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조용호의 문학공간] "당신은 관종입니까?"

  • 구름많음임실22.6℃
  • 구름많음거창24.5℃
  • 구름많음영주25.2℃
  • 구름많음해남19.6℃
  • 맑음태백22.2℃
  • 흐림보성군19.9℃
  • 흐림남해21.5℃
  • 맑음천안27.4℃
  • 맑음북춘천29.8℃
  • 맑음홍천28.8℃
  • 맑음홍성25.0℃
  • 구름많음고창군20.7℃
  • 구름많음의성26.0℃
  • 구름많음봉화25.3℃
  • 구름많음진도군20.8℃
  • 흐림완도19.1℃
  • 맑음금산26.0℃
  • 구름많음구미25.7℃
  • 맑음파주26.4℃
  • 맑음서산25.0℃
  • 맑음백령도18.2℃
  • 구름많음청송군24.0℃
  • 맑음서청주27.4℃
  • 맑음강화22.7℃
  • 구름많음진주22.2℃
  • 구름많음창원20.4℃
  • 맑음인천23.4℃
  • 맑음영월27.6℃
  • 맑음정선군27.6℃
  • 흐림서귀포18.4℃
  • 흐림대구24.2℃
  • 흐림산청22.8℃
  • 구름많음전주22.7℃
  • 맑음이천28.4℃
  • 비제주17.7℃
  • 맑음추풍령25.0℃
  • 흐림정읍20.4℃
  • 구름많음밀양25.5℃
  • 맑음영광군19.3℃
  • 구름많음영천22.2℃
  • 맑음제천25.6℃
  • 구름많음울진17.0℃
  • 맑음고창21.5℃
  • 맑음군산18.5℃
  • 흐림장흥19.8℃
  • 흐림광양시22.6℃
  • 흐림여수20.3℃
  • 구름많음북부산24.3℃
  • 맑음안동26.7℃
  • 구름많음포항17.9℃
  • 맑음부여25.1℃
  • 구름많음목포19.6℃
  • 맑음강릉20.0℃
  • 구름많음문경23.6℃
  • 구름많음영덕18.5℃
  • 구름많음원주28.4℃
  • 구름많음양산시24.5℃
  • 흐림고흥18.8℃
  • 맑음동두천27.9℃
  • 구름많음광주24.0℃
  • 흐림성산17.4℃
  • 맑음철원28.5℃
  • 맑음동해16.9℃
  • 맑음속초16.0℃
  • 구름많음순창군23.6℃
  • 구름많음함양군26.0℃
  • 맑음대관령21.6℃
  • 구름많음김해시23.2℃
  • 흐림고산19.7℃
  • 구름많음충주28.0℃
  • 흐림거제20.1℃
  • 흐림남원23.6℃
  • 맑음세종27.8℃
  • 구름많음합천25.0℃
  • 구름많음경주시22.6℃
  • 구름많음부산20.7℃
  • 맑음청주28.7℃
  • 구름많음흑산도16.8℃
  • 구름많음울산20.6℃
  • 맑음양평28.4℃
  • 맑음인제28.3℃
  • 맑음대전28.4℃
  • 구름많음상주26.5℃
  • 맑음춘천29.8℃
  • 맑음서울27.8℃
  • 맑음울릉도19.0℃
  • 맑음북강릉19.6℃
  • 구름많음의령군23.3℃
  • 맑음보은26.2℃
  • 맑음보령21.1℃
  • 흐림부안20.0℃
  • 구름많음북창원22.8℃
  • 흐림강진군21.2℃
  • 맑음장수23.5℃
  • 맑음수원25.4℃
  • 흐림통영21.3℃
  • 구름많음순천20.3℃

[조용호의 문학공간] "당신은 관종입니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6-04-17 16:31:35
네 번째 소설집 '달걀의 온기' 펴낸 김혜진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을 세밀하게 그려내
관심과 참견의 어려운 경계를 넘나드는 법
"바깥의 온기가 내부의 온기를 끌어낸다"

추운 날 아파트 정자에 대여섯 살 남자 아이가 찌그러진 음료 캔과 함께 인형처럼 앉아 있다. 옷차림은 날씨에 비해 가볍고 표정은 어쩐지 울적해 보인다. 정해는 그런 사람이나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관리사무소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다시 아이를 길에서 만났을 때는 경찰에 신고까지 한다. 아이 부모는 난감해한다.  

