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은행 CEO 중징계' 뒤에 숨은 금융당국의 '더 큰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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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CEO 중징계' 뒤에 숨은 금융당국의 '더 큰 책임'

강혜영
기사승인 : 2020-02-05 16:28:53
금융권 일각, "금융당국의 사모펀드 규제완화가 불러온 사태"
"암행감사서 문제 발견해놓고 예방 못해"...감독 책임론도 제기
우리은행 "연임 포기 시 큰 혼란"…손태승 회장 거취 7일 논의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관련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에 대한 중징계가 최근 확정됐다.

은행들은 차기 회장 자리가 불확실해지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안을 모두 수용해 투자자에게 배상키로 했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도 마련했는데 CEO까지 중징계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동시에 금융권 일각에선 금융당국 책임론도 제기한다.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모펀드 규제를 완화해 투자자 진입 장벽을 낮춰놓고는 부실이 터지자 CEO 중징계로 모든 책임을 은행에만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거다.  

▲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작년 10월 8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연임 포기 vs 법적 대응…CEO 거취 고민하는 이사회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3일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가 심의한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관련 제재안을 원안대로 결재했다. 이로써 손 회장과 함 부회장에 대한 문책경고가 확정됐다. 금융회사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 책임을 물어 은행 CEO를 중징계한 것이다.

제재안은 금융위원회를 거쳐 3월 초에 각 금융사에 통보된 뒤 효력이 발생하는데, 제재안 중 문책경고는 금감원장 전결 사안이다. 이미 확정된 제재라는 얘기다.

문책경고를 받은 임원은 남은 임기는 채울 수 있지만 이후 3년간 금융권 취업이 제한된다. 손 회장은 3월 말 주주총회에서 회장직 연임을 앞두고 있고 함 부회장도 내년 3월 차기 하나금융 회장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은행 지배구조를 둘러싼 이사회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문제는 '대안 부재'다. 경영승계 후보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손 회장이 연임하면 감독당국과의 관계가 걱정스럽긴 하지만 연임을 포기하면 우리금융에 큰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걱정했다. "손 회장 외 대안이 없는 현실"이라는 거다. 이 관계자는 "그래서 징계 리스크가 있음에도 손 회장을 후보로 추천하 게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은행권 관계자도 "은행이 불완전판매의 잘못을 인정하고 금감원 분쟁조정안을 받아들여 배상도 하고 재발방지 시스템도 마련한 터에 자본시장법이 아니라 지배구조법을 적용해 CEO중징계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은행의 반성과 대안 부재 현실도 감안해줘야 하는 것 아닌지..."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이사회가 연임을 결정하면 행정소송으로 가서 사법부 판단을 기다리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금융 이사회는 오는 7일 손 회장의 거취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지나친 규제 완화"...불완전판매 부추긴 건 금융당국

DLF 사태가 발생한 데에는 사모펀드 가입 요건을 지나치게 낮춘 금융당국의 정책이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다. 불완전 판매는 그 결과라는 얘기다. 

금융위원회는 2015년 10월 사모펀드 운용사의 자기자본 요건을 완화하고 설립요건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는 등 대대적인 규제 완화에 나섰다. 이때 사모펀드 적격투자자 기준도 최소 투자자금 5억 원 이상에서 1억 원 이상으로 대폭 낮아졌다. 금융 지식이 없어도, 전체 자산이 얼마건 1억 원만 투자할 수 있으면 사모펀드에 가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융위는 DLF·라임 등 잇따른 사모펀드 사태에 결국 지난해 11월 가입 자격 기준을 3억 원으로 높였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반 투자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상품의 가입 요건을 지나치게 많이 낮춘 것은 성급한 조치였다"면서 "이번 사태 역시 이 같은 금융정책 차원의 부작용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관리감독 부실·모호한 중징계 '법적 근거'도 논란

금감원은 DLF 사태를 사전에 막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관리, 감독을 부실하게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2018년 10월 금감원은 파생상품 판매 실태 등에 대한 미스터리쇼핑(암행 감사)에 나서 하나·우리은행의 투자자 보호 조치가 미흡하다는 점을 발견했음에도 형식적인 조처를 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또 DLF와 관련해 작년 4월 금감원에 처음으로 민원접수, 5월 삼자 간 면담 진행, 7월 금감원장 보고 등이 이뤄졌지만, 감독 관련 조치가 늦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미스터리 쇼핑과 관련해 "자율규제 조치다보니 전적으로 이를 금융사고 예방 수단으로 활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금감원의 감독 수단만으로 금융사고 억제가 쉽지 않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또 다른 논란은 중징계에 대한 법적인 근거다. 중징계에 대한 명분인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는 '금융회사는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고, 시행령에는 '실효성 있는 내부 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만 나와 있다. 내부통제 기준 위반은 제재 사유로 명시돼 있지 않고, 금융 사고 발생 시 경영진을 처벌할 수 있는 조항도 없어 법적 근거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상품 불완전판매는 자본시장법 적용받는 사안으로 금융위원회 소관"이라며 "그런데 금감원은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미비로 CEO 중징계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내부통제 문제는 문책까지 금감원장 전결 사안"이라면서 "자본시장법 문제를 지배구조법 문제로 바꿔 징계한 꼼수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 DLF피해자대책위원회, 금융정의연대 등 관계자들이 작년 12월 9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DLF사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 재개최 요구 청와대 진정서 제출 긴급 기자회견'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DLF 사태 1차 책임은 금감원"…시민단체도 한목소리


시민단체들도 금융당국의 면피성 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소비자원은 지난달 보도자료를 내고 DLF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이 관리, 감독 부실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관련자 징계나 처벌도 전혀 없이 금감원이 책임을 면피하려는 행태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금감원장과 금감원 조직이 책임지는 모습과 변화를 먼저 보여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DLF 사태의 1차 책임은 금감원, 2차 책임은 은행에 있다"면서 "금감원은 자기반성 없이 오로지 은행에만 책임을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세헌 금융소비자원 국장은 "소비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여기지 않은 금융당국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책임자가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도 전날 'DLF 사태의 책임은 은행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논평을 내고 "이번 사태는 무리하게 금융상품을 판매한 은행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감시·감독을 소홀히 한 금융당국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DLF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 금감원의 금융기관 감독 소홀이었음을 인정하고 금융기관의 일방적인 이익 추구로부터 금융소비자들의 권익 보호를 전담하는 금융소비자 보호기구 신설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KPI뉴스 / 강혜영 기자 kh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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