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이슬이 맺힌다는 절기, 한로(寒露). 아침저녁으로는 옷깃을 여미게 하는 쌀쌀한 바람이 불지만, 한낮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따스한 가을볕이 내리쬔다. 이 무렵의 일교차는 옷차림으로 대비할 수 있는 일상의 변화다.
하지만 지구의 일교차는 다르다. 지금 지구가 겪는 기후변화는 카디건 한 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극심한 가뭄 뒤에 폭우가 쏟아지는 등 서로 반대되는 날씨가 짧은 기간에 급격하게 오가는 '기후 위플래시(Climate Whiplash)'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위플래시(Whiplash)는 '채찍질'이라는 영어 표현이다. 기후학계는 이 표현을 빌려, 매우 건조한 상태와 매우 습한 상태가 짧은 기간에 급격하게 오가는 현상을 '수문기후 위플래시(hydroclimate whiplash)'라고 부른다.
기후 위플래시는 생태계와 농업, 사회기반시설에 큰 부담을 준다. 가뭄으로 메마르거나 산불로 훼손된 땅에 폭우가 쏟아지면 홍수와 산사태 피해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한반도에서도 7월 하순 폭염, 8월 전반 가뭄에 이어 중·하순 집중호우가 나타났다. 이를 모두 기후 위플래시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기후변화로 극단적인 날씨가 잦아지는 현실을 보여준다.
![]() |
| ▲ 지난 8월 15일 가뭄 '심각' 단계가 내려진 경남 거제에서 소방대원이 논에 농업용수를 뿌리고 있다(왼쪽 사진). 지난 9월 17일 집중호우로 침수된 거제시 옥포동 인근 도로. [뉴시스] |
농가 피해가 대표적이다. 정부의 8월 가뭄 예·경보에 따르면 최근 6개월간 전국 누적 강수량은 평년의 82.3% 수준에 그쳤다. 부산·김해·울주군에는 '경계' 단계의 심한 가뭄이 나타났고 경남 지역도 가뭄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거제시는 8월 11일 농업용수 저수율이 29.8%로, 평년의 37.3% 수준까지 떨어졌다.
가뭄과 폭염은 농작물에 직접적인 상처를 남겼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7~8월 폭염·가뭄으로 전국 농작물 5887.8㏊에서 잎마름과 과실 갈라짐(열과)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비가 내린다고 해서 해갈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뭄이 심했던 거제에는 불과 며칠 뒤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8월 15~18일 거제에는 900㎜가 넘는 비가 내렸고 농경지 336㏊가 침수됐다. 이미 건조와 폭염으로 약해진 농작물에 다시 강한 비가 쏟아지면서 또 다른 피해로 이어졌다.
기후 위플래시는 앞으로 더 잦아질 가능성이 있다. 2025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리뷰스 어스 앤드 인바이런먼트(Nature Reviews Earth & Environment)'에 실린 연구에서는 전 세계 3개월 단위 기후 위플래시가 20세기 중반 이후 31~66%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기후가 한쪽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빠르게 움직일수록 우리가 감당해야 할 위험도 커진다. 온실가스 감축과 함께 극단적인 건조와 습윤을 견딜 수 있도록 수자원 관리와 농업·산림·도시의 기후재난 인프라를 강화하는 일도 시급하다.
평화로운 가을볕을 즐기는 이 순간에도, 지구의 대기는 언제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지 꺾어버릴지 모를 거대한 채찍질을 준비하고 있다.
KPI뉴스 / 정민화 기자 mhwa@kpinews.kr
[저작권자ⓒ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