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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작가' 유영호, 분단과 인류 간 장벽 극복하는 예술적 상상력

UPI뉴스
기사승인 : 2019-09-20 17:22:15
김종영미술관 선정…개인전 'over there(요기)'
평화의 길, 인간의 다리, 연천에서 장풍까지 등 전시
그리팅맨에서 브리지맨을 거쳐 커넥팅맨으로
▲ 조각가 유영호

조각가 유영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김종영미술관이 선정한 '오늘의 작가'전이다. 유영호는 그리팅맨(greeting man)의 작가, 미러맨(mirror man)의 작가다. '인사하는 사람' 그리팅맨의 경우, 해외에는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파나마 파나마시티, 에콰도르 카얌베(Cayambe)와 과야킬(Guayaquil), 미국 뉴저지 그리고 브라질 상파울루에 설치되어 있다. 국내에는 강원도 양구, 제주도 서귀포 그리고 경기도 연천에서 볼 수 있다. 

 붉은 사각의 프레임을 거울처럼 놓고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손가락을 대고 있는 미러맨. 마포구 상암동 MBC 본사의 랜드마크가 된 이 작품은 영화 '어벤져스2'에 주요한 '이스터 에그'로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미러맨은 MBC 프로그램 '무한도전', '킬미힐미' 등에서 무시로 출연했고, 2018년 지자체 선거의 MBC 개표방송에서 캐릭터로 화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유 작가가 개인전을 열기로는 2013년 갤러리 로얄에서 열린 <반성> 이후 6년 만이다. <반성>의 경우 공간을 달리해서 2017년 경기도 연천의 연강갤러리, 2018년 잠원동 갤러리 멀버리힐스에서 관객의 범위를 확장한 바 있다. 전시회를 표상하는 콘셉트는 '대칭, 균형, 조화 SYMMETRY'로서 오브제의 대칭과 반사, 대립, 데칼코마니 형태로 나타났다. 기하학적인 추상조각으로 관객의 사유를 견인한다. 


당시 유 작가는 "이 전시에서 근원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며 "예술가로서 자신의 작업에 대한 반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역할, 미술, 정치적 의식 등 현재 우리 사회의 시대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의 한계에 머무는 자신의 사고에 대해 반성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반성은 성찰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예술가에겐 작업을 계속할 힘을 제공한다. 


신관 1층 평화의 길(the way of peace)

작가가 권장하는 관람 동선은 신관 1층에서 3층으로의 방향이다. 신관 전시실은 오늘의 작가전을 위한 공간이다. 1층 입구에는 작가가 직접 찾아낸 성경 구절, 시편 120장 6~7절이 부착되어 있다. 가로되, "너무나도 오랫동안 평화를 싫어하는 무리들과 함께 살았구나. 평화, 이 말 한마디만 해도 저들은 싸울 구실을 찾는구나." 착잡한 심경이 된다. 그리고 1층 전시실을 가득 채운 작품을 바라본다. 


▲ 유영호, 평화의 길, 12 x 10 x 3.3(m), 알루미늄 주물, 레진, 우레탄 칼라, 2019


1층 '평화의 길'은 두 사람의 거인이 두 팔로 커다란 원을 만들고 있는 작품이다. 고개를 숙이고 팔을 사용하되 럭비 경기에서 서로 팔짱을 끼는 스크럼(scrum)과는 다르다. 두 사람은 각자의 두 팔로 최대한 넓은 면적의 원을 만든다. 서클링맨(circling man)이라고 할까. 굳이 작품의 제원을 물어보니 원의 지름은 약 10m에 이른다. 


그런데 이들의 목적은 원을 만드는 것에만 있지 않다. 두 거인이 각각의 양팔로 만든 원주 위로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남녀, 인종 구분 없이 각자의 방향으로 자유롭게 걸어가고 있다. 이두박근, 삼두박근···. 거인의 굳센 팔등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평화의 길'이다. 거인의 침묵, 인내, 실천, 희생 위에 길이 만들어졌다. 이것이 작가가 생각하는 평화의 프로세스가 아닐까.

신관 2층 인간의 다리(bridge of human)


2층으로 오르면 1:200의 축소모형작이 있다. 한 거인이 고개를 숙이고 양팔을 벌리고 있다. 두 손끝 양단(兩端)의 사이에는 심연의 강이 흐른다. 그의 팔은 양쪽 지점을 잇기 위해 최대한 늘어나 있다. 그는 브리지맨(bridge man)이다. 한없이 팔을 연장하려는 그의 안간힘에서 "그저 돌을 밀어 올리고, 정점에 도달하면 다시 언덕을 내려가고, 다시 돌을 밀어 올리고, 굴러떨어지는 돌을 따라 내려가고···"를 반복하는 까뮈의 시지프스(Sisyphus)를 연상하게 된다. 



