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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문학공간] 혐오와 배제, 편가르기…그 경계의 민낯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0-04-13 23:26:18
김혜진 경장편 '불과 나의 자서전'
"한 사람 안에 똬리를 틀면 경계를 세우고 집착하는 불안"

혐오와 배제는 단순한 정신적 억압을 넘어선 폭력이다. 일방의 폭력은 이에 길항하는 반대편의 배제와 혐오로 이어진다. 악순환은 반복되고 편견은 확신으로 굳어진다. 혐오와 배제가 똬리를 트는 기반은 다양하다. 젠더에 따른 여성 대 남성, 출신 지역으로 나뉜 지역감정, 거주지에 따른 편가르기, 계급에 기초한 오만과 야만…

▲현대문학 '핀시리즈'로 경장편을 펴낸 소설가 김혜진. 그는 혐오와 배제로 얼룩진 곳들에 확대경을 들이대는 서사를 펼쳐왔다. [현대문학 제공]


소설가 김혜진(37)은 혐오와 배제로 얼룩진 한국사회 이곳저곳에 확대경을 들이대는 작가다. 이즈음 젊은 작가군은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다분히 몽환적, 도시적, 초현실적인 감성에 더 쏠리는 편이다. 김혜진은 이런 흐름과는 무관하게 지금 이곳의 문제들을 직시하는 젊은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공동체에서 배제된 밑바닥 노숙인들의 삶을 따스하게 들여다본 '중앙역', 특정한 사랑으로 인해 배척당하는 젠더를 다룬 '딸에 대하여',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칠수록 늪에 빠지는 계급의 노동을 다룬 '9번의 일' 등이 김혜진이 보여준 '혐오와 배제'의 서사들이다.


그가 이번에 새롭게 펴낸 경장편 '불과 나의 자서전'(현대문학)은 거주지에 따른 뿌리 깊은 혐오와 욕망을 탐사하는, '홍이'가 돌아보는 남일동 이야기다. 남일동은 달산 아래 빈민촌으로, 사람들은 이곳을 '남일도'라고 불렀다. 섬처럼 고립돼 있다는 뜻인데, 이곳 주민들은 '남민'으로 불렸다. 남일도에 사는 난민. 이렇게 부르는 이들은 길 하나 건너 '중앙동' 사람들. 남일동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남민 신세를 면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일 수밖에 없는데, 그토록 원하는 재개발은 수차례에 걸쳐 무산되면서 자포자기에 빠진다.


홍이네 부모는 경매로 넘어간 집을 어렵사리 낙찰받아 남일동에서 그나마 터전을 닦아가며 그곳을 탈출하기 위해 다섯 번에 걸친 이사를 하지만 무망했다. 정작 그곳을 벗어난 건 남일동이 갈라져 홍이네가 사는 곳이 중앙동으로 편입되면서였으니 어설프게 겨우 남민 신세를 면한 것인데, 그네의 부모는 자신들이 얼마나 피땀어린 노력 끝에 그곳을 벗어났는지 아느냐며 남일동을 혐오한다. 이때의 혐오와 배제야말로 자신들의 위상을 안전하고 높은 곳에 위치시키기 위한 새로운 폭력인 셈이다.

남일동 꼭대기 달산 아래 허름한 집에 이사 들어온 '주해'는 이 소설의 흥미로운 문제적 캐릭터다. 젊은 시절 덜컥 들어선 딸을 낳아 홀로 키우는 이혼녀 주해는 주민들이 모두 포기한 마을버스를 유치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쓰레기 날리는 어두운 산동네 골목길에 가로등을 설치하기 위해 발바닥이 닳도록 공무원들을 만나 성사시킨다. 이 산동네에 '마녀시장'이라는 벼룩시장도 만들어 북적이게 하고, 재개발추진위원회 사무실에도 나가 일을 한다. 이 과정에서 온갖 귀찮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남일동을 위해 일하는 주해는 타고난 이타적 마을 일꾼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녀에게도 모든 수모를 참게 만든 동인이 있었다.

"홍이 씨, 여기 재개발되면 나 그 입주권 꼭 가져야 해요. 홍이 씨도 모르지 않잖아요. 수아 키우면서 이 동네 사는 거 정말 버겁고 무서워요. 동네는 동네대로 집은 집대로 너무 불안하고요. 그렇다고 당장 다른 동네로 이사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요.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어요."


홍이라고 주해의 마음을 이해 못할 리 없지만, 직장에서 왕따 당하는 박 대리 편을 들었다가 그녀 또한 소외당한 캐릭터이고 보면, 주해의 그런 '저의'를 그 당시에는 쉬 용납할 수 없었다. 홍이는 말한다.


"그러니까 내 부모는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수없이 다짐하고 어렵게 감행했던 일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들. 사람들의 미움과 분노를 불러오는 일들. 그런 일들이라는 게 늘 뭔가를 바꾸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항복하듯 두 손을 들고 침묵하는 편에 서게 되는 이유가 있다고 말입니다. 젊은 날의 결기나 기개 같은 것들은 스러지기 마련이고 나 역시 예외가 아닐 거라고 말입니다."

▲ 김혜진은 내 집을 갖기 위한 지난한 여정을 씁쓸한 욕망의 지도로 펼쳐냈다. [현대문학 제공]  


주해는 억울하게 쫓겨온 남일동에서 이곳이 달라질 거라는 믿음으로 헌신했건만, 동네 사람들은 마을버스나 가로등 같은 건 주해와 상관없는 성취라는 냉담한 시선을 보낼 뿐이다. 주해가 일으켜 세우려고 한 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잔뜩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남민'의 낙인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홍이는 주해 모녀마저 떠난 남일동에 들러 쓰레기에 불을 붙인다.


"그 밤 나는 정말 없애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 안에 한번 똬리를 틀면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의 경계를 세우고, 악착같이 그 경계를 넘어서게 만들던 불안을. 못 본 척하고, 물러서게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게 하는 두려움을. 오래전 남일동이 내 부모의 가슴속에 드리우고 나에게까지 이어져왔던 그 깊고 어두운 그늘을 정말이지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홍이는 그날 밤 그 불이 남일동 전체를 휩쓸고, 세상의 모든 편견과 혐오를 다 태워버리기를 바란다. 한번 똬리를 틀면 악착같이 집착하는 세상의 모든 경계를.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 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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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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