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33년 만에 용의자 밝혀낸 '살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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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만에 용의자 밝혀낸 '살인의 추억'

이민재
기사승인 : 2019-09-25 14:08:22
DNA분석으로 '화성연쇄살인' 범인 지목
처제 강간,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 복역 중…공소시효 만료
공소시효 끝나 처벌 어려워…경찰 "끝까지 파헤친다"

범인은 영화 속에서조차 잡히지 않았다. 2003년 개봉한 '살인의 추억' 얘기다. '살인의 추억'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던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는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한 형사 박두만(송강호 분)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끝난다. 그리고 지난 19일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미제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지목됐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처음 발생한 지 33년 만이다.

 

▲ 영화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장면. 형사 박두만(송강호 분)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는 부산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이모(56) 씨로 1994년 발생한 '청주 처제 살인사건'의 범인이다. 이 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1995년부터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경찰은 DNA 분석기법을 결과를 토대로 이 씨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 19일 오전 반기수 2부장 주재 브리핑을 열고 용의자 이 씨의 DNA가 10차례에 걸쳐 일어난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3차례 사건의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와 일치한다고 밝혔다. 3차례 사건은 5, 7, 9차 사건이다. 특히 9차 사건에서는 피해 여성의 속옷에서 이 씨의 DNA가 검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이 씨는 DNA 검출에도 불구하고 혐의를 전면부인하고 있다. 경기남부청은 전담수사팀을 이 씨가 수감된 부산교도소로 보내 수차례 조사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처제 강간,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 복역 중…공소시효 만료

이 씨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확정된 2006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그는 1994년 충북 청주시 흥덕구 자신의 집에 놀러 온 처제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를 먹인 뒤 성폭행하고, 망치 등으로 머리를 여러 차례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살인 강간, 시체유기)로 기소됐다. 피해자인 처제는 당시 20세였다.

1, 2심 재판부는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하급심과 달랐다. 대법원은 "원심은 피고인이 처제에게 수면제를 먹인 점으로 미뤄 계획적인 범행으로 인정했으나 살인 범행을 사전에 계획한 것으로 볼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며 1995년 1월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했다. 4개월 뒤 이 씨는 파기환송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이 씨의 처제 살해 수법은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자행된 수법과 비슷했다. 두 사건 모두 시신이 범행 현장 인근에 유기됐다. 이 씨는 자신이 성폭행한 처제를 살해한 뒤 시신을 집에서 약 800m 떨어진 창고에 은폐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시신들은 주로 범행 현장 인근인 농수로나 축대, 야산 등에서 발견됐다.

시신과 함께 피해자의 옷이나 속옷 등이 발견된 점도 유사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현장에서는 피해자가 평소 입던 스타킹과 속옷 등이 여럿 발견됐고 이 씨가 살해한 처제의 시신 역시 여성용 스타킹으로 묶여 있었다.

유력 용의자 이 씨는 모범수다. 수감생활 20년 동안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수감자는 총 4등급으로 분류되는데 이 씨는 가장 높은 1급 모범수로 분류됐다. 그는 1995년부터 부산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며 한 차례도 징벌이나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전해졌다.

 

▲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이모(56) 씨가 수감된 부산 강서구 대저동 부산교도소 [뉴시스]


생활만 곧았던 게 아니다. A 씨는 수감생활 동안 예술 활동에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도예 활동에 재주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손재주가 좋아 2011년과 2012년 수감자 도자기 전시회에 직접 만든 도자기를 출품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그의 평소 행실 때문에 한 관계자는 "그가 무기 징역을 선고받지 않았더라면 이미 가석방이 됐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극악무도한 살인자의 얼굴을 감추며 살아온 셈이다.

경찰 인력 205만 명 투입한 장기미제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은 희대의 장기미제사건이다. 1986년 9월 처음 사건이 발생한 이래 동원된 경찰 연인원은 205만여 명으로, 단일사건 가운데 최다였다. 수사대상자만 2만1280명이었고 지문대조자는 4만116명, 모발 감정은 18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외에도 각종 수사기록이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경찰은 사건 해결에 수사력을 집중했지만 범인을 잡진 못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7, 9, 10차 사건 용의자로 지목된 3명의 용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8차 사건은 모방 범죄로 결론 났다.

경찰은 2006년 4월 2일 마지막 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된 후에도 관련 제보를 접수했다. 또 DNA 기술 개발이 이뤄질 때마다 증거를 재차 대조하는 등 진범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지만 범인을 잡아내진 못했다.

공소시효 끝나 처벌은 어려워…경찰 "그래도 끝까지 파헤친다"

경찰은 '끝까지 파헤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경기남부청은 반기수 2부장을 본부장으로 57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꾸렸다. 수사본부는 미제사건수사팀, 광역수사대, 피해자 보호팀, 진술 분석팀, 법률 검토팀, 외부전문가 자문위원 등으로 구성됐다. 경찰은 그간 모아온 많은 양의 수사기록도 원점에서 다시 살필 예정이다.

 

▲ 반기수 경기남부지방경찰청 2부장이 지난 19일 오전 경기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진행 상황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병혁 기자]


다만 유력 용의자 이 씨가 이 사건의 진범으로 드러나도 처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2006년 4월 2일 마지막 10차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경찰은 수사가 마무리되면 공소권 없음으로 A 씨를 송치할 예정이다.

최악의 미제사건인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를 30여 년 만에 특정한 가운데 다른 장기 미제사건들도 해결될지 관심이 쏠린다. 대표적인 장기 미제사건으로는 대구 '개구리 소년 사건'과 '여고생 손목 살해 사건' '태완이 사건' 등이 있다. 현재 전국 17개 지방경찰청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이 수사 중인 미제 살인 사건은 총 268건이다.

 

KPI뉴스 / 이민재 기자 lmj@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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