 

▲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여 온 소설가 김혜진.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더 세밀하게 그려가고 싶다"고 말한다. [작가 제공]

 

수개월째 아파트 복도에 쓰레기를 적치한 집도, 주차장 한쪽에 온갖 폐품을 쌓아놓고 버티는 집도, 베란다 난간 위에 위험천만하게 화분들을 올려놓은 집도 정해와 영기 부부는 그냥 넘기지 못한다. 그들은 한마디로 '요주의 인물'이었다. 어느 날 그들 집 문에 누군가 빨간 스프레이로 '관종들'이라고 휘갈겨 놓았다.

이들은 과연 관종일까. 현관 문 앞에 놓인 쪽지를 수긍해야 할까. '관심도 지나치면 병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사생활과 생활 방식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세요. 참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공동체 생활에 문제가 되는 행위도 존중해줘야 하는 사생활일까. 선을 넘지 않는 참견과 간섭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대산문학상과 김유정문학상을 비롯해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며 왕성한 필력을 과시해온 김혜진이 네 번째 소설집 '달걀의 온기'(창비)를 펴냈다. '관종들'의 인물이 감시자 입장이었다면, 이어지는 '빈티지 엽서'의 여자는 반대로 감시받는 처지에 놓인다. 남편이 있는 여자가 헬스장에서 만난 파란 바지 남자의 해외 빈티지 엽서 번역을 도와주면서 곤경에 처한다.


여자로서는 헬스장에서 남자가 도움을 준 것에 대한 보답이기도 했고, 눌러두었던 꿈을 오래된 엽서를 번역하면서 다시 상기하는 설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녀는 누군가 헬스장에 붙여놓은 글을 보고 그 시간들마저 내려놓는다. '헬스장은 운동하는 곳입니다. 운동만 하세요. 양심에 어긋나는 부적절한 관계, 몹시 불쾌합니다!' 이런 관심은 선을 넘는 오지랖일까, 실제로 다른 이들을 불쾌하게 한 것일까. 3년 만에 새 소설집을 상재한 김혜진의 육성을 들었다.

-참견과 최소한의 도리를 가르는 경계는?
"우리 부모 세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누군가 관심을 보이면 그것을 간섭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저 사람이 무슨 나쁜 의도가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되면 그 관심이 수용되지 않고 더 큰 의혹을 갖게 되는 것 같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관심은 분명히 필요할 텐데, 그 관심을 어떻게 주고 어떻게 받는지를 사람들이 좀 잘 모르는 거 아닌가, 그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썼다."

-선을 넘지 않고 어떻게 관심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그냥 좀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좋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가 무슨 말을 했을 때 그걸 가볍게 받아들이고 또 가볍게 응답하게 되면 문제가 해소가 될 수도 있다.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뭔가 그 안에 무슨 의미가 있을 거라고 판단하면 그 관심이라는 게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까. 보다 가벼워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헬스장에 내걸린 글도 반드시 그 여자를 겨냥한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나."

'빈티지 엽서'의 여자는 파란 바지 남자와 자연스럽게 이어가던 카페에서의 번역작업을 중단한 뒤 자신을 돌아본다. 남자와 엽서를 번역하면서 정말 자신에게 설렘이 없었던 걸까. 여자가 서랍 속에 간직한 빈티지 엽서를 보며 왜 이런 남의 편지를 보관하느냐는 남편의 힐난에, 그녀는 생각한다. '이렇게 사는 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늘 더 큰 용기를 냈기 때문이라고. 익숙한 일상을 지키는 건 그것을 포기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어려운 일이었다고.'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는 생각은 여자의 말처럼 '자기 변명과 자기 합리화'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면 삶을 지탱하는 최소한의 방어기제일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푸른색 루비콘'과 이어지는 '하루치의 말'은 누군가와 제대로 소통하는 일의 효용과 그 어려움을 탐색하는 흐름이다. '푸른색 루비콘'에서 아내가 죽고 홀로 남은 70대 남자는 '관계 안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는 부류'가 아니었으며, 그의 관심은 늘 내부로 향했고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이어가는 일에 소질이 없었다. 남자를 그나마 사람들과 연결해주던 아내마저 죽고 진공상태에 있는 그가 교회에서 투박한 양봉업자 사내를 만나 얼결에 어울리게 되면서 뜻밖에도 작은 위안을 얻는 이야기다.

