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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문학공간]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가 울리는 북소리"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6-05-22 10:21:36
노벨문학상 올가 토카르추크 '여러 개의 북을 두드리며'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우주의 박동에 내맡기는
허구의 경계 허물고 다양한 형식으로 펼치는 이야기들
"작가란 무정부주의자, 진실의 실험가, 대안의 발명가"

'또 하루가 지나며 나는 서서히 깨달았다. 그들의 북소리는 낮에도 절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다만 낮에는 각자의 집 안에서 저마다 따로 연주했고, 어떤 소리는 햇살 속에서 조용히 사그라들기도 했을 뿐이었다. …매일 저녁 저 북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세상이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경종을 울리는 북소리, 경고를 보내는 북소리, 그리고 잠을 깨우는 북소리.' 

 

▲ 폴란드 노벨문학상(2018)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 그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서사적 상상력과 다양한 형식으로 '북소리'를 만들어냈다. [©Jacek Kołodziejsk, 은행나무 제공] 

 

도시의 오아시스 같은 허름한 무허가 판잣집들에서 북소리가 들린다. 낮이고 밤이고 쉼 없이 울리는 북소리는 다양하다. 밤에는 북들로만 이루어진 오케스트라처럼 연주되기도 한다. 새벽에 모두 잠이 들었을 때도 누군가는 파수꾼처럼 홀로 깨어 북소리의 박동을 유지한다. 그 도시에 여행자로 들렀던 여자도 그들 틈에 끼어 북소리가 일깨우는 흐름에 합류한다. 아상(我相)에 사로잡힌 나를 벗어버리고 고정된 자아가 감옥이자 착각이었음을 깨닫는다.

201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단편집 '여러 개의 북을 두드리며'(최성은 옮김·은행나무)의 표제작 이야기다. 19개의 단편이 집적된 이 두툼한 소설집은 토카르추크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방랑자들'의 모태 격이다. 다양한 내용이 각기 다른 형식으로 펼쳐지는데, 이야기들은 마지막에 배치된 표제작의 북소리로 수렴된다. 이야기 하나하나는 도처에서 시공을 넘나들며 전개되는 인간들의 삶을 각각의 북소리로 연주하는 듯하다.

토카르추크는 "리얼리즘이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관한 서술일 뿐, 세상이 실제로 어떤지에 관한 서술은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시적 진실'을 토대로 자주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어서는 맥락이다. 첫머리에 배치한 '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는 그러한 생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단편이다.

추리소설 애독자인 C는 말라붙은 핏자국을 연상케 하는 기묘한 빛깔의 어두운 표지에 이끌려 그 책을 샀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저택에 모여 '살인자 게임'만 진행할 뿐 여느 추리소설처럼 아무도 죽지 않는다. 답답한 C는 점차 책 속의 인물들에게 짜증을 느끼고 마지막 페이지를 훔쳐볼 마음까지 먹는다. 성실한 독자이자 장르에 대한 예의와 충절을 지켜온 그녀는 진정한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그런 짓거리야말로 범죄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을 챙기는 일상의 주부 역할을 하면서 틈틈이 이 소설을 따라가던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느 틈엔가 소설 속 게임이 진행되는 거실로 들어가 게임 진행자를 살해한 뒤 돌아온다. 소설 속에서는 소동이 일어나고 누가 살인을 했는지 갑론을박이 이어지면서 수사관도 참여한다. C는 일상을 꾸리다가 짬을 내어 다시 다른 인물을 살해하는데, 정작 현실로 소설 속 서사가 쳐들어오는 사태에 직면한다.

'주체'에서는 작가의 도플갱어가 나타나 작가 행세를 한다. 작가가 작가 자신의 행태를 관찰한다. 자기 책상에서 자신의 원고를 갖고 '일'을 하고 있는 사내를 보고 작가는 결국 그에게 달려들어 몸싸움을 벌이고, 그림 액자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유리 파편이 튄다. 작가는 거친 숨을 내쉬며 사내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속삭인다. "내가 너를 만들어냈다고, 알아듣겠냐, 이 빌어먹을 자식아. 내가 널 지어냈으니, 원하면 언제든 없애버릴 수도 있어. 넌 고작해야 서술자, 서정적 주체, 실패한 구조물, 뭐 그런 거야. 그러니 까불지 말고 얌전히 있어." 


