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조롱' 배재고 야구부 징계 부당 거듭 강변
혐오와 차별 조장도 표현의 자유? 위험한 궤변
무원칙한 통합 인사 대신 정의로운 통합 지향해야
5·18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의미의 응원으로 파문을 일으킨 배재고 야구부 사태와 관련해 이병태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 행보가 논란이다.
이 부위원장은 배재고 야구부에 대한 징계가 부적절하다는 내용의 글을 2일 SNS에 올렸다. 표현의 자유 보장에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5·18이 성역이 됐다", "김일성 사진이 나온 신문이 비에 젖는 것을 보고 울부짖는 북한의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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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병태(오른쪽)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이 4월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 위원회의 제1차 전체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
비판 목소리가 이어지자 청와대는 이 부위원장에게 "부적절한 처신"이라고 엄중히 공개 경고하고 재발 방지를 요청했다고 4일 밝혔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청와대가 경고 사실을 밝힌 날, 이 부위원장은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는 글을 다시 SNS에 올렸다. 이어 5일 올린 글에서는 "살아가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도 배워야 하지만 타인의 말에 상처받지 않는 심지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위원장은 이 사안에 대한 자기 주장의 근거로 자유주의 철학 등을 제시했다.
여러 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표현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이지만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다.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고, 국가 폭력을 부정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추구한 역사를 폄훼하는 극단적 언행까지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용납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이 부위원장 주장이 위험한 궤변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타인의 말에 상처받지 않는 심지도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이 논리대로면, 민주화 운동을 조롱·폄훼하는 극우 세력이 아니라 조롱·폄훼에 정당하게 분노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얘기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부위원장이 총리급에 해당하는 고위 공직자라는 점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이 부위원장을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하지만 이 부위원장의 자진 사퇴 말고는 그렇게 만들 방안이 마땅치 않은 게 사실이다. 규제합리화위원회 위원은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거나 장기간의 심신 쇠약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면직 또는 해촉되지 않도록 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 부위원장은 자진 사퇴 요구에 꿈쩍도 안 하는 모습을 보였다. 5일 몇몇 언론에 자신이 사퇴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임명권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사퇴)할 수 있겠지만"(조선일보 인터뷰)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결국 청와대가 다시 나섰다. 청와대는 이 부위원장에게 사퇴를 권고했다고 6일 오후 밝혔다.
청와대는 이 부위원장 자진 사퇴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사안이 심각하다는 점에서도, 이번 '이병태 논란'은 청와대가 자초한 일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 부위원장의 극단적 언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현 직위에 임명되기 훨씬 전부터 SNS 등을 통해 극언을 거듭하며 여러 차례 막말 논란을 일으켰다.
문재인 정부 때 "친일은 당연한 것", "정상적인 것"이고 "반일이 반대로 비정상"이라고 주장한 것도 그중 하나다.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리자 일본 정부가 경제 보복 조치를 취한 시기에 나온 주장이었다. 전쟁 범죄에 대한 비판 의식도, 침략 전쟁에 동원돼 삶이 짓밟힌 이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도 찾아보기 어려운 발언들이었다.
세월호 참사 추모를 "타락한 정치권력 놀음", "이 사회의 천박함의 상징"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2차 가해이자, 유족의 아픔에 공감한 수많은 시민에 대한 모욕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발언이었다.
문제 발언들에 대해 이 부위원장은 나중에 "자유주의자 시각에서 오로지 나라가 바른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절박함에 매몰돼 있었다"고 해명했다. 배재고 야구부 사태와 관련해 자유주의 철학을 내세우는 것과 닮은꼴이다.
지난 3월 청와대가 이병태 카이스트 명예교수를 규제합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했을 때 부적절한 인사라는 지적과 제고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청와대는 비판에 귀를 닫았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혁신위원 등을 역임한 이 명예교수를 규제합리화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중용한 것은 일각에서 통합 행보로 받아들여졌다.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고 통합을 추구하는 것은 의미 있는 시도일 수 있지만, 무원칙한 통합은 해악을 초래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기본 원칙에 대한 동의를 바탕으로 한 정의로운 통합이다.
헌법 전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명시돼 있다. 독립운동과 민주 항쟁이 대한민국 정체성의 기본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를 최소한의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면, 친일을 비호하거나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는 이들을 중용하는 방식의 통합은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이재명 정부 들어 이뤄진 인사 중에는 정의로운 통합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경우가 여럿 있어 우려스럽다. 이 부위원장 임명만이 아니다. 2024년 12·3 비상계엄 선포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옹호한 인요한 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대한적십자사 회장에 선출돼 대통령 인준만 남겨둔 것도 그런 사례 중 하나로 거론된다. 청와대가 통합과 관련된 인사 원칙을 돌아보고 성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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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덕련 기자 |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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