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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 칼럼] 보수 정치인 유승민의 꿈

류순열 기자
기사승인 : 2020-02-19 11:37:11
한국 정치판에서 유승민은 특별하다. 보기 드물게 좋은 정치인이다. 그에게선 보수의 책임감, 품격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일찍이 그는 보수가 뭔지, 보수 정치인이 뭘 해야 하는지 절절하게 설파했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 원내대표 시절 그의 국회 연설은 기념비적이었다.

그의 연설은 신선하고 따뜻했으며 정직하고 믿음직했다.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을 벗어던지고 '진영의 창조적 파괴'의 꿈을 얘기했고, 보수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밝혀 기회주의와 비리, 이념 강박증이 범벅돼 정체를 알 수 없게 된 지 오래인 대한민국 보수의 지향점을 새삼 일깨웠다.

당시 연설의 출발점은 1년이 되도록 진실이 가라앉은 세월호였다. 피붙이 시신이라도 찾아 유가족이 되고 싶은 실종자 가족의 '슬픈 소원'을 전하며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물었다. 난치병으로 청력을 잃어가면서도 "딸의 뼈라도 껴안고 싶어서" 인양 촉구 시위를 벌이는 다윤이 어머니의 눈물을 정치가 닦아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공약,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을 고백했고, 성장과 복지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데 있어 법인세도 성역이 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의 연설은 화려한 포장이 아니라 진실된 내용으로 다가왔다. 나라 운명과 정치, 국민경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연설 전반에서 느껴졌다. "심각한 양극화 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는 갈수록 붕괴 위험이 커지고 있다"면서 "그런 위험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는 것도 보수의 책무"라고 했다.

그의 연설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보수의 양심고백이자 혁신선언이었다. 그는 "새누리당이 보수의 새 지평을 열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선언 이후는 익히 아는대로다. 보수의 새 지평을 열기는커녕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혀 울타리밖으로 내쳐졌다. 그렇게, 이상은 아름다웠으나 현실은 추악했다.

5년이 흘렀지만 달라진 건 없다. 보수의 새 지평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총선이 다가오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서둘러 합당만 했을 뿐이다. 새누리당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 헤어져 삿대질하다 다시 한 지붕 아래 모였다.

그런데 그 범보수 통합신당(미래통합당) 출범식 현장에 유승민은 없었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란 저의 오래된 질문을 다시 생각하며 숨 고르는 시간을 갖겠다"는 예고대로 칩거에 들어간 듯하지만 개운치 않다.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물음엔 일찍이 "보수다운 보수,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고 싶다"고 밝힌 터다.

오히려 그의 '부재'는 정치공학 셈법으로 일단 합치고 본 미래통합당에서 과연 보수의 새 지평을 열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 의구심의 반영일지 모른다. "단순히 합치는 것만으로는 보수가 국민 마음을 얻을 수 없다. 뿌리부터 재건돼야 한다"고 스스로 말하지 않았던가. 

당장 유승민이 제시한 첫째 통합조건부터 해결 난망이다. 합쳤어도, '탄핵의 강'은 미래통합당 복판을 가르고 있다. 과연 그런 정당에 뿌리부터 바꿀 의지와 역량이 있을까. 보수 정치인 유승민의 꿈은 별처럼 빛나지만 현실은 여전히 아득하기만 하다.

▲ 류순열 편집국장


KPI뉴스 / 류순열 편집국장 ryoos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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