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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문학공간] "홍콩, 사라진 향기 뒤에 남은 사랑"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6-07-03 16:47:39
'기억을 지키다' '기억을 태우다' 펴낸 타이완 작가 찬와이
중국에 반환된 홍콩의 현대사를 세밀하게 들여다본 소설
홍콩으로 이주한 가문의 가장과 자녀 10명의 삶과 연대기
"추억이라는 이름의 기억은 오직 인간만이 지니는 사랑"

1997년 7월 1일, 150여년 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됐다. 반환 당시 중국은 홍콩에 향후 50년간(2047년까지)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와 자유, 사법 독립을 보장하겠다는 '일국양제'를 내세웠다. 약속과 달리 '한 국가'를 강조하는 대륙의 거대 권력과 자유를 지키려는 홍콩 시민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충돌이 일어났다. 홍콩 작가 찬와이(陳偉儀, 1960~)가 다룬 우산혁명(2014)과 대규모 민주화 시위(2019)는 모두 이 위태로운 경계선 위에서 일어난 사태였다. 

 

▲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타이완으로 이주한 뒤 재입국이 불허된 홍콩 출신 작가 찬와이. 그는 "홍콩의 민주화를 위한 혁명은 실패했다"면서 "한국 독자들이 제 소설을 읽고 새로운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타이완에 거주하며 '잃어버린 홍콩'을 두 남매 이야기로 그린 '동생'으로 타이완 금전문학상(2023)을 받은 찬와이의 '기억을 지키다'와 '기억을 태우다'가 연달아 국내(배문주 옮김·민음사)에서 출간됐다. 한국어판 첫 권인 '기억을 지키다'의 원제는 '습향기·拾香紀', '향기를 줍는 기록'이라는 뜻이다. 1930년대부터 1996년 반환 직전까지의 약 60년에 이르는 홍콩의 역사를 롄씨 가문의 연대기를 통해 복원해낸다. 가난했지만 역동적이었고, 극심한 변화 속에서도 서로를 품어 안았던 1974년부터 1996년까지의 황금기를 다룬다.


이어지는 연작 '기억을 태우다(원제: 분향기·焚香紀)에는 2014년 우산 혁명의 실패, 그리고 2019년 민주화시위로 이어지는 잔혹한 현대사의 그늘을 판타지 기법으로 담아낸다. 홍콩 반환일에 태어난 동생과 열두 살 많은 누나(반환 이전세대)의 이야기를 축으로 구성한 '동생'이 홍콩이 겪어온 격동의 현대사와 청년들의 연대를 그려냈다면, '기억을 지키다'와 '기억을 태우다'는 각각 반환 이전과 이후의 홍콩을 보다 세밀하게 들여다 본 장편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출간된 '동생'에 이어 '기억을 지키다'와 그 후속작 '기억을 태우다'를 국내에 연달아 선보인 찬와이가 서울국제도서전을 계기로 방한했다.

찬와이는 1980년대 홍콩 영화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했다. 영화 '프로젝트 A'(1983), '첨밀밀'(1996)의 각본 기획에 참여했다. 1998년 첫 소설 '기억을 지키다'로 제5회 홍콩 중문 문학 비엔날레에서 수상했다. 홍콩 '센트럴 점령 운동'을 최초로 지지하는 입장을 밝힌 10인 중 한 명으로, 2014년 홍콩 행정장관의 직접 선거를 쟁취하기 위한 '우산혁명'에 적극 참여했다. 현재는 타이베이 예술대학교 영화제작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기억을 지키다'는 1997년 반환 직전까지 약 60년의 홍콩을 다루고 있다. 이 시기를 소설의 배경으로 삼은 역사적 의미는?
"이 책을 실제로 집필한 것은 반환 당해인 1997년이었고, 홍콩에서 출간된 건 1998년이었다. 소설이 품고 있는 약 60년의 세월은 홍콩이 가장 가난했던 시절부터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예전 홍콩의 가난했던 시절부터 어떻게 성장을 이루었는지가 그려져 있다. 개인적으로 그 시절에 대한 짙은 그리움이 있다. 당시에 글을 쓰며 품었던 마음과 지금 마주한 세상의 공기는 여러모로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이다."

