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한국형 인공지능(AI) 생태계의 세 축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대통령은 이 세 분야를 '대도약을 위한 삼각 축'이라고 불렀다. 인공지능 경쟁이 더 이상 모델과 알고리즘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인식에서 비롯한다. AI를 돌릴 반도체, 막대한 연산을 감당할 인프라인 데이터센터, 제조와 로봇 현장에 AI를 적용할 피지컬 AI, 그리고 이를 떠받칠 전력과 물까지 모두 국가 경쟁력의 일부가 됐다.
발표의 골자는 대강 이렇다. 한반도 서남권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기지를 조성하고, 충청권에는 HBM 등 첨단 패키징 거점을 키운다. 동남권과 대경권은 소재·부품·장비와 전력반도체의 축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제조업 AI 전환과 로봇산업을 묶어 피지컬 AI를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SK·GS·네이버 등과 협력해 초대형 AI 데이터센터도 구축한다. 반도체, 데이터센터, 로봇과 제조 현장을 하나의 순환 구조로 연결하겠다는 그림이다.
방향은 맞다. 그동안 한국의 AI 담론은 거대언어모델(LLM) 개발과 챗봇 서비스 경쟁에 지나치게 쏠려 있었다. 그러나 AI 패권의 실제 기반은 훨씬 물질적이다. GPU와 HBM, 전력망, 냉각 설비, 데이터센터, 로봇 부품, 제조 현장의 데이터, 숙련 인력, 산업단지 입지가 모두 AI 경쟁력이다. 미국과 중국이 AI를 안보·산업·에너지 정책의 결합체로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발표는 적어도 이 구조를 제대로 봤다.
피지컬 AI를 국가전략의 한 축으로 세운 점도 평가할 만하다. 한국의 강점은 제조업이다. 자동차, 조선, 배터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물류, 의료기기 같은 현장은 AI가 실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공간이다. 모델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장과 물류창고, 병원과 농장, 항만과 발전소에서 작동하는 AI가 필요하다. 현장에서 모인 데이터가 다시 데이터센터로 들어가고, 그 데이터가 모델과 반도체 수요를 키우는 선순환이 이루어진다면 한국형 AI 전략의 차별성이 생길 수 있다.
지역 균형발전의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한국의 첨단산업은 수도권 남부 축에 과도하게 몰려 있다. 용인·평택·화성·이천을 잇는 반도체 벨트는 세계적인 집적지이지만, 동시에 교통·주거·인력·전력·용수 부담을 키우는 병목이기도 하다. 수도권은 과밀이고 지방은 소멸을 걱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서남권과 충청권, 동남권, 대경권을 첨단산업 지도 안에 다시 배치하겠다는 접근은 산업정책이자 동시에 국토정책이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냉정한 질문이 필요하다. AI와 반도체는 미래 산업이라는 세련된 이름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기와 물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산업이다. 반도체 공정은 막대한 초순수(超純水)를 필요로 한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전기를 먹고, 그 전기가 만든 열을 식히기 위해 다시 냉각 설비를 돌린다. 피지컬 AI 역시 공장 자동화와 로봇 실증, 엣지 컴퓨팅 인프라를 요구한다. AI 메가 프로젝트는 곧 에너지 메가 프로젝트이자 물 관리 메가 프로젝트다.
정부도 이를 의식해 재생에너지, 원전, 송전망, 다목적댐, 발전용수, 대체 수자원 활용 방안을 함께 언급했다. 하지만 발표문에 적힌 전력과 물이 실제 현장에서 그대로 확보되는 경우는 드물다. 송전선 하나를 새로 깔 때도 주민 반발, 보상, 지중화 비용, 환경영향평가가 뒤따른다. 댐과 하천수, 발전용수를 산업용수로 전환하는 일도 생활용수와 농업용수 불안을 낳을 수 있다. '국가전략'이라는 말만으로 지역의 우려가 사라지진 않는다.
서남권 반도체 구상에서 가장 민감한 쟁점은 용수다. 일부에서는 영산강·섬진강 유역의 미사용 계약 수량과 하천수, 수질 개선, 재이용 기술을 활용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물이 있다"는 주장과 "기후변화와 가뭄, 산업수요와 인구 유입까지 고려해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주장은 다르다. 반도체 팹이 2개, 3개 들어서고 협력업체와 주거단지가 함께 늘어나면 물 수요는 단순한 공장 용수의 문제가 아니다.