이 '인간의 다리'는 1층 '평화의 길'처럼 거인의 팔 위로는 사람들이 걸어 다닐 뿐 아니라, 거인의 팔 속은 터널로 만들어 차량이 통행한다는 구상으로 만들어졌다. 유 작가는 "이 다리는 지구상의 어느 곳이든 갈등과 반목, 분쟁이 있는 지역에 세우기 위해 계획된, 20세기의 모진 이념의 대립, 전쟁과 살육의 비극을 극복하고자 하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 유영호, 인간의 다리, 6.5 x 1 x 1 (m), 알루미늄 주물, 스테인레스 스틸, 우레탄 칼라, 2019

 
말할 것도 없이 당장 이 다리가 놓여야 할 가장 적확한 장소는 한반도다. 유 작가는 장차 남북을 연결하는 곳에 이 다리가 세워질 것을 믿는다. 그곳은 "남북한 국민과 세상 사람 누구나 자유롭게 왕래하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는 free zone(자유의 땅)이 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인간의 다리'는 조각 작품이나 조형물을 넘어선다. 도로, 교량, 터널을 함께 시공하는 거대한 구조물이 될 것이다. 그는 이미 공학적으로도 설계·시공이 가능하다는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3층 그리팅맨의 꿈, 연천에서 장풍까지


3층에는 유 작가가 필생의 과업으로 추구하는 '그리팅맨의 꿈, 연천에서 장풍까지'의 프로젝트가 구현되어 있다. 경기도 연천 옥녀봉에 세워진 그리팅맨은 북녘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다. 작품이 설치된 2016년 4월은 북한의 핵실험이 진행되던 시점이다. 하지만 예술가의 상상력은 시대의 한계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는 경기도 연천군 옥녀봉과 건너편 북한 땅 황해북도 장풍군 마량산에 그리팅맨을 마주 세우겠다는 대담한 구상에 이른다. 그 꿈은 이제 절반이 이루어져 있다.


▲ 유영호, 연천 옥녀봉-장풍 고잔상리 그리팅맨, 8 x 3 x 0_4.8 (m), 폼보드, 알루미늄 주물, 철, 2019


전시실에는 연천에서 장풍까지의 지형을 재현한 등고선 사판이 설치되어 있고, 여기에 두 그리팅맨이 마주 보고 서 있다. 1, 2층에 설치된 평화의 길, 인간의 다리 두 작품 모두 '인간의 몸'이 가진 힘을 끝까지 밀고 나간 것이다. 서클링맨, 브리지맨 공히 고개를 숙인 채, 두 발을 굳건히 딛고 서서, 두 팔의 힘으로 정립(定立)하고 있다. 그들은 고개 숙여 인사하는 그리팅맨의 다른 모습이다. 그리팅맨이 외연을 확장한 것이다. 


2012년 그리팅맨은 혼자 서서 세상을 향해 인사를 했고, 2014년 미러맨은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과 핑거터치(finger touch)를 하면서 소통을 시도했다. 2019년에 이르러 '평화의 길' 서클링맨과 '인간의 다리' 브리지맨은 다중의 소통에 기여하고자 한다. 향후 구조물로 건립된다면 소통과 통행은 현실이 된다. 연천 옥녀봉의 그리팅맨 또한 장풍 마량산의 그리팅맨을 소울메이트처럼 전제한다. 이제 그리팅맨은 연결과 연대를 지향함으로써 연결하는 사람, 커넥팅맨(connecting man)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에게는 전시실이 좁다.

'오늘의 작가'전, 요기(over there)


유영호 작가는 이번 김종영미술관이 선정한 '오늘의 작가' 전시회의 이름을 'over there'로 명명했다. 그리고 전시회 포스터에 실린 실사 사진에 있는 황해북도 장풍군 마량산에 '요기'라고 아주 작은 필기체 글씨로 표기했다. 그래 놓고 보니 마치 포스터가 미완성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장난스럽게도 보인다. 필경 뜻이 있을 것이다. 유 작가에게 묻는다. "전시회 포스터가 특이하다, 재미있기도 하고···그런데 'over there'라면 '저기' 아닌가. '요기'라고 한 이유는?" 그는 "연천군 옥녀봉과 마주 보는 장풍군 마량산은 일단 한국 땅 즉 '여기'는 아니다. 그래서 영어로 'over there'라고 했는데 이것을 '저기'라고 번역하려니 '저기'는 너무 멀어 보였다. 그러다가 '요기'를 생각했다. 바로 요기, 마음만 먹으면 갈 수도 있는 바로 요기...."


유 작가의 '요기'에 대한 내력을 듣다 보니 문득 김소월의 시 <산유화>에 나오는 '저만치'가 생각난다. 주지하다시피 시 <산유화>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로 이어진다. 여기에 나오는 '저만치'를 놓고 평단에서는 '자연과의 거리감', '정서적 고독감' 등 다양한 해석과 비평이 나온 바 있다. 어떤 쪽이든 이것이 시인 김소월을 대표하는 절창(絶唱)의 시구로 평가되는 것에는 이의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유영호 작가가 6년 만에 연 자신의 전시회 'over there'를 '요기'로 표기한 것은 이 프로젝트에 임하는 작가의 심회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는 어쩌면 분단으로 이루어진 민족의 거리감을 단숨에 뛰어넘는 예술적 비약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어느 날 돌연 연천과 장풍에 그리팅맨이 마주 인사하고, 그 사이 임진강에는 '인간의 다리'가 놓이고, DMZ 군사분계선 위에는 '평화의 길' 조형물이 설치될 그 날이 올 줄을.


정길화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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