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박보희 전 세계일보 사장 별세…향년 90세

  • 구름많음강화25.3℃
  • 구름많음고흥25.5℃
  • 구름많음대구29.4℃
  • 맑음전주26.4℃
  • 구름많음북강릉26.9℃
  • 구름많음양산시27.9℃
  • 맑음금산26.2℃
  • 구름많음북부산26.7℃
  • 맑음상주27.2℃
  • 구름많음영덕28.3℃
  • 구름많음울진27.2℃
  • 구름많음영천27.5℃
  • 구름많음대관령23.0℃
  • 구름많음안동26.2℃
  • 구름많음목포26.5℃
  • 구름많음밀양26.7℃
  • 구름많음김해시28.7℃
  • 구름많음부산28.4℃
  • 맑음의성25.2℃
  • 구름많음고산26.6℃
  • 맑음임실22.8℃
  • 흐림동해25.2℃
  • 구름많음원주27.4℃
  • 맑음함양군26.3℃
  • 구름많음철원25.9℃
  • 구름많음울산28.3℃
  • 맑음남원25.2℃
  • 흐림봉화23.3℃
  • 맑음수원26.8℃
  • 구름많음파주25.6℃
  • 구름많음순천23.3℃
  • 구름많음진도군24.9℃
  • 구름많음이천27.1℃
  • 맑음백령도25.6℃
  • 구름많음홍천24.8℃
  • 맑음서청주24.9℃
  • 구름많음충주27.1℃
  • 구름많음남해28.2℃
  • 구름많음여수27.9℃
  • 구름많음정선군26.3℃
  • 맑음광주27.0℃
  • 구름많음합천26.0℃
  • 구름많음완도26.5℃
  • 구름많음포항29.2℃
  • 구름많음산청24.8℃
  • 구름많음강릉29.5℃
  • 맑음서울27.6℃
  • 맑음인천26.7℃
  • 구름많음고창군23.9℃
  • 맑음부안25.5℃
  • 구름많음성산26.0℃
  • 맑음정읍24.5℃
  • 구름많음광양시26.6℃
  • 흐림태백25.1℃
  • 맑음부여26.9℃
  • 흐림울릉도26.8℃
  • 맑음추풍령25.7℃
  • 구름많음의령군26.2℃
  • 구름많음북춘천24.7℃
  • 맑음홍성27.7℃
  • 구름많음통영25.8℃
  • 맑음보령27.7℃
  • 맑음제주27.8℃
  • 구름많음춘천24.6℃
  • 맑음세종25.7℃
  • 맑음거창24.4℃
  • 맑음보은24.3℃
  • 구름많음청송군26.3℃
  • 구름많음흑산도26.1℃
  • 흐림속초29.7℃
  • 맑음진주25.7℃
  • 구름많음창원26.8℃
  • 맑음청주27.6℃
  • 맑음군산27.6℃
  • 구름많음제천25.5℃
  • 맑음영광군24.7℃
  • 구름많음강진군25.3℃
  • 구름많음고창24.5℃
  • 구름많음보성군25.6℃
  • 맑음천안25.4℃
  • 맑음대전27.3℃
  • 맑음양평26.5℃
  • 구름많음해남24.6℃
  • 구름많음거제27.8℃
  • 구름많음인제23.9℃
  • 맑음문경25.8℃
  • 맑음장수22.4℃
  • 구름많음경주시26.5℃
  • 구름많음영월25.1℃
  • 구름많음장흥24.6℃
  • 구름많음동두천26.3℃
  • 구름많음영주26.9℃
  • 맑음순창군24.4℃
  • 맑음서귀포26.8℃
  • 맑음구미26.5℃
  • 맑음서산27.2℃
  • 구름많음북창원28.5℃

박보희 전 세계일보 사장 별세…향년 90세

권라영
기사승인 : 2019-01-14 07:55:10

박보희 전 세계일보 사장이 지난 12일 오전 7시3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고인은 1991년 11월 제3대 세계일보 사장에 취임해 약 3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다. 세계일보 사장 시절인 1991년 12월 평양에서 열린 문선명 세계평화가정연합 총재와 김일성 북한 주석의 회담 때 문 총재를 수행했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자 북한을 방문, 조문했다.

 


한국문화재단과 유니버설문화재단 총재도 지냈다. 2010년 UN 참전국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문화행사의 하나로 리틀엔젤스 예술단을 이끌고 참전 16개국 순회공연을 열기도 했다.

고인은 문훈숙(본명 박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의 아버지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5일 오전이다.

한편, 고인은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도 유명하다. 저서명이자 별명이다. 41년 전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는 책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나는 1978년 미 의회의 소환을 받아 미국회 증언대에 섰었다. 당시 한국과 한국인은 소위 코리아 게이트 파동(박동선 사건)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모두가 매도당하고 있었다. 나는 도널드 프레이저 위원장이 이끄는 미 하원 국제관계소위원회에 출두했다. 나는 정부의 관리도 아니요, 대사도 아니요, 국회의원도 아니요, 물론 장관도 아니었다. 대한민국 여권을 가진 한 평민이었다. 세 번 공개증언대에 서면서, 그때 온 한국인이 억울해 하는 울분을 사정없이 털어놓았다. 욕먹고 지탄받는 형편없는 한국인이 아니라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라 외쳤다. 그런데 그것이 공교롭게 당시 울분을 참지 못하는 국내 한국인과 해외동포들의 억울함을 대변하게 된 것이다. ··· 나는 그(프레이저)를 마귀의 앞잡이라고 몰아붙였다. 이윽고 프레이저 위원장은 두 손을 들었다."  

 

KPI뉴스 / 권라영 기자 ryk@kpinews.kr

 

[저작권자ⓒ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