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인터뷰] 안기종 "환자들, 어금니 꽉 깨물고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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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안기종 "환자들, 어금니 꽉 깨물고 버티고 있다"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4-10-10 17:07:07
2010년 창립된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의료계·정부, 이유 대지 말고 환자부터 살려야"
"의료계 블랙리스트는 파렴치한 간접 살인"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정부안 문제 많아"
"필수의료공백방지법 조속히 제정해야"

지난 2월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시작된 의료 대란의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와 의료계의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환자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KPI뉴스는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에게 의료 대란 관련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연합회는 2010년 창립된 이래 환자 중심 보건 의료 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해온 환자 단체들의 연대체다.

인터뷰는 10일 서울 영등포구 연합회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가 10일 서울 영등포 사무실에서 KPI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ㅡ의료 대란이 반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환자들의 피해 상황, 어느 정도인가.

"사태가 시작됐을 때와 지금은 환자들이 느끼는 피해의 기준이 다르다. 이젠 웬만한 건 감수하고 당장 치료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해지는 정도가 돼야 피해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환자들 표현대로 하면 어금니 꽉 깨물고 참아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긴 서글픈 변화다.

피부로 느껴지는 피해가 몇 가지 있다. 우선 희귀 질환 중 진단과 치료를 서울 대형 병원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있는데, 신규 환자들이 제대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도 문제다. 항암 치료를 받는 중증 환자들은 재발하면 잘못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임상 시험 관련 피해도 있다. 말기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에게 남은 방법은 임상 시험에 참여해 생명을 연장하는 것인데, 신규 환자에겐 그 길이 막혔다. 생명 연장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ㅡ의료계나 정부에 비해 환자들의 목소리는 부각되지 않는 것 같다.

"온갖 피해가 발생하는데도 구제해달라는 목소리는 전보다 적게 나오는 모순적인 상황이다.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환자가 문제 제기를 하면, 떠난 의료진은 책임지지 않고 남아 있는 의료진이 피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환자 사망과 관련해 형사 고소를 하거나 소송을 해도 이기기 힘든 분위기라고 판단해 침묵하는 것이다."

ㅡ지난달 정부는 응급실 의료진의 진료 거부 사유를 구체화한 지침을 발표하고 중증‧응급 판정을 받지 못한 환자들의 응급실 이용 시 본인부담률을 대폭 올렸다.

"응급실 뺑뺑이 해소에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들이 아니다. 이번 지침은 '의료 공백 상태인 지금은 진료를 거부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의료계에 보낸 격이어서 적절하지 않다.

응급실 이용을 불편하게 하거나 비용을 더 부담시키는 정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한국에서 실손보험 가입률은 70%가 넘는다. 본인부담률만 대폭 올리면 돈이 많거나 실손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은 응급실에 가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이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ㅡ정부가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 의료계 달래기 목적으로 풀이된다.

"과실이 있는데도 의료 사고에 대해 면책해주는 제도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과 비교해도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정부안은 문제다. 지금처럼 입증 책임을 피해자인 환자에게 지우겠다는 얘기다. 또 전자가 중상해·사망·중과실은 면책해주지 않는 것과 달리 후자는 중상해·사망·중과실 의료 사고까지 면책을 검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외국 사례를 보면 의료 사고에 대해 유족에게 설명할 의무를 부여하고, 의료인이 사과하더라도 그 말을 증거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한다. 의료 분쟁 조정 절차를 통해 신속하게 배상받을 수 있는 제도도 갖춰놓았다.

이런 외국 사례를 도입하자고 그간 환자 단체에서 요구했지만 정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의대 2000명 증원 발표에 의료계가 반발하니까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을 얘기하고 있다."

ㅡ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필수 의료 붕괴 요인 중 하나로 '과도한 사법 리스크'를 꼽았다.

"진단이 잘못됐다. 문제는 과도한 사법 리스크가 아니라 과도한 수사 리스크다. 많은 의사가 모욕이라고 느끼는 대목은 내용을 잘 모르는 경찰·검찰 관계자들에게 초등학교 수준의 질문을 받으며 범죄인 취급을 당하는 부분이다. 전문가인 의사에게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 인권 기준에 부합하는 수사, 전문성이 뒷받침된 수사가 이뤄지도록 바꿔가야 한다."

 

▲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이상훈 선임기자]

 

ㅡ의료계 블랙리스트 작성·유포 혐의로 구속된 전공의에게 상당수 의사들이 이른바 성금을 보내며 영웅시했다.


"블랙리스트는 환자를 떠난 전공의가 환자 곁에 있는 전공의들이 환자를 치료하지 못하도록 낙인찍기를 한 것이다. 이건 중증·희귀 질환자나 응급 환자에게는 간접 살인이나 다름없는 위험하고 비겁하고 파렴치한 행동이다. 그런 불법 행위자를 영웅시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블랙리스트가 의료계 전체의 행태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양심 있는 일부 의사들은 블랙리스트를 비판했다."

ㅡ의료 대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장치가 필요할까.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하더라도 응급실이나 분만 같은 필수 의료 영역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필수의료공백방지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 앞서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했던 2020년에 법안이 발의됐는데, 제정되지 못하고 지난 5월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는 발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다. 환자들이 염원하는 이 법을 왜 만들지 않는지 모르겠다."

ㅡ못다 한 얘기가 있다면.

"환자에게 제일 중요한 건 투병 의지다. 그런데 의료계와 정부는 환자를 돕기는커녕 투병 의지를 꺾고 있다. 그런 상황이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의료계도, 정부도 이젠 이유 대지 말고 환자부터 살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하는 때가 됐다."

 

KPI뉴스 / 김덕련 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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