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트로이 유적엔 왜 '오디세이'에 들어맞는 도시 흔적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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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유적엔 왜 '오디세이'에 들어맞는 도시 흔적이 없을까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26-09-03 17:10:15
1870년대 이후 여러 차례 트로이 유적 발굴 진행돼
주요 층 9개 가운데 6·7번째 층이 전쟁 관련 주목받아
그러나 역사적 조건 등에 부합하지 않는 면 모두 있어
'특정한 하나의 전쟁에서 유래한 얘기 아닐 것' 시각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지난달 31일 국내 누적 관객 900만 명을 돌파했다. '오디세이' 열풍으로 영화의 배경인 트로이 전쟁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관련 서적 판매량이 증가했고, 2004년에 개봉한 '트로이'처럼 이 전쟁을 소재로 한 예전 영화를 찾는 이들도 늘었다. 

 

▲ 영화 '오디세이'의 한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트로이 유적은 튀르키예 북서부 차나칼레주 히사를리크 언덕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영화 '오디세이'의 원작인 호메로스 서사시 '오디세이아'와 그 짝꿍 격 작품인 '일리아스'에 묘사된 것에 딱 들어맞는 트로이 전쟁 관련 도시 흔적이 발굴됐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송문현 부산대 교수의 2007년 논문(트로이 전쟁-전승과 증거 사이)과 서양 고대사 연구자 오흥식의 2013년 논문(트로이 전쟁과 바다의 민족들)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자.

히사를리크 언덕 일대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발굴은 1870년대에 이뤄졌다. 독일의 고고학 애호가 하인리히 슐리만이 주도한 이 발굴을 시작으로 21세기 초까지 트로이 유적 발굴이 여러 차례 진행됐다.

발굴 결과 트로이 유적은 9개의 주요 층으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학계에서는 1~9를 뜻하는 로마자를 활용해 각각의 층을 '트로이 Ⅰ', '트로이 Ⅸ' 식으로 표기한다. 숫자가 작을수록 오래된 층이다. '트로이 Ⅰ'이 제일 오래됐고 '트로이 Ⅸ'는 가장 나중에 형성됐다. 9개의 주요 층은 다시 41개의 작은 층으로 나뉜다. 작은 층 각각의 명칭은 소문자와 아라비아 숫자까지 활용해 '트로이 Ⅶb2' 식으로 표기한다.

트로이 유적에서는 기원전 3500년경부터 로마제국 시기인 기원후 500년경까지 약 4000년 동안 사람들의 거주지 형성, 도시 파괴, 재건이 거듭됐다. 이 유적이 층층이 쌓인 형태를 띠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트로이 전쟁이 발발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때는 9개의 주요 층 가운데 여섯 번째인 '트로이 Ⅵ' 말기에서 일곱 번째인 '트로이 Ⅶ' 시기에 해당한다. 그중 세 개의 작은 층이 트로이 전쟁에 의해 파괴된 도시 후보로 다수 연구자의 주목을 받았다. 트로이 Ⅵh와 Ⅶa, Ⅶb2가 그것인데 여기서는 편의상 A, B, C로 표기하겠다.

A는 대체로 기원전 1300년을 전후한 때부터 기원전 1250년경에 이르는 시기의 층으로 여겨진다. 트로이 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장대한 성과 요새를 갖춘 시기가 오랫동안 이어지다가 모종의 이유로 전면 파괴된 흔적으로 파악된다. '미케네 그리스'(미케네 문명 시기 그리스라는 뜻)로 불리는 그리스 쪽의 세력이 왕성한 때이기도 했다. 당시 국제 정세를 고려할 때 그리스 연합군이 전략적 요충지이자 무역 중심지로 번성하던 트로이를 파괴한 증거가 A라는 주장이 제기된 이유다.

그렇게 볼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반론의 핵심 근거는 A에는 전쟁 같은 인위적 폭력에 의해 파괴된 증거가 매우 적고 지진에 의해 파괴된 것으로 봐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호메로스 서사시에는 지진으로 인한 트로이 파괴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B는 기원전 1180년경 파괴된 것으로 여겨진다. A와 달리 지진이 아니라 외부 침입에 의해 파괴된 것이 거의 확실해 보여 눈길을 끌었다. 인위적 원인에 의한 파괴 흔적이 뚜렷하고, 사람 손에 희생된 것으로 보이는 유골들도 몇 군데에서 발견됐다.

그러나 그 외부 침입이 서사시 속 트로이 전쟁 같은 형태였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 부호가 붙는다. 그리스 본토의 주요 중심지 중 많은 수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파괴되거나 버려진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쪽에서 대규모 원정군을 꾸려 트로이를 공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트로이가 그리스군에 정복된 후 파괴되고 황폐해졌다는 서사시 내용과 달리, B가 파괴되면서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 거주한 흔적이 발견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C는 기원전 1180년경에서 기원전 950년경에 이르는 시기 중 후반부에 해당한다. B와 달리 외부 세력의 공격을 받아 파괴된 후 주민들이 더 이상 그 성에 살지 않게 됐다는 서사시 묘사에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 시기 역시 그리스 쪽은 대규모 공격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 트로이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 '트로이'(2004년 개봉)의 한 장면. [판씨네마㈜]

 

이처럼 유적에서 트로이 전쟁에 의해 파괴된 도시 후보로 연구자들이 몇몇 층을 제시하고 다양한 주장을 폈지만, 모두 당시의 역사적 조건이나 호메로스 서사시 내용 등과 딱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되면서, 트로이 전쟁의 역사적 실체를 밝히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청동기 시대 후반부(A, B, C 모두 이에 해당한다)의 생산력과 사회 조직화 수준 등을 고려할 때 서사시에 묘사된 것처럼 대규모 군대가, 10년 동안, 바다 건너 원정을 계속하는 게 가능했을지도 따져봐야 할 대상이다.

이와 달리 서사시 속 트로이 전쟁 이야기는 순전한 허구도, 특정한 하나의 전쟁에서 유래한 이야기도 아닐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A층에서 C층에 이르는 수백 년의 시간 동안 발생한 여러 도시의 전쟁, 그로 인한 파괴에 대한 이야기들이 트로이를 중심에 놓고 전승·재구성되면서 서사시 속 트로이 전쟁 이야기가 형성된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전쟁 이야기에 딱 들어맞는 도시 흔적이 트로이 유적의 어느 한 층에서 발굴됐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는 것도 그 때문일 수 있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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