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기자의 눈] 이란 축구선수 망명 사태…트럼프의 이중잣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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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이란 축구선수 망명 사태…트럼프의 이중잣대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6-03-12 17:22:35
국가 안 부른 이란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
이란 국영 방송 진행자, "전시 반역자" 낙인
트럼프, "망명 받아줘라" 호주 총리 압박
과거 정치적 퍼포먼스 벌인 선수 비난하더니

이란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의 국가 제창 거부가 논란이다. 호주에서 진행 중인 2026 아시아축구연맹 여자 아시안컵에 참가한 이들은 2일(이하 현지시간) 경기에 앞서 자국 국가가 연주될 때 따라 부르지 않았다.

이란 국영 방송 진행자는 이들을 "전시 반역자"로 규정했다. "애국심 결여의 극치"인 국가 제창 거부 행위를, 그것도 이란이 미국·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시기에 했으니 전시 반역자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수들은 5일과 8일 경기에서는 국가를 제창했다. 하지만 귀국 후 신변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9일 선수 5명이 숙소를 이탈했다.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워싱턴 국회의사당 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집권 2기 첫 국정 연설을 하고 있다. [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끼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망명을 받아줘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국이 그들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호주 총리를 압박했다. "이란 여자 축구 대표팀이 살해될 가능성이 높은 이란으로 돌아가도록 허용"하는 "인도주의적 실수"를 범하지 말라는 얘기도 했다.

압박 직후인 10일 호주는 이란 선수 5명의 망명을 허용했다. 이어 추가로 망명을 요청한 선수와 스태프 등 2명에게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이 7명 중 1명이 마음을 바꿔 현재 망명이 허용된 인원은 6명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란축구협회장은 선수들이 납치됐다며 반발했다.

상황은 이러한데, 짚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이란 당국 쪽부터 살펴보면, 선수들을 반역자로 몰아가는 방식은 국제 사회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국가 제창 거부를 반역으로 보는 것 자체가 무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문제가 이란의 역사적 상황과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국가 제창 거부 사태는 4년 전에도 있었다. 2022년 이란 남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은 카타르월드컵 조별 예선 1차전에서 국가를 부르지 않았다. 당시 이란에서는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가 의문사한 일을 계기로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다. 강경 진압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때이기도 했다. 국가 제창 거부는 반정부 시위 지지로 받아들여졌다.

여자 선수들의 이번 국가 제창 거부 역시 정부에 대한 항의 표시일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란에서 이뤄진 여성 억압 및 정권의 시민 학살 등과 무관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러한 역사적 상황을 외면한 채 반역자로 매도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 쪽도 문제다. 크게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하나는 과거에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연주 시간에 정치적 퍼포먼스를 한 선수를 극도로 비난하며 몰아세웠다는 것이다. 표적은 미국 프로풋볼(NFL) 선수 콜린 캐퍼닉이었다.

캐퍼닉은 2016년 프리시즌 경기에서 미국 국가가 연주될 때 기립을 거부했다. 그 대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에 대한 과도한 경찰 폭력 등 부당한 억압에 항의하는 의미였다. 퍼포먼스는 큰 화제가 됐다. 미국 내 여러 종목은 물론 유럽 프로축구에서도 캐퍼닉에게 공감해 한쪽 무릎 꿇기 퍼포먼스를 하는 선수들이 나타났다.

이듬해 트럼프 대통령이 캐퍼닉을 겨냥한 트윗을 쏟아내며 거칠게 막아섰다. 특유의 비속어까지 동원하며 '당장 끌어내고 해고할 것'을 구단주들에게 촉구했다. 자유계약선수 신분이던 캐퍼닉은 자신이 뛸 팀을 구할 수 없었다.

캐퍼닉과 이란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상반된다. 기만적인 이중 잣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다른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인도주의적 실수"를 범하지 말라고 충고할 처지인가 하는 문제다.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된 후 이란 곳곳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란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폭격으로 170명 넘게 숨졌다. 그러한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여자 축구 대표팀 선수들의 생명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람인 것처럼 나서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일이다.

 

▲ 김덕련 기자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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