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노성열의 AI경제] 중국 'SMR 굴기' 맞설 한국의 승부수…원전 제조의 TSMC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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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열의 AI경제] 중국 'SMR 굴기' 맞설 한국의 승부수…원전 제조의 TSMC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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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 2026-09-10 11:26:59
중국, 건설·연료·금융 묶은 원전 패키지로 '60년 에너지 종속' 노려
미국은 설계, 한국은 제조…한·미 원전동맹으로 글로벌 공급망 구축
독자 i-SMR과 '개방형 파운드리' 투트랙으로 포스트 반도체 육성해야

한국이 미국 트럼프 정부 요구에 따라 단행할 1200억 달러(약 16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사업에 대형원전 8기가 들어가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재 원전의 노형(爐型)을 놓고 최종 협의 중인데 미국은 웨스팅하우스 APR 1000 모델 2기, 한국은 한국형 APR1400 모델 2기를 우선 짓고, 나머지 4기는 나중에 다시 협상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필자는 지난해 9월 칼럼에서 '미국의 원자력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Nuclear Great Again, MANGA) 전략으로 한·미 경협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자고 제안한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손잡고 미국 원전 르네상스에 맞추어 한국 원전 산업의 글로벌 진출 교두보로 삼자는 조언이다. '미국의 조선(造船)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Ship Great Again, MASGA) 전략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방미 물꼬를 텄듯, 한·미 원자력 협력은 양국에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과 동맹 결속을 가져다줄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원전 협력은 단순히 경제 동맹을 넘어, 중국의 글로벌 원전 패권 저지와 한국의 포스트 반도체 신수출 전략산업 육성에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왜냐하면 세계 에너지 시장이 재편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그 핵심 변수로 미래형 원전인 '소형모듈원자로(SMR)'가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거대한 지정학적 변곡점에 서 있다. 탄소 중립이라는 국제사회의 명분은 차치하고, 메타·아마존·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동을 위해 SMR 확보에 사활을 걸면서 원자력은 이제 기술을 넘어 국가 생존을 결정짓는 '전략 자산'이 되었다. 이 전쟁에서 가장 냉혹한 현실은 중국이 이미 '지정학적 기정사실(Fait Accompli)'을 구축하며 앞서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서구권이 규제와 인허가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사이, 중국은 압도적인 실행력을 바탕으로 SMR 시장의 퍼스트 무버 지위를 굳히고 있다. 기술적 격차를 넘어 공급망 전체를 장악하려는 중국의 야심 앞에 한국 원전은 어떤 생존 공식을 써 내려가야 하는가? 우리의 전략적 틈새 정책을 정밀 분석해보자.

중국은 미래 원전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전개 중이다. 특히 세계 최초로 상업 SMR을 가동한다는 목표 아래, ACP100(3세대)과 HTGR(4세대)의 결합이란 이원적 공습을 펼치고 있다. 단순히 전력을 생산하는 것을 넘어, 산업 구조 전체를 무탄소화하는 '통합 무탄소 산업 플랫폼'을 지향한다. 첫 번째 축은 3세대 가압경수로(PWR)인 ACP100이다. 세계 최초의 육상용 상업 SMR로, 2026년 중 상업 운전을 앞두고 이미 최종 테스트 단계에 돌입했다. 두 번째 축은 고온가스냉각로(HTGR)이다. 2023년 스다오만 발전소에서 세계 최초로 4세대 상업 운전에 성공한 중국은 2025년 12월 60개 이상의 기관이 집결한 'HTGR 현대산업체쇄연합'을 출범시키며 설계부터 유지·보수까지 수직 계열화를 완성했다. 중국은 HTGR의 고온 열을 활용해 석유화학 공정에 깨끗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수소를 생산하는 '원자력+ 중공업 생태계'를 통해 경쟁 국가들이 진입하기 힘든 강력한 경제적 해자(垓字)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 원전 산업의 진정한 공포는 기술 그 자체보다 속도에서 나온다. 2021년 첫 콘크리트 타설 후 2026년 가동이라는 58개월의 건설 사이클은 '58개월의 마법'으로 불린다. 미국의 뉴스케일 원전이 비용 상승과 지연 끝에 프로젝트를 취소했던 사례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속도를 바탕으로 건설 사이클을 무기화하며 제조 패권까지 거머쥐려 한다. 중국은 설계, 제조, 건설, 연료 주기에 이르는 모든 지적 재산권을 독점하며 외부 의존도를 제로(0)로 만들었다. 이는 향후 글로벌 수출 시장에서 가격 결정권을 중국이 쥐게 됨을 의미한다. 에너지안전신문에 따르면 중국원자력공사(CNNC) 관계자는 "이제 설계, 제조, 건설, 연료 주기에 이르는 모든 핵심 지적 재산권을 확보했다. 후발 주자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선두 주자로 올라섰다"고 자신감을 표출했다. 이러한 수직 계열화 모델은 표준화된 대량 생산을 가능케 하며, 중국산 SMR을 '가장 저렴하고 빠른' 대안으로 각인시키고 있다.