'하루치의 말'도 '애실'이 '현서'를 만나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삶의 제 궤도를 찾아가던 터에, 현서가 사기를 치고 감옥에 가게 되면서 그 소통의 즐거움을 갑자기 상실하는 맥락이다. 현서는 정성껏 애실의 말을 들어주었고 그 과정에서 애실은 삶에 대한 의욕과 기쁨이 솟아났는데, 그래서 면회를 가서 그 고마움과 자신의 진정성을 말하고 싶었는데, 정작 현서는 돈은 꼭 갚을 테니 다시는 찾지 말라며 냉랭하게 돌아선다.

'애실은 다 기억나지도 않는, 이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말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금 말을 간직하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매일 밤, 차갑고 딱딱한 마음을 파서 하루치의 말을 묻는 일. 매일 조금씩 더 깊이 파고, 오래 파는 행위에 적응하는 일. 말들이 튀어 나오거나 새어나오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 그러니까 안전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영위하는 현명한 사람들이 매일 반복하는 일.'

'우연의 직조'에서는 예술의 완성에 협업하는 '우연'이라는 요소에 대한 성찰을, '우리와 우리 아닌 것'에서는 막연한 선입견과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편을 가르는 세태를 드러낸다. 적당한 거리를 둔 관찰자의 시각으로 평범한 삶의 미세한 균열들을 흡인력 있게 끌고 나가는 솜씨가 돋보인다. 술술 읽히지만 모두 정답을 찾을 수는 없는 고민거리들을 내재한 단편들이다.  

 

말미에 수록한 표제작 '달걀의 온기'에 이르면 뜨겁지는 않지만 온기가 실린 희미한 희망이 기다린다. 부모에게 버려져 시골 마을에서 할머니와 함께 사는 민지를 동네 사람들이 표나지 않게 돌보는 이야기다. 아이가 키우는 닭이 낳은 '청란'을 마을 사람들이 아이의 자존감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구입한다. 자신의 삶이 팍팍한 것은 주변에서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원망하면서 살아온 선희는 청란이 품고 있는 온기를 떠올리면서 생각한다.

'왜 그것이 돌연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지, 왜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감정을 불러오는지에 대해선 깊이 고민해보지 못했다. 그것이 자기 삶에는 없다고 여겼던, 스스로 감쪽같이 지워버렸던 누군가의 보살핌과 애정 같은 것을 일깨웠다는 사실을 안 건 시간이 더 흐른 후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곳을 떠날 때 동력으로 삼았던 원망과 미움이 옅어지고, 그 아래 자리한 것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였다.'

 

▲ 김혜진은 "우리가 하루하루 무사히 살아가는 것도 알게 모르게 서로 도움을 주고 보살피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 제공]

 

-바깥의 온기와 안에서 자발적으로 덥히는 온기, 어느 쪽이 더 필요할까.
"안에서 그냥 혼자 스스로 열기를 내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있겠지만, 알게 모르게 외부에서 전달된 어떤 따뜻함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열을 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보면 그냥 무사히 하루하루 이렇게 살아가는 것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고, 서로 보살펴주는 어떤 호의에 기대서 살아가는 거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달걀의 온기'를 쓸 때 작가도 따스했겠다.
"이번 소설집은 사회적인 문제보다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전 소설집들을 떠올려 보면 세상에 대한 불만도 많고 더 뾰족했던 것 같다. 지금은 결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 싶다. 보다 일상적인, 사람들이 살아가는 각각의 삶을 보는 저의 시선이 그전보다는 따뜻해진 것 같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더 세밀하게 그려내고 싶다."

김혜진은 "소설을 끝내고 나면 그다음에 관해선 거의 생각하지 않는 편이지만 내 소설 속 인물들도 내가 잘 지낸다면 잘 지낼 것이고, 내가 행복하다면 그들도 행복할 것 같다"면서 "돌이켜보니 그건 쓰는 이의 상황에 따라, 또 읽는 이의 형편에 따라 소설은 얼마든지 달리 쓰이고, 다시 읽힌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고 썼다. 행간에 온기가 배어나는 표제작의 마지막 문장.

'청란이 한 알에 천 원. 먹어보면 진짜 하나도 안 비쌈.'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저작권자ⓒ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소설가, 문학전문기자. 일간지에서 30년 가까이 주로 문학전문기자로 일함. 1998년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발표. 소설집 '떠다니네' '왈릴리 고양이나무'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 '사자가 푸른 눈을 뜨는 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키스는 키스 한숨은 한숨' '여기가 끝이라면' '시인에게 길을 묻다' '노래, 사랑에 빠진 그대에게' '돈키호테를 위한 변명' 등. 한무숙문학상, 통영 김용익문학상, 무영문학상 수상.
기자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