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잊히느니 욕먹자…전문가들이 말하는 '막말의 사회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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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히느니 욕먹자…전문가들이 말하는 '막말의 사회심리학'

이민재
기사승인 : 2019-05-20 16:03:03
사회학·심리학 등 교수 7인이 분석한 원인·대안
"정치인은 '노이즈마케팅' 효과 노리고 막말"
"폭언 줄이려는 사회적 노력 함께 이뤄져야"

이연복 셰프는 한 TV프로그램에서 "짜면 '짜다'고 하지만, 싱거우면 '맛없다'고 한다"는 말을 남겼다. '맛없다'는 소리를 듣느니 간을 세게 하는 쪽이 낫다는 뜻이다. 실제 요식업계에선 '짜게 요리할지언정 싱겁게 만들지 않는다'는 말이 불문율처럼 통한다.

싱겁게 잊히느니 욕먹는 게 낫다

이 불문율은 대한민국 정치판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밋밋한 말은 묻히기 십상인지라 우리네 정치인들은 최대한 맵고 짜게 말한다. 싱겁게 잊히느니 독한 말을 하고 욕먹는 게 낫다는 거다.

혹자는 '표를 먹고 사는 사람의 생존법'이라고 한다. 통상 정치인들에겐 인지도를 높이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 그래서 '더 많이 회자될 만한 말' '더 많이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말'을 찾는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노이즈마케팅'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인을 가리켜 "부고 기사 말고는 어떻게든 언론에 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 UPI뉴스 인터뷰에 응한 전문가 7인 [UPI뉴스 자료사진]


문제는 '막말 인플레이션'이다. 누가 더 자극적으로, 세게 말하는지 경쟁이 붙는다. 날이 갈수록 악랄해지는 막말정국의 원인과 대안은 무엇일까. 사회학·심리학·신문방송학 교수들에게 UPI뉴스가 물었다.


말은 유권자의 지지를 먹고 자란다


전문가들은 수요가 공급을 만든다고 말한다. 막말에 열광하는 사람이 많으니 막말을 하는 정치인이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 정치인의 막말은 지지자에게 싸움판을 구경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카타르시스와 대리만족감을 준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 편 정치인의 막말은 '나 대신 싸워준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고 설명했다. 상대 편을 공격하는 우리 편 정치인의 막말에서 '속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막말 수위, 점점 더 높아지는 이유는


보상이 주어지면 행동은 반복, 강화된다. 전문가들은 대중이 정치인의 막말에 반응할 경우 당사자는 그 반응을 양분 삼아 더 심하게 막말을 한다고 지적한다.

곽금주 교수는 이를 ‘강화 효과’라는 심리학 용어로 설명했다. '강화 효과'는 지지를 받게 될 경우 특정 행동을 더 심하게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는 "링 위에 오른 이들에게 '더 때려'라고 부추기는 사이, 폭력의 수위가 높아지는 상황"을 예로 들었다.


물론 이는 비합리적 부추김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집단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경우 이런 비합리성을 제어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이동귀 교수는 '그룹 싱크(Group think)'라는 이론을 언급하며 집단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면 극단적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령 각 개인이 가진 발언의 강도가 5일 경우, 그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이야기를 하면 7, 8처럼 훨씬 높은 강도의 발언까지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막말에 대한 지지자의 열광이 막말 수위 상승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과 정치, 그 왜곡된 공생

전문가들은 "언론이 막말 정국에 기름을 부었다"고 말한다. 김창룡 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정치도 잘못됐지만 언론의 동반 책임이 가볍지 않다"며 언론이 막말정치를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론은 자극적 소재를 좋아해 정치인의 막말 보도를 일삼고 정치인은 언론 효과를 노린다"고 말했다. 결국 막말을 보도의 소재로 삼는 언론과 막말 정치인이 왜곡된 공생 관계를 유지하는 셈. 김창룡 교수는 "정치인에게 막말을 내뱉은 뒤 감수해야 할 비판보다 그걸 통해 얻는 노이즈마케팅, 즉 홍보 효과가 더 크다고 여기게 만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언론은 정치인의 막말을 어떻게 보도해야 할까.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보도할 때 보도하더라도 '받아쓰기 식 보도'를 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그간 우리 언론이 정치인의 발언을 받아쓰기 식으로 보도한 경향이 있는 반면, 적극적인 논평은 약했다"고 언급했다. 보도를 하되 정치인의 자극적 발언에 대한 타당성, 예절, 적절함 등을 고려해 적극적으로 비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막말 정치 줄이는 첫 단추

결국 청중이 성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숙한 시민으로서 (정치인에게)막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던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명호 교수 역시 "청중이 막말을 도외시하고 부정적으로 평가해야 정치인들도 자성한다"고 꼬집었다. 설동훈 교수는 "정치인이 극단적인 언사를 해도 전혀 처벌받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말 한번 잘못하면 패가망신 당한다는 인식이 생겨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폭언을 줄이려는 사회적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곽금주 교수는 "말은 사고를 지배하고 결국엔 행동을 만들어낸다"면서 "정치인을 비롯한 공인들의 폭언은 모방 효과도 굉장히 강해 사회 전반의 폭력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폭언 줄이기 캠페인이나 공익광고 등을 통해 경각심을 높이는 사회정화 운동을 벌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도움 주신 분들(가나다순)

곽금주 교수(서울대 심리학과)
구정우 교수(성균관대 사회학과)
김창룡 교수(인제대 신문방송학과)
설동훈 교수(전북대 사회학과)
이동귀 교수(연세대 심리학과)
이준웅 교수(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임명호 교수(단국대 심리학과)


KPI뉴스 / 이민재 기자 lmj@kpinews.kr KPI뉴스 / 강혜영 기자 kh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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