-홍콩의 민주주의를 요구한 '우산 혁명'에 참가했다가 타이완으로 이주한 배경과, 이 과정이 작품과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우산 혁명은 실패한 혁명이다. 무언가 얻은 게 있어야 하는데 모두 실패했고 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2019년의 경우는 중국에 송환되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으로 많이 알고 계시지만, 이것은 사실 2014년에 있었던 우산 혁명과 떨어뜨릴 수 없는 맥락으로 함께 봐야 한다. 특히 2014년에 우산 혁명이 실패하고 나서 많은 사람이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모든 사람의 감정 속에 절대 사라지지 않는 무언가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저 같은 경우는 타이완 예술계 초청으로 2018년에 타이완으로 가게 됐다. 그 뒤인 2019년에 그런 여러 민주화 운동 일들이 터졌다. 그 이후에 이런 제안을 받았더라면, 아마 홍콩을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찬와이는 타이완에 머물면서 주말에는 몰래 홍콩에 갔다가 평일에는 타이완의 대학 강의실로 돌아오곤 했는데 이 시기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홍콩에 간 것은 2020년 1월이었고 동생과 함께 연초 가족식사를 한 이후 홍콩 국가보안법이 반포되면서 이제 다시 돌아가기는 힘들어졌다고 밝혔다.

-원제에는 기억을 지키고(拾香) 태우는(焚香),  '향(香)'이라는 단어가 공통으로 들어간다.
"사실 이 책을 쓸 때만 해도 나중에 타이완에 갈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향기'라는 것은 보이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데, '홍콩이 향기와도 같았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홍콩(香港)에도 '향기 향(香) 자가 들어간다. 홍콩이 향 생산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이름이 이렇게 지어졌고, 따라서 제목의 '향'이 홍콩과 완전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 힘들고 부정적인 기억들을 외면하지 않고 이렇게 기록하는 행위는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가.
"힘든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창작자에게 의무와도 같다. 한국에도 '무녀'가 있듯이, 저도 그런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초기부터 이런 이야기를 만나면 이를 기반으로 그리스 비극처럼 연극을 올리곤 했다. 저는 이러한 이야기가 일종의 제의극(祭儀劇)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무언가를 본 것이고, 하늘이 저에게 그 이야기를 미션처럼 준 셈이다. 제가 마침 있었던 자리에 그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남겨놓는 것이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의 기억이 자꾸 몸 바깥의 저장 장치로 밀려나고 있다. 미래에도 '기억의 힘'이 유효할까.
"인간의 기억, '추억'이라는 것은 결코 혼자 만들어지지 않으며 그 본질은 결국 '사랑'과 연결돼 있다. 인공지능(AI)은 인간에게 오직 유용하고 효율적인 정보만을 선별해 기록하고 기억한다. 반면 인간의 추억 속에는 얼핏 보기에 아무런 쓸모도 없고 비효율적인 '감정'들이 빽빽하게 담겨 있다. 쓸모없는 것, 상처받은 것, 슬픈 것까지 온전히 가슴에 품고 기억해 내는 힘은 오직 인간만의 영역이다. AI가 유용함을 저장할 때, 인간은 감정이 깃든 추억을 지킨다. 미래가 어떻게 변하든 기술과 인간의 이 근본적인 차이를 명확히 인지한다면, 인간이 가진 기억의 힘은 결코 빛이 바래지 않을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키워드가 있다면?
" '이야기'는 시공간을 이어주는 '다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홍콩어(중국어)에는 없고 영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과거진행형'과 같다. 과거는 그 과거 속에서 계속 머물며 진행되고 있는데, 현재에는 그런 모습이 없다. 이러한 부분이 제 작품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상태로 제 이야기 속에서는 계속 생생히 남아 있지만 현재 실제 홍콩에서는 그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 찬와이는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면서 "힘든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창작자에게 의무와도 같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한국 독자들이 이 작품들을 어떻게 읽어주기 바라는가.
"한국 독자들이 단순히 소설 속 특정 에피소드가 재미있었다는 지엽적인 감상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을 펼치기 전의 사람과,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후의 사람이 완전히 다른 삶의 시각을 가진 '서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낯선 세계의 슬픔과 포용성을 발견하고, 문득 책장을 덮었을 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져 있는 것, 그것이 제 소설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의라고 생각한다."

'기억을 지키다'는 롄씨 가문의 막내딸이 유령이 되어 읊조리는 말로 끝난다. 

"그랬구나. 기억은 사랑이었구나." 

후속작 '기억을 태우다'의 롄청은 달라진 홍콩에서 바깥 세상으로 열린 문을 스스로 닫아 걸고 '철의 방'에 들어가서 외친다. 

"난 내 생의 모든 것을 사랑했어!" 

찬와이의 소설 속 인물들이 애틋하게 기억하고 있는 '향기'는 사라졌지만, 추억이라는 이름의 기억은 내내 변치 않는 사랑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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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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