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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커지는 가계부채, 문제는 총량이 아니다

류순열 기자
기사승인 : 2018-12-21 19:14:28
“정부, 자영업자發 부채 부실화 촘촘히 관리해야”
▲ 셔터스톡

 

한국경제 뇌관. 흔히 가계부채를 일컫는 말이다. 그 만큼 위험하다는 말이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칼이 줄에 매달려 머리를 정조준하고 있는 상황”에 비유하곤 한다. 경고음이 울린 건 이미 오래전이다. 김 전 위원장이 “(가계부채 걱정에) 밤잠을 이룰 수 없다”고 한 게 2011년 금융위원장 재임시절이다. 


오랜 경고음의 효과로, ‘가계부채 = 한국경제 뇌관’ 등식은 단단하게 굳어졌다. 뇌관의 크기는 어마어마하다. 김 전 위원장이 밤잠을 못이루던 시절 900조원 가량이던 가계부채 잔액은 지난 9월 말 기준 1514조원으로 불어났다. 경제가 저성장 기조로 바닥을 기는 동안 가계부채만큼은 ‘고성장’을 이어간 것이다.


그렇게 가계부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증하며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으로 한국경제 복판에 똬리를 틀었다. 그런데 가계부채는 정말 위험한 것인가. 한국경제의 뇌관이라고 불릴 만큼 그렇게 위험한 것인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등식의 내용을 제대로 아는 이는 별로 없는 듯하다. 가계부채가 왜 뇌관인 것인지, 뇌관이라면 그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가계부채가 1500조원을 넘어선 지금도 가계부채가 왜 위험한지는 사실 막연하다. 흔히 그 위험성을 얘기할 때 총량을 지목한다. ‘가계부채, 또 사상 최대’ 식의 기사 제목은 폭발이 임박한 버블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엄밀히 볼 때 총량이 문제는 아니다. 모든 가계부채가 위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갚을 능력이 있는 가계의 부채는 뇌관이 아니다.

가계부채, 총량의 문제가 아니다


총량만 주시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가계부채 총량은 통계 산출 기준에 따라 다르기도 하다.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가계부채 통계는 두 가지다. 우선 일반가계 부채 총량인 ‘가계신용’으로, 9월 말 기준 1514조4000억원이다. 여기엔 사실상 가계부채인 소규모 자영업자의 부채가 빠지는 맹점이 있다. 이를 포함한 광의의 가계부채 통계인 ‘가계 및 비영리단체’부채는 6월 말 기준 1737조2600억원이다. 국가 간 비교가 가능한 가계부채 통계는 후자다. 


위험성을 가늠하자면 총량이 아니라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을 봐야 한다. 박근혜정부에서 가계부채가 폭증하면서 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급격히 치솟았다. 2017년 말 기준 185.9%(‘가계 및 비영리단체’부채 기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선두권이다. 그 만큼 가계의 빚 부담이 큰 나라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지표도 절대 척도일 수는 없다. 한국보다 높은 나라들이 적잖다. 2017년 말 기준 덴마크가 280%, 네덜란드가 243%다. 그렇다고 그들의 가계부채가 한국보다 위험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별 문제가 안 된다.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어 가계가 똑같은 양의 빚을 진다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크리스토프 안드레 OECD 이코노미스트) 세금을 많이 내고 많은 복지 혜택을 누리는 유럽 선진국 가계의 부채와 한국의 사정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난센스다.

가계부채 왜 늘었나


이명박 정부의 금융위원장이 “가계부채 걱정에 밤잠을 이룰 수 없다”고 한 2011년 이후 정부는 가계부채 급증을 걱정했을까. 거꾸로다. 박근혜 정부는 가계부채를 걱정하기는커녕 거꾸로 가계부채 늘리기에 바빴다. 한국은행에 압력을 넣어 금리를 끌어내리고 주택을 담보로 빚을 낼 수 있는 한도를 과감하게 늘렸다. “빚을 내 집을 사라”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심지어 정부는 투기수요까지 부추겼다. 아파트 분양권 전매제한을 풀고, 동일인에게 아파트 중도금대출 보증을 여러 건씩 해줬다. 실수요가 아닌 투기를 정부가 단속하는 게 아니라 조장한 것이다. 


정부는 처지는 성장률을 끌어올리려 가계부채 화력으로 부동산시장을 데우는 단기부양책을 밀어붙인 것일 텐데, 그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모른 체했다. 정부 안팎에서 숱하게 경고음이 울렸지만 철저히 무시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가계부채를 이렇게 늘려도 되느냐”는 물음에 정부 고위 인사는 “전혀 문제 없다”고 큰소리쳤다.


“장래 안정과 성장에 역행하는 것으로 해서는 안 되는 정책”(조순), “후손들의 소득을 빼앗아오는 짓이며 국가 불행을 키우는 일”(박승), “토건국가 정책은 금물. 부동산 경기로 살리겠다는 과거 연장선의 정책은 (더 이상)안 된다.”(이헌재)…. 경제석학, 정책고수들이 “부작용만 큰 구시대적 정책”이라며 걱정을 쏟아냈지만 정부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 가계부채 증가율 추이 [한국은행]

당뇨병 같은 가계부채


문재인 정부 들어 가계부채 증가세가 잡히기는 했다. 2015년 10.9%, 2016년 11.6%로 치솟았던 가계부채 증가율(전년대비)은 2017년 8.1%, 2018년 3분기말 6.7%로 떨어졌다. 총량의 문제가 아니므로 증가속도가 줄었다고 위험이 제거된 것은 아니다.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근심거리인 것은 틀림없다. 일본식 장기불황을 따라가는 흐름의 중심에 가계부채가 있다.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 저자인 아티프 미안 프린스턴대 교수는 지난해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버블 후 성장이 느려졌다”며 “한국은 일본 케이스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결정적 한 방’은 없다. 작금 가계부채는 당뇨병과 같다. 위험 관리가 핵심이다. 차주의 사정이 제각각인 부채 총액 중 어느 만큼이 더 위험한 것인지, 그 위험액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영업자 부채나 소득심사 강화전 소득심사 없이 승인, 집행되고 있는 아파트 중도금 집단대출 등 불꽃이 먼저 붙을 수 있는 빚부터 예의주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가계부채 미시데이터에 밝은 문영배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현재 금융당국이 1년에 두 번만 하는 자영업자 부채 통계분석을 좀 더 촘촘히 해 자영업자발 부실화 위험부터 세밀히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KPI뉴스 / 류순열 기자 ryoos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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