은 이유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제도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블록체인 기반 근로계약서 앱이 나오더라도, 고용주가 적극적이지 않으면 별다른 효과가 없으리라는 설명이다.
한 회장은 또 "블록체인이라는 각광받는 기술을 통해 정책적 홍보 효과는 거둘 수 있겠지만 시간제 노동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면 사업의 부작용이 노동자 쪽에 전가될 위험도 있다"고 부연했다.
KPI뉴스 / 오다인 기자 odi@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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