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벽제갈비 회장이 김홍일 전의원 빈소에 조화 보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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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제갈비 회장이 김홍일 전의원 빈소에 조화 보낸 까닭

류순열 기자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19-04-21 14:02:26
지금은 해외 매장까지 둔 외식 브랜드 '벽제갈비'
김 전 의원이 운영하던 신촌 벽제갈비가 모태
▲ 고인이 된 김홍일 전 의원이 과거 식당을 운영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지금은 해외매장까지 둔 외식브랜드로 성장한 벽제갈비는 원래 김 전 의원이 서울 신촌에서 운영하던 갈비집이다. 사진은 신촌의 벽제갈비.


21일 김홍일 전 의원의 빈소에 다소 ‘낯선 이름’의 조화가 배달됐다. 벽제외식산업개발 회장 김영환. 벽제갈비, 봉피양 등 외식체인을 운영하는 기업인데, 고인과는 무슨 인연일까.

​

학연도, 지연도 아니었다. 한 살 차이인 고인과 김 회장을 잇는 것은 오직 ‘벽제갈비’였다. 지금은 국내 30여 매장과 해외 매장까지 거느린 유명 외식브랜드. 그 출발은 서울 신촌의 ‘벽제갈비’였고, 이를 운영하던 이가 바로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 전 의원이었다.


건설업체 월급쟁이이던 김 회장이 신촌 벽제갈비를 인수한 건 1986년. 실직이 계기였다. 중동건설 붐이 사라지면서 지금으로 치면 ‘명퇴’당했다. 재취업 보다는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창업을 택했는데, 외식업에 뛰어든 건 ‘맛집’을 찾아다니는 취향 때문이었다.


벽제갈비 인수는 우연이었다. “개인적 인연은 없고 마침 매물로 나와있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운명적 만남이었다. 시장을 둘러본 그는 자신감에 찼다. “신촌에서 쇠고기 분야로 1등을 해야겠다는 야망을 갖게 됐다”고 그는 회고했다.


자신감을 자극한 건 외식업계의 ‘비양심’이었다. “1등부터 밑에까지 죽 둘러보니 다들 정직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소를 물을 먹여 잡는 등 돈벌이에 급급한 행태에서 반면교사의 교훈과 지혜를 얻은 것이다. “‘진실한 음식’으로 고객의 신뢰를 쌓아가면 분명히 되겠구나.” 김 회장의 경영 철학은 확고해졌다.


이후 식당 경영은 순풍에 돛을 단 듯했다. 월 매출이 600만원 가량이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6000만∼7000만원이다. 타이밍을 놓쳐 상호는 바꿀 수 없었다. 너무 빨리 유명해져버렸기 때문이다. “뒤늦게 바꾸려 했더니 다들 말리더라”고 했다.


1997년 DJ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김 회장은 갈비 200대, 개성만두 200개를 싸들고 김 전 의원의 집을 방문했다고 한다. 선물만 전달하려 한 건데, 김 전 의원이 극구 들어오라고 해 한 시간 넘게 얘기를 나눴다. 김 회장은 “당시에도 홍일씨는 몸이 불편했지만 기억력과 언변이 뛰어났다”고 회상했다.


▲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홍일 전 국회의원의 빈소. 왼편에 문재인 대통령, 오른편에 문희상 국회의장의 조화가 놓여 있다. [뉴시스]


이미 2009년 DJ 서거 당시 장례식장의 홍일씨는 파킨슨병이 심해진 모습이었는데, 발병 전에도 그는 오랜 세월 혼자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편치 않은 생활을 했다. 전두환 정권이 자행한 고문 후유증이 그의 일생을 옥죈 것이다. 김 전 의원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당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해 허리와 등, 신경계통을 다쳤다.


김 회장은 “동시대인으로서 엄혹한 세월의 고초를 온몸으로 겪다 가신 김 전 의원의 삶에 가슴이 저린다”며 “이제라도 고인의 평화로운 영면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 전 의원은 1948년생, 김 회장은 1년 빠른 1947년생이다. 


KPI뉴스 / 류순열 기자 ryoos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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