'스코틀랜드에서 보낸 한달' 의 화자는 성에 초대돼 우아하게 늙어가는 여주인의 환대를 받는다. 그곳에서 틀에 박힌 일상을 보내며 글쓰기에 대해, 문학에 대해 사유하며 집주인의 세계와 교감한다. 그는 자신에 관해 회고하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내내 자신이 쓰는 자기 이야기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지 회의한다. 그는 관찰자이면서 동시에 피관찰자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유를 하면서 집주인이 물어오면 대답할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문학이란 사회적으로 승인되고 윤리적 제약에서 벗어난, 칭송받는 거짓말이다. 아마 그것이 내가 늘 글쓰기에 매료당하는 이유일 것이다. 뭔가를 꾸며내고, 다양한 방식으로 거짓말하고, 현실을 수정하고, 여러 가능성을 고안해내는 데 있어 글쓰기만 한 게 또 있을까? 작가들이란 보편적 진리를 거부하는 무정부주의자이며 타고난 상대주의자이자 진실의 실험가이고, 대안의 발명가들이다.'

'섬'에 이르면 토카르추크의 문학에 관한 정의는 보다 선명해진다. 전쟁으로 인해 유랑을 거듭하는 인물은 다른 난민들과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밀항하다가 어뢰의 공격을 받아 유일하게 살아남아 무인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버티다가 구조된 후 그 생존기를 여러군데서 대상이 원하는 내용으로 반복 설명하다가, 도저히 언어로는 설명 불가능한 그 체험의 진실을 작가가 '허구' 사이에 끼워넣어주기를 간청한다. 그가 작가에게 우송한 녹음 내용이 그대로 이 소설의 형식이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 대한 성찰'을 담은 4편에 이어 '역사의 주변부'로 시선이 확장된다. 그중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는 인간의 변방을 들여다본 경우이다. 서커스단 남자는 '그녀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창조주에 대한 믿음마저 잃게 될지도 모를' 혐오스러운 외모의 여자와 결혼했다. 이 남자는 여자를 각지로 데리고 다니며 돈벌이를 한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존재하려면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추한 외모에 얽힌 이야기를 새롭게 지어내곤 한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면 우월감을 느끼지만 '못생긴 여자'의 말처럼 정작 평범한 그들이야말로 정체성이 희미한, 이야기가 없는 존재들이다.

'사람들은 다들 너무도 나약하고 외로운 것 같아요.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그들이 안쓰러워요. 내면이 텅 비어서 뭔가를 자꾸 보고 그걸로 채워 넣으려는 것 같아.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들이 실은 날 부러워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난 적어도 뭔가 '특별한 것'을 가지고 있잖아. 하지만 그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뭔가를 갖지 못했으니까요.'

11편이 담긴 3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일상의 리얼리즘과 존재의 흔들림'을 보여주는, '정체성의 해체' 양상이 크고 작은 북소리처럼 펼쳐진다. 원본의 수록 순서이긴 하지만 책 속에서는 정작 3부로 명시적으로 구분하진 않는다. 토카르추크와 소통하며 그의 작품들을 번역해온 한국외국어대 폴란드학과 최성은 교수는 "이 작품집(2001)에서 시작된 사유와 형식 실험이 후속작, 116편의 이야기들로 구성된 '방랑자들'(2007)로 구체화되고 심화됐다"고 분석한다.

 

▲ 노벨문학상 상금으로 설립한 폴란드 토카르추크 재단에서 역자 최성은(왼쪽) 교수와 만난 올가 토카르추크. 최 교수는 "이 소설집을 읽음으로써 일상의 감각이 흔들리는 체험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면서 "작가도 그런 의미에서 '북'을 가져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성은 제공]

 

'체게바라'나 '바르샤바의 앤드루스 교수'는 1981년 폴란드의 계엄령을 배경으로 전개되고, 만들어진 인형들의 세계에 대한 모티프는 '스코틀랜드에서 보낸 한달'에 이어 '바르도의 성탄 구유', '사비나의 소원' 등 여러 작품에 거멀못처럼 박혀 있다. 편편의 이야기들을 주체적으로 연결해 독자들이 저마다 하나의 우주를 그려내는 '별자리 소설'(Constellation Novel)의 단초가 이 단계에서 이미 움트고 있었던 셈이다.

최 교수는 "토카르추크는 문학의 한계를 이야기하면서도 문학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믿음을 확실하게 갖고 있다"면서 "문학이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미래와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해 노벨문학상 상금으로 설립한 토카르추크 재단은 '이야기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 세상은 "여러 사람이 함께 직조하는, 다 같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표제작 '여러 개의 북을 두드리며'는 죽은 뒤 자신의 거죽으로 북을 만들어 그 소리로 사람들을 전쟁터로 이끌어달라고 부탁한 한 남자의 이야기로 끝난다. 최 교수는 "어쩌면 문학 또한 그런 북과 닮아 있는 게 아닐까"라고 자문하며 "스스로는 소리를 내지 않지만 숙련된 연주자의 손길을 만나는 순간 비로소 울리며, 누군가의 삶을 뒤흔들고 움직이게 만드는 북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소설 속 북소리 하나.

'작가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뭔지 아십니까? 세상이 정말 우리가 보는 그대로일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작가님, 부디 내 이야기를 '허구'로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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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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