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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문학공간] "전하, 그때 왜 그리하셨습니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6-04-24 17:00:35
조선시대 금서 '명기집략' 다룬 강동수 장편 '백탑의 달'
새 세상 꿈꾼 북학파와 의기투합한 정조의 입체적 면모
갇힌 원본 사료 끌어내 적절하게 인용, 인문적 서사 지향
"그들의 개혁이 성공했다면 식민지와 분단은 없었을 것"

'신들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어찌하여 불온한 책 한 권을 소지했다 하여 선비의 목을 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게 나라가 선비를 대하는 법도이온지요. …전하, 그때 왜 그리하셨습니까. 어찌하여 전하에게 충심을 바치던 순결한 선비를 죽음의 길로 내모셨습니까. 군부는 아비와 같고 신자는 자식과 같다고 신은 어려서부터 배워왔습니다.'

 

길 가던 이들의 가방을 뒤져 이른바 '불온서적'이 발견되면 바로 연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표현과 사상의 자유가 극도로 억압된 극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런 일들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조선의 국통을 왜곡한 서적을 지니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의금부에 잡혀가 고문을 당한 뒤 중인환시(衆人環視)리에 참형되는 끔찍한 일이었는데, 실록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일은 아니다. 

 

▲ 조선시대 금서 사건을 끌어와 표현과 양심의 자유를 돌아본 소설가 강동수.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강동수 장편소설 '백탑의 달'(실천문학)은 18세기 북학파의 거장 박제가의 시선을 통해 당대 지식인들의 연대와, 개혁 군주로 알려진 정조의 입체적인 면모를 그려낸 인문적 역사소설이다. 이 소설은 18세기 조선 지식인 사회를 뒤흔들었으나 대중에게는 생소한 '명기집략(明紀輯略)'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다. 1771년(영조 47년), 중국에서 유입된 역사서 '명기집략'에 조선 왕실의 계보와 정통성을 부정하는 내용이 담겼다는 이유로 선비와 책쾌(冊儈·책 거래 중개상)들이 목숨을 잃거나 유배되었던 책화(冊禍) 사건이다.


작가는 이 사건이 정조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노론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기획한 왕권 강화용 책략이었음을 추리해낸다. 이 사건은 개혁 군주에게 희망을 걸었던 북학파 지식인들에게 좌절을 안겨주었다. 정조가 세손 시절 '세심정'에서 북학파와 회맹하여 군신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지만,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을 꿈꾸었던 지식인들의 꿈과 통치자의 입장에서 왕권을 사수하고자 했던 군주의 길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작가의 통찰이 소설에 스며들었다.

소설의 미학적 중심에는 두 장의 그림이 놓여 있다. 박제가(1750~1805)가 유배지 종성에서 그려낸 '세심정계회도(洗心亭契會圖)'와 연경에서 완성한 '연평초령의모도(延平髫齡依母圖)'가 그것이다. 1769년 봄, 마포 세심정에서 세손 이산(정조)과 백탑파 천재들이 맺었던 은밀한 회맹이 희망찬 출발을 상징한다면, '연평초령의모도' 속 고독한 소년의 뒷모습은 좌절된 조선의 꿈과 정조의 깊은 고독을 투사한다.

작가는 '영조실록' '정조실록', 박제가의 '정유각집' 등 치밀한 사료 조사를 바탕으로 팩션(Faction)의 묘미를 살렸다. 박제가가 잃어버린 딸을 애도하며 쓴 묘지명이나, 문체반정에 항의하며 정조에게 올린 도발적인 자송문 '비옥희음송' 등의 원문을 소설 속에 정교하게 녹여내어 단순한 서사적 재미를 넘어선 묵직한 인문적 울림을 선사한다. 

-'명기집략'에 주목한 배경은?
"같은 시대의 '문체반정' 같은 사태에 비해 거의 안 알려진 이 사건을 실록에서 발견하고 사상과 표현, 양심의 자유와 직접 맞닿는다는 차원에서 관심을 가졌다. 영조대의 이야기이지만 현대적인 화두와도 연결이 될 수 있으니 써볼 만하겠다 싶었다."

-박제가를 화자로 내세운 이유는?

"박제가는 실용적인 '북학의'로 유명하지만, 연암 박지원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조명된 측면이 있다. 그는 네 차례나 연경을 드나들며 중국 지식인들과 깊이 교류한 국제적인 인물이자, 시와 그림에도 능한 예술가였다. 위작 논란이 있긴 하지만 그가 연경에서 그렸다는 '연평초령의모도'를 보면서, 서양풍의 구도와 고독한 분위기에서 정조의 어린시절을 읽어내고 박제가를 화자로 내세웠다." 

