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노태우 전 대통령 지병 악화로 별세

  • 맑음광양시24.1℃
  • 맑음목포22.0℃
  • 맑음천안24.1℃
  • 맑음속초24.0℃
  • 맑음함양군24.0℃
  • 맑음철원24.0℃
  • 맑음고창군25.3℃
  • 맑음서귀포21.9℃
  • 맑음보은23.5℃
  • 맑음태백25.3℃
  • 맑음보성군23.1℃
  • 맑음금산24.5℃
  • 맑음추풍령24.2℃
  • 맑음성산22.3℃
  • 맑음울산25.7℃
  • 맑음양산시26.8℃
  • 맑음의령군23.4℃
  • 맑음봉화23.5℃
  • 맑음영덕26.1℃
  • 맑음홍천24.3℃
  • 맑음서청주23.3℃
  • 맑음남원23.5℃
  • 맑음양평22.8℃
  • 맑음영광군24.6℃
  • 맑음인제23.9℃
  • 맑음상주24.9℃
  • 맑음북강릉28.4℃
  • 맑음제주21.5℃
  • 맑음경주시26.3℃
  • 맑음고산20.0℃
  • 맑음고흥24.5℃
  • 맑음세종23.5℃
  • 맑음창원25.0℃
  • 맑음제천22.4℃
  • 맑음이천24.2℃
  • 맑음수원24.3℃
  • 맑음남해21.1℃
  • 맑음진도군25.0℃
  • 맑음포항25.5℃
  • 맑음울진20.4℃
  • 맑음서산24.3℃
  • 맑음강릉29.2℃
  • 맑음영천24.3℃
  • 맑음고창24.8℃
  • 맑음충주24.2℃
  • 맑음거창24.4℃
  • 맑음김해시25.9℃
  • 맑음부여23.5℃
  • 맑음진주22.7℃
  • 맑음거제23.3℃
  • 맑음구미24.5℃
  • 맑음보령24.6℃
  • 맑음울릉도19.0℃
  • 맑음해남24.4℃
  • 맑음북창원24.8℃
  • 맑음대전25.1℃
  • 맑음북춘천24.1℃
  • 맑음의성24.1℃
  • 맑음동해25.2℃
  • 맑음서울25.2℃
  • 맑음장흥24.3℃
  • 맑음영주23.6℃
  • 맑음순창군23.6℃
  • 맑음완도22.2℃
  • 맑음군산23.8℃
  • 맑음홍성25.1℃
  • 맑음정선군23.1℃
  • 맑음영월23.2℃
  • 맑음여수21.4℃
  • 맑음원주24.7℃
  • 맑음통영22.0℃
  • 맑음전주26.0℃
  • 맑음안동22.5℃
  • 맑음북부산25.0℃
  • 맑음파주23.3℃
  • 맑음정읍25.2℃
  • 맑음인천22.0℃
  • 맑음동두천25.3℃
  • 맑음청주24.5℃
  • 맑음산청23.2℃
  • 맑음임실24.5℃
  • 맑음청송군24.1℃
  • 맑음대구25.3℃
  • 맑음춘천23.8℃
  • 맑음광주24.9℃
  • 맑음강진군24.6℃
  • 맑음밀양24.6℃
  • 맑음강화23.2℃
  • 맑음백령도21.6℃
  • 맑음부안24.9℃
  • 맑음부산22.0℃
  • 맑음대관령22.7℃
  • 맑음흑산도23.0℃
  • 맑음문경24.6℃
  • 맑음장수23.7℃
  • 맑음합천24.5℃
  • 맑음순천24.5℃

노태우 전 대통령 지병 악화로 별세

김명일
기사승인 : 2021-10-26 14:18:18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지병 악화로 별세했다. 1932년생으로 향년 89세다.

▲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기록원 제공·뉴시스]

경북 달성군(현 대구시 동구) 출신인 노 전 대통령은 1951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해 6·25 전쟁에 사관생도 자격으로 참전했다. 1955년 소위에 임관했고, 1967년 수도기계화사단 맹호부대 소속 연대장으로 베트남 전쟁에 파병됐다.

1979년 제9보병사단 백마부대 사단장으로 12·12 군사반란에 가담했고, 이후 국가보위입법회의 비상대책위원과 국군보안사령관 등을 맡은 후 1981년 대장으로 전역했다.

이후 제5공화국에서 정무2장관, 청와대 외교안보특보,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 체육부장관, 내무부장관, 대한체육회장, 제12대 국회의원(민주정의당) 등을 지냈다.

1987년 민주정의당 총재에 올라 대통령선거인단 투표를 통해 차기 대통령에 무난히 오를 것으로 보였으나 6·10 민주항쟁에 가로막혔다.

같은 해 6·29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를 실현했고, 12월 16일 열린 대선에서 36.6% 득표를 기록하며 김영삼·김대중·김종필 '3김 후보'를 모두 누르고 당선됐다. 이듬해인 1988년 2월 5년 임기인 13대 대통령에 취임해 제6공화국 시대를 열었다.

1990년에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해 초대 총재에 올랐다. 1992년에는 김영삼 민자당 대표의 요구에 따라 탈당하여 사상 첫 '중립 내각' 시대를 열었다.

1994년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후임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5년 비자금 사건이 터져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 원을 선고받은 후, 같은 해 12월 20일 김영삼 정부에서 사면복권됐다. 추징금은 2013년 즈음에 완납했다.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생활해왔다. 이후 암이 재발하고 소뇌 위축증을 앓는 등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가 돼 자택 요양 생활을 해왔다.

취임 후 노동운동 등 민주화 조치 실현, 러시아·중국 등과 수교 및 회담을 성사시킨 북방외교, 인천공항 등 사회간접자본 확보,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등이 업적으로 꼽힌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숙 여사와 딸 소영 씨, 아들 재헌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다.

KPI뉴스 / 김명일 기자 terry@kpinews.kr

[저작권자ⓒ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