중국의 원전 산업은 국내용이 아니다. 중국은 '일대일로' 파트너 25개국 이상과 원전 협력을 맺으며 거대한 경제 블록을 형성하고 있다. 원전 수출은 단순한 설비 판매가 아니라, 연료 공급과 유지보수를 매개로 한 '60년의 지정학적 족쇄'를 채우는 행위에 다름없다.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핵연료 전략이다. 차세대 SMR의 핵심인 고순도저농축 우라늄(HALEU) 공급망에서 중국은 이미 자국 내 생산체계를 갖춘 반면, 서방 세계는 여전히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은 설계+건설+연료+금융+교육을 묶은 '턴키(Turnkey) 패키지'를 무기로 신흥국들의 에너지 주권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원전의 반격 전략은 무엇인가. 중국의 물량 공세와 10~15년의 선행 격차 앞에서도 한국에는 확실한 반전 카드가 있다. 바로 '파운드리(Foundry)형 제조 역량'이다. 미국이 설계 능력은 보유했으나 실제 제작할 '근육(제조 생태계)'을 상실한 상황에서,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제조 파트너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빌 게이츠의 테라파워(TerraPower)가 HD현대, SK, 두산에너빌리티와 손을 잡은 이유는 한국의 '파운드리급' 신뢰도 때문이다. 한국형 SMR의 생존 공식은 개방형 파운드리(Open Foundry)이다. 이는 중국의 폐쇄형 통합 방식(Closed Integration)과 대척점에 있다.

우리나라의 전략은 한마디로 원전 제조의 TSMC화라 할 수 있다. 한국은 미국식 표준 설계를 가장 완벽하고 저렴하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다. 두산에너빌리티의 나트륨 원자로 핵심 기자재 수주가 대표적인 사례로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2025년 5월 선포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행정명령과 NRC(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18개월 라이센싱 데드라인 의무화는 한국 제조망에 거대한 순풍이 될 것이다. 또, 한국은 미국과 협력하여 중국의 연료 독점에 맞서는 서방의 연료 공급망 허브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 이 같은 HALEU 동맹에는 오클로의 잉여 플루토늄 활용 프로그램 등과의 연계가 핵심이 될 것이다. 중국이 자국 기술로만 구성된 '폐쇄형 수직 계열화'라면, 한국은 서방 전체의 설계력을 실물로 구현해내는 '개방형 제조 플랫폼'으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중국이 SMR 배치 속도에서 10년 이상 앞서 있다는 것은 냉정하게 인정해야 할 현실이다. 그들은 이미 상업 운전 데이터를 축적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 '검증된 대안'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중국의 수직 계열화된 원전 생태계에 종속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이 한국의 기회다. 한국은 독자 모델인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의 성공과 동시에, 글로벌 설계 기업들의 핵심 제조 기지가 되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전 세계 시장에 단호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에너지 주권을 담보로 중국의 60년 족쇄를 찰 것인가, 아니면 한국의 신뢰할 수 있는 제조 파트너십을 통해 자유롭고 안전한 에너지의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한국 원전 산업의 미래는 바로 이 '신뢰의 격차'를 어떻게 제조 경쟁력으로 치환하느냐에 달려 있다. 거대한 용(龍)에 맞서는 스마트한 동맹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 노성열 논설위원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5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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