-소설 속 '정조'는 개혁군주의 이미지와는 결이 다르다.
"북학파와 정조가 지녔던 개혁적 관점은 근본에서 서로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 정조 입장에서는 왕조 질서를 지키겠다는 것이고, 북학파는 부국강병과 문명개화가 더 앞선 것이었다. 가령 글만 보더라도 백탑 시사 쪽 사람들은 고루한 성현의 말만 쓰지 않고 살아있는 당대의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담고 싶어했다. 권력자인 정조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를 함부로 떠드는 건 통제를 어렵게 만든다. 왜 성현의 말씀에서 벗어나느냐, 옛날로 돌아가라는 게 이른바 '문체반정'일 텐데 이는 왕조 질서를 위한 정조의 노력이었다. "

 

'그래. 너희의 원망을 모르지 않는다. 그때 과인은 노론을 제압할 명분이 필요했고, 그자들을 누르기 위해서는 희생양이 필요했다. …권신과 척신의 전횡을 물리치고 무너져 가는 사직의 기둥을 내 어깨로 떠받쳐야 할 책무가 있었다. 밤낮없이 나를 노리며 대궐의 담장을 뛰어넘는 자들의 칼날을 막으려고 새벽까지 옷을 벗지 못한 채 서안에 앉아 책장을 넘길 때 책 속의 글자들은 항쇄고 족쇄였다.'

 

박제가가 정조를 독대하여 묻고 답하는 소설 속 대사는 정조의 입체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박제가는 함경도 종성으로 유배를 가서 그곳에서 그린 젊은 시절 군신의 계회도 뒷면에 정조를 초인으로 여겼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아픔을 써넣었다. 허구의 설정이긴 하지만, 그 그림 뒷면의 화기(畵記)는 이렇게 흘러간다.

'기축년 사월 초나흘 무르익은 봄날 저녁 금성위 별서에서 오래 사귀어 왔던 스승과 존장, 벗이 모여들어 시회를 열었다. 시와 문장, 그림을 논하는 와중에 시국의 흐름에 대해서도 뜻을 교환하였다. 주흥이 도도하던 와중에 천만뜻밖에도 신분을 감히 밝힐 수 없는 귀한 분이 왕림하셨다. 모두 부복하여 황황히 절을 올리매 그분은 정답게 우리를 격려하셨는데 그분의 용자는 물속에 담긴 용이 물결을 가르며 떠오르는 듯했다. 그분을 우러르매 감복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엄동설한 찬 방에 홀로 누워 그때의 일을 떠올리다 새삼 이 그림을 남긴다.'

-사료를 소설에 적절하게 인용해 인문적 서사의 묘미를 이끌어낸다.
"정조와 백탑 시사 사람들이 세심정에서 만나 비밀결사를 했다는 요소를 제외하고 나머지 대부분은 역사에 있는 이야기다. 당시 노론 소론 당쟁의 뿌리와 사도세자 죽음을 야기한 '임오화변'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도록 원본 기록을 삽입했다. 문체반정 당시 박제가의 자송문(반성문)이나 '명기집략'의 수정을 요구하는 진주문도 일부러 고전 문장의 단아함을 보여주기 위한 전략이었다. 단순한 스토리텔링을 벗어난 인문적 서사를 지향했다."

 

▲ 강동수는 "인문적 재미와 이야기의 선명성을 확보한 움베르토 에코 스타일 소설로 나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정조가 급작스럽게 사망하지 않고 북학파와 의기투합해 역사가 전개됐다면?
"역사에서 가정은 부질없는 짓이라고는 하지만 영·정조 때 개화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좀더 적극적으로 문물을 수입했다면 지금과는 다르게 역사가 진행됐을 것이다. 과장된 상상일지 모르지만 식민지와 분단으로 이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당시 북학파들의 개혁 열망이 좌절되는 과정과 정조의 생각과 결단을 보다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199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와 30여년 째 작가로 살고 있는 강동수는 2010년에도 고종시대의 개화파를 다룬 '제국익문사'를 펴냈다. 그는 돌아보니 자신이 개화파들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쏠렸던 것 같다고 했다. 올해에는 이번 장편을 필두로 해외 입양아 문제를 다룬 장편 '자클린느를 위하여'(가제)가 출판사에 넘어가 있고, 연말에는 두툼한 산문집도 펴낼 예정이다. 부산 국제신문 논설실장으로 퇴임한 후 경성대 교수와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거친 뒤 전업작가로 나서 왕성하게 집필한 결실이다.

그는 "이번 소설에서는 지식도 못 미치고 한국 독자들도 용납을 안 할 것 같아 상당 부분을 덜어냈지만, 궁극에는 공부를 더 해서 인문적 재미와 이야기의 선명성을 확보하는 움베르토 에코 스타일로 작품을 써보고 싶다"고 밝혔다. 박제가가 시집 보낸 딸의 죽음을 한탄하며 적은 묘지글 한 대목.

'그날 밤 너의 어린 두 동생을 말에 태우고 비를 무릅쓰고 팔십 리를 달렸는데 마상에서 부고를 듣고는 들판에서 통곡했다. …어찌 앞일을 정할 수 있으랴.'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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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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