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강준만의 직설] '정치'를 '종교'로 간주하면 좋아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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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직설] '정치'를 '종교'로 간주하면 좋아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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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 2021-06-09 15:16:11
중국 전문가 김인희 박사가 최근 출간한 <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이란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분노청년(憤怒青年, 펀칭)'은 중국에서 주로 열혈 국수주의 성향의 청년들을 이르는 말인데, 이들의 맹렬한 활동은 중국 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중국의 자유주의파 지식인 랴오바이핑이 분노청년에 대해 한 말을 들어보자.

"머리는 충분히 녹슬고 논리는 충분히 부족해야 한다. 정보로부터 폐쇄되어 있어, 가짜 정보인지 진짜 정보인지 알지 못해야 한다. 피는 충분히 뜨겁고 이성은 충분히 부족해야 한다. 입은 구린내로 진동하고, 사람에 대해 욕을 할 때는 충분히 악독해야 한다."

김 박사는 "분노청년은 심리적 군중으로 개인의 개성과 주체성이 박탈되어 혼자서는 판단도 결심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종교의 신도와 유사하다"며 그들이 갖고 있는 여섯가지 확신 또는 종교적 신념을 이렇게 지적한다.

"첫째, 나는 정치적 올바름을 대표한다. 둘째, 나는 도덕적인 우세를 대표한다. 셋째, 나는 진리를 대표한다. 넷째, 애초에 상대를 평등한 위치에 놓지 않는다. 다섯째, 상대방에게 맘대로 말하지만 상대방은 맘대로 말하지 못한다. 여섯째, 상대방은 아예 이의가 있을 수 없고, 발언권이 없고 말참견을 할 수 없다."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한국엔 분노청년과 같은 집단이 없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들의 일부 행태는 어딘가 낯익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 무엇을 목표로 내걸건 어느 나라에건 이런 열혈 집단은 있기 마련이다. 한국엔 좌우를 막론하고 '애국'과는 좀 다른 가치를 내세우면서 특정 지도자나 정치집단에 종교적 수준의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는 그런 현상을 흥미롭게 생각해 5년 전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그때만 해도 정치를 종교로 여겨서야 되겠느냐는 생각으로 책을 썼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다. '편가르기'는 원시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생존을 위한 인간의 본성이라는 점에 대해 체념하면서 "정치=종교"라는 걸 흔쾌히 인정하기로 했다. 물론 이건 나만의 생각은 아니며, 이미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그런 논지를 펴왔다.

미국 정치학자 도널드 그린 등은 <당파적인 심장과 정신>이란 책에서 정당을 선택하는 행위는 종교를 선택하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정당을 선택할 때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보다는 민주당은 어떻고 공화당은 어떻다 하는 식으로 머릿속에 어떤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로 구성된 정당에 이끌리며, 이렇게 해서 어떤 정당에 가입한 뒤에는 그 정당에 속한 사람들과 더 일치되도록 하려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철학이나 현실을 바라보는 눈을 수정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집단의 소속감이 이념보다 우위라는 이야기다.

특정 종교의 신도들 사이에서도 대충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신의 힘을 다해 믿는 사람이 있듯이 열정의 차이는 있기 마련이다. 일반적인 종교에서도 악(惡)에 대한 증오가 있긴 하지만, 정치종교의 경우엔 증오가 필수다. 반대편에 대한 증오가 없이는 신도들을 모을 수가 없다. 혹 주변에 정치종교 신도가 있으면 잘 살펴보시라. 반대편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을 게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에릭 호퍼는 <맹신자들>이란 책에서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이 말이야말로 특정 정치적 신념이나 노선을 내세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증오하면서 욕설과 악플로 공격하는 정치적 광신도들의 의식과 행태를 설명할 수 있는 최상의 진술이 아닐까?

호퍼는 "이것이다"보다는 "이것이 아니다"가 늘 더 강력한 동기를 유발한다고 말한다. 즉, '긍정'보다는 '부정'의 힘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열정적 증오는 그런 부정의 힘이 극대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선거가 네거티브 공세 위주로 전개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호퍼는 "대중운동이 시작되고 전파되려면 신에 대한 믿음은 없어도 가능하지만 악마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중운동의 힘은 대개 악마가 얼마나 선명하며 얼마나 만져질 듯 생생한가에 비례한다…공동의 증오는 아무리 이질적인 구성원들이라도 하나로 결합시킨다…증오는 우리의 부적합함, 쓸모없음, 죄의식, 그밖의 결함을 자각하지 못하게 억누르려는 필사적인 노력의 표현이다…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쁘기만 한 적보다는 장점이 많은 적을 증오하는 편이 쉽다. 경멸스러운 상대를 증오하기는 어렵다."

나는 '정치의 종교화'를 비판하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다. 정치를 종교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정치를 종교로 여기는 사람들과 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겪는 불편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나의 경험담이니 조금은 믿으셔도 된다. 내가 거의 모든 면에서 존경했던 사람이 특정 정치종교의 광신도로 행세하는 걸 지켜보는 건 불편하다 못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마저 흔들리게 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적지 않은 기간 동안 그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나는 스스로 해법을 찾아냈다.

우리는 일상적 삶에서 종교 문제로 다투진 않는다. 각자의 종교를 존중해준다. 한국은 다종교 국가이면서도 '종교전쟁'이 없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나라'가 아닌가. 당신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에 대해선 "정치=종교"라는 걸 인정해버리시라.

물론 이성과 논리는 잠시 버리셔야 한다.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고 상대방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상대방이 자꾸 자신의 정치종교 이야기를 하면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그럴 땐 부드럽게 화제를 딴 데로 돌리시라. 자꾸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당신의 신은 당신의 성전에서만 섬겨라"라거나 "증오의 배설은 악플을 통해서나 하시라"고 속으로만 말하면 된다.

이런 방법은 정치적 무관심도 아니고 냉소주의도 아니다. 종교적 열정이 분출하기 마련인 시대적 전환기에 증오를 탄핵하는 부드러운 해법이다. '정치'를 '종교'로 여기면, 아니 여겨주면, 정치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사라지거나 확 줄어든다. 이게 결코 작은 혜택이 아니다.

게다가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에 대해서도 비교적 너그러워지면서 '선의의 경쟁'과 '더불어 같이 사는 삶'의 철학이 공고해진다. 분단은 남북분단 하나로 족하지 않은가.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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