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명량해전 장소를 우리는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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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 장소를 우리는 모른다고?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4-10-18 11:20:20
[김덕련의 역사산책 ⑧] 숨은 전장 찾기
구체적 위치 규명 안 돼…학계 최대 쟁점
'해협서 폭 가장 좁은 곳' 주장, 힘 잃어
유력 대안 ① '전라우수영 앞바다 일대'
유력 대안 ② '양도를 최전방 삼아 포진'

1597년(선조 30년) 음력 9월 16일, 조선 수군은 명량해전에서 열 배가 넘는 일본군에게 완승을 거뒀다. 양력으로는 10월 후반부, 즉 이맘때 벌어진 역사적 사건이다. 

 

그간 이 전투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뤄져 잘못된 상식을 여럿 바로잡을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닷속에 철쇄를 설치해 일본 군선을 격침시켰다는 '수중철쇄설'이다. 

 

▲ 2014년작 영화 '명량'의 해외 포스터. [CJ ENM]

 

사극 등에서 사실인 것처럼 방영했지만 다수 연구자는 근거가 희박한 설화라고 본다. 이 전투에 거북선을 투입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도 학계에서 사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풀리지 않은 의문도 물론 있다. 그중 하나는 전투가 오전 몇 시에 시작됐느냐는 것이다. 8시 전후, 8시 30분경, 9시 전후, 10시 45분경, 11시 전후 등 견해가 천차만별이다. 아울러 참전한 일본군 전체 규모 등도 논란이다.

여러 의문 가운데 학계에서 최대 쟁점은 뜻밖에도 해전 장소 문제다. "뭔 소리야, 전장은 당연히 명량에서 유속이 가장 빠른 곳 아냐"라고 반문할 독자가 적지 않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이 해전이 구체적으로 어디서 벌어졌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렇게 된 것은 기본적으로 이 전투에 관한 기록들의 장소 관련 서술이 상세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문헌 사료는 물론 이 일대 바다의 밀물과 썰물 흐름을 분석한 조류·조석표와 해저 지형 등을 분석하며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다.

 

▲ A~D는 명량해전 장소 후보로 거론된 곳들이다. 1~5는 이 해전과 관련된 주요 지역을 각각 가리킨다(1은 명량해협, 2는 전라우수영, 3은 양도, 4는 해남, 5는 진도). [네이버 지도 갈무리]

 

이를 통해 전장 후보로 제시된 곳은 크게 네 군데다(위 이미지의 A·B·C·D). A는 명량해협에서 폭이 가장 좁은 곳이다. 수십 년간 상당수 연구자는 물살이 제일 센 이 일대가 전장일 것이라고 여겼다. 유속이 가장 빠른 곳에서 싸웠을 것이라는 다수의 상식과 부합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A설은 오늘날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조류가 흐르지 않는 짧은 시간대를 제외하면 물살이 너무 세고 폭이 좁아 해전이 사실상 불가능한 곳이라는 비판이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조선 군선의 성능을 감안하면 A 일대에서 몇 시간 동안 전투를 이어가는 것은 고사하고 명량의 거센 역류를 거슬러 A 지점까지 동진해 진을 치는 것조차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다. 해전 당일 명량해협 조류 속도는 군선 속도의 2배가 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A설의 주요 논자가 근거로 제시한 조류·조석표에 오류가 있다는 점도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A설의 문제점을 비판하며 등장한 주장 중 양대 축이 B설과 C설이다. D설은 B설과 C설이 제시한 장소를 가로축과 세로축으로 연결했을 때 만나는 지점을 전장으로 추정했다.

B는 전라우수영 앞바다 일대다. 이곳이 주목받은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A 일대보다 유속이 다소 느리고 폭이 넓어져 해전이 가능한 장소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난중일기'에 이순신이 해전 당일 적선이 접근한다는 보고를 받고 전투 준비 후 바다로 나갔는데 적선이 곧바로 우리 전선들을 에워쌌다고 기록한 점이다. 이날 조선 수군이 출항한 곳은 전라우수영이다. B설은 그러니 '곧바로' 에워싸이며 전투가 벌어진 곳은 그 앞바다 아니겠느냐고 추론한다.

 

▲ 제장명 논문에 실린 B설의 명량해전 상황도. [제장명 논문 PDF 갈무리]

 

C는 명량의 좁은 수로를 지나면 나오는 섬인 양도(洋島) 일대다. C설은 조선 수군이 양도 일대를 최전방으로 삼아 포진하고 일본군의 서해 진격을 막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추정의 밑바탕에는 B설에 대한 비판이 자리하고 있다. 비판 근거 중 하나는 전투 중 이순신이 아군의 여러 배를 돌아보니 1마장(약 392미터)쯤 물러나 있었고 전라우수사 김억추의 배는 멀리 떨어져 있어 묘연했다는 '난중일기' 기록이다. 

 

C설은 배후의 전라우수영 쪽 육지까지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B는 이 기록과 부합하는 장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 제장명 논문에 실린 C설의 명량해전 상황도. [제장명 논문 PDF 갈무리]

 

하지만 B설에 대한 C설의 비판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까지 진행된 명량해전 장소에 대한 갑론을박을 종합하면 통설로 여겨지던 A설이 힘을 잃고 B설과 C설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D설이 제기된 상태라 할 수 있다.

김한민 감독의 2014년작 영화 '명량'에는 이 전투에 참가했던 백성들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알까 모르겄네."

명량해전 장소 찾기는 그들의 개고생과 피눈물을 잊지 않기 위한 작업의 일환이다. 규명 노력과 탐구가 계속돼야 하는 이유다.

△주요 참조=이민웅 논문(「鳴梁海戰의 경과와 주요 쟁점 考察」, 『군사』 47, 2002), 제장명 논문(「정유재란기 명량해전의 주요 쟁점과 승리 요인 재검토」, 『동방학지』 144, 2008), 신성재 논문(「명량해전 연구의 성과와 전망」, 『한국사연구』 170, 2015), 변도성‧이민웅‧이호정 논문(「명량해전 당일 울돌목 조류‧조석 재현을 통한 해전 전개 재해석」, 『한국군사과학기술학회지』 14-2, 2011), 박주미 논문(「명량해전 이후 조선 함대의 해상진 이동 이유에 대한 전략적 분석」, 『한국군사학논총』 10-1, 2021)

 

KPI뉴스 / 김덕련 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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