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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열의 AI경제] AI 시대의 '자유로부터의 도피'

장한별 기자
기사승인 : 2026-05-28 10:57:55
AI 세상에서 되살아난 에리히 프롬의 '자유의 역설'
선택을 위임한 인간들…알고리즘 권위주의의 그림자
자유는 불안하지만 포기하는 순간 민주주의도 흔들린다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는 1941년 독일 철학자 에리히 프롬이 나치즘의 사회 심리적 배경을 정교하게 분석한 명저로 유명하다. 프롬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주의가 강화되는 듯하다가, 곧 전체주의로 넘어가 다시 전쟁에 휩싸이게 된 이유에 대해 마르크스의 사회경제론, 베버의 사회구조 분석, 프로이트의 심리학으로 나치즘 성립 과정을 파헤쳤다.

그의 결론은 사람들이 자유에 따른 불안과 고립을 이겨내지 못해 권위주의로 회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자유의 역설'이라 부른다. 자유는 해방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불안을 부르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자유란 단순히 억압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자기 정체성 확립과 책임을 수반하는 성숙한 권리이다. '왜 사람들이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전체주의에 매혹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기서 나왔다. 대중은 이 무거운 권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강제적 권위에 복종하는 쪽으로 도피했다는 게 프롬의 예리한 비판이다. 고민하는 소크라테스보다 행복한 돼지가 되었다고나 할까. 대중은 무비판적인 '노예의 행복'을 선택함으로써 결국 나치즘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프롬의 분석은 거의 10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나치즘 시대의 자유 포기 현상을 분석했지만, 오늘날 인공지능(AI) 추천 시스템에 의존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그 분석을 놀랍도록 재현한다. 다만, 나치즘 같은 전체주의가 'AI 추천'이란 디지털 권위주의로 대체되었을 뿐이다. 인간의 계산력을 한참 초월한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한 AI 추천은 말만 추천이지, 거역할 수 없는 신의 계시에 가깝다. 

 

AI의 속성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계라서 더 객관적이고 공정할 것"이란 막연한 믿음에 기대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권리를 자발적으로 포기한다.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음악, 영화, 쇼핑, 뉴스까지 AI 추천 알고리즘에 선택을 '위임'하고 있다. 이는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 능력을 잠식한다. 프롬이 말한 '자유의 불안으로부터의 도피'가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과거에는 카리스마 지도자나 국가의 권위에 복종했다면, 오늘날에는 알고리즘 권위에 나도 모르게 복종하는 점이 다를 뿐이다. "AI가 추천했으니 옳다"는 태도는 스스로 판단하는 자유를 포기하는 행위다.

자유의 불안을 공격적인 파괴성으로 전환했던 과거와 달리, 현대인은 내부에서 비판적 사고의 파괴를 경험한다. 추천 시스템은 다양한 선택지를 좁히며, 개인의 탐색 욕구도 무력화한다. 프롬이 경고한 가장 위험한 도피는 '자동적 순응'이다. 오늘날 '개인화 추천'은 사실상 집단적 동질화를 강화한다. 모두가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뉴스를 소비하며, 같은 상품을 구매하는 사회는 개성의 상실을 초래한다. 그 결과, 자유의지 박탈과 민주주의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AI는 인간의 선택을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는 개인의 책임과 도덕적 판단 능력을 약화시킨다. 개인뿐 아니라 체제도 위험해진다. 프롬은 자유 없는 인간이 전체주의에 매혹된다고 보았다. 오늘날 선택의 자유를 잃어버린 인간은 데이터 권력에 매혹된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자율적 판단에 기초하지만, 추천 알고리즘이 여론을 형성한다면 민주주의는 허울 좋은 형식만 남게 된다. 따라서 21세기의 시민은 자유를 회복해야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AI 시대의 자유는 단순히 '선택권'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와 자기결정 능력을 유지하는 데 있다. 제도 교육과 공공 정책, 사회의 윤리적 규범을 통해 인간이 AI 권위에 무비판적으로 종속되지 않도록 일깨워야 한다. 프롬은 인간이 자유를 감당하지 못할 때 권위주의로 도피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는 자발적으로 편리함이라는 권위로 도피하고 있다. 자유는 불안을 동반하지만, 그 불안을 감내할 때만이 진정한 인간적 존엄을 지킬 수 있다.

AI 시대의 과제는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반복하지 않고, 자유 속에서 책임을 감당하는 인간으로 남는 것이다. 자유는 불안하지만, 그 불안을 회피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는다. 불편과 불안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용기, 감당하겠다는 책임감, 극복한 후 성취감. 이런 도전과 성장의 이력이 우리를 어른으로 키운다. 성숙한 민주시민으로 끌어올린다. 독재자든, AI이든 완벽한 구세주는 없다. 나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 이게 AI 시대의 진정한 교리(敎理)일지도 모른다.

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둔 시점에 이런 새로운 질문을 유권자에게 던지는 후보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찾기 힘들다. 오로지 철 지난 이념 논쟁과 인신공격에 열중하는 낡은 정치 불판들에 질려 벌써 투표 의욕마저 잃어버린 듯하다. 그래도 내 한 표를 꼭 던져야 한다면 단 1cm라도 미래로 더 나아간 이들에게 주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미래는 청년과 과학기술, 그리고 글로벌 리더십이다. 후보 공약에 셋 중 하나라도, 단 한 줄이라도, 미래의 비전을 밝힌 신자유주의자를 찾아봐야겠다.
 


 

▲ 노성열 논설위원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을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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