데이터센터도 다르지 않다. AI 전용 데이터센터는 일반 데이터센터보다 전력 소비와 발열이 크다. 전력망 입장에서는 거대한 신규 수요다. 발전량만 늘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안정적 전력을 요구한다. 태양광은 밤에 발전하지 않고, 풍력은 바람에 좌우된다. 원전을 신규 건설한다 해도 결국 저장장치, 안정 전원, 송전망, 수요반응, 냉각 효율, 입지 분산이 동시에 맞아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늦어지면 데이터센터는 지역 전력망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전력과 용수 계획을 산업계획의 부속 문서가 아니라 본문으로 올려야 한다. 반도체 팹과 데이터센터 발표에는 투자금액만이 아니라 예상 전력수요, 피크 수요, 냉각 방식, 용수 사용량, 재이용률, 폐열 활용 계획, 송전망 보강 일정이 함께 공개돼야 한다. 물 사용 효율, 전력사용 효율, 초순수 재활용, 폐열 회수, 재생에너지 직접구매 같은 기준도 초기 인허가 단계부터 넣어야 한다. 나중에 친환경 설비를 덧붙이는 방식으로는 늦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이 지역 부담 전가로 바뀌어서도 안 된다. 서남권 주민에게 오는 것은 일자리와 세수만이 아니다. 송전선, 변전소, 냉각수, 폐수, 교통량, 주거비 상승, 환경 리스크도 함께 온다. 정부가 지역을 설득하려면 "미래산업이 들어오니 감수하라"가 아니라, 생활 인프라와 교육, 의료, 주거, 교통, 환경 감시권을 함께 보장해야 한다. 첨단산업단지가 진짜 도시가 되려면 공장 옆 숙소가 아니라 사람이 살 만한 생활권이어야 한다.
대통령 직할 속도전도 필요하지만, 속도전이 검증 생략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AI 경쟁에서 느림은 패배일 수 있다. 그러나 물과 전력 부족, 지역 갈등, 환경 리스크를 과소평가한 빠름은 더 큰 실패로 돌아온다.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는 한번 들어서면 수십 년 동안 지역의 에너지와 물 구조를 바꾼다. 직할 체계가 해야 할 일은 인허가를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를 없애고 공개 검증의 속도를 높이는 일이다.
이번 3대 메가 프로젝트는 방향으로는 옳다. AI 시대의 주권은 모델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반도체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하며 AI를 제조와 로봇, 국방과 돌봄, 농업과 물류 현장으로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반도체·피지컬 AI·데이터센터를 삼각축으로 묶은 전략은 한국 산업의 강점을 살리는 현실적 접근이다.
하지만 국가전략은 구호가 아니라 병목을 해결하는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이 계획의 병목은 분명하다. 전력망, 물, 지역수용성, 환경 투명성이다. 국민이 물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그 전기는 어디서 오는가. 그 물은 누가 쓰던 물인가. 가뭄이 오면 누가 양보하는가. 폐열과 폐수는 어떻게 처리되는가. 지역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감당하는가.
AI 메가 프로젝트가 진짜 대도약이 되려면 정부는 산업의 언어만이 아니라 물과 전기의 언어로도 설명해야 한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를 짓는 나라는 많다. 그러나 전력과 물, 지역과 환경까지 설계해 지속 가능한 AI 산업국가를 만드는 나라는 드물다. 한국이 노려야 할 초격차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 |
| ▲ 노성열 논설위원 |
● 노성열은
30여 년 경력의 경제부 기자로 산업계와 인공지능(AI)을 주로 취재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 부처 및 경제 단체를 출입하면서 삼성, 현대, SK 등 대기업과 중소벤처업계 현장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다루어왔다. 일본, 법제도, AI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등이 주 관심분야다.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에도 진출해 지식재산권(IP) 인식 제고와 공학교육 개혁에 매진하고 있다.
△KAIST 공학석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일본지역학 석사, 고대 법대 및 한국외국어대 일본어학과 학사 △1991년 문화일보 입사 △북리뷰팀, 법조팀, 산업팀장, 전국(지방자치)부 부장 △한국지식재산기자협회(KIPJA) 회장(2024~)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외부협력 총장 보좌역(2024.6~) △영국 옥스퍼드대 VOX(Voice From Oxford) 한국지부 대표(2024~)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과학과 기술' 편집위원(2023~) △국가녹색기술연구소 정간물 편집위원(2024~)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책자문위원(2020~2022)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미래전략위원회 미래정책분과 자문위원(2021~2023)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인공지능 활성화 방안 연구' 총괄위원(2023) △주요 저서: 뇌 우주 탐험(이음, 2022), 인공지능 시대 내 일의 내일(동아시아, 2020)
[저작권자ⓒ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