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기자의 눈] 호당 단가? 미술품은 돼지고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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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호당 단가? 미술품은 돼지고기가 아니다

제이슨 임
기사승인 : 2025-07-21 18:34:03
캔버스 면적이 곧 예술의 값이 된 한국 미술시장
'호당 단가'라는 관행...예술을 숫자로 격하
작가도 관객도 묻고 거부해야 "예술은 면적이 아냐"

"이 작품은 호당 50만 원이에요. 50호니까 2500만 원입니다."


갤러리에서 흔하게 듣는 설명. 예술의 가치를 면적 단가로 환산하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현장이다. '호당 단가'엔 예술의 숨결이 없다. 숫자와 평수, 단가와 가격표만이 있다. 캔버스 크기라는 물리적 규격이 작품의 가치와 혼용되는 이 제도는 한국 미술시장이 자초한 가장 위험한 관행일 것이다.

 

'호수(號)'는 원래 프랑스에서 기원한 캔버스 규격 체계다. 인물(F), 풍경(P), 해양(M) 등 용도별로 세분화된다. 한국에선 대부분 F형을 사용한다. 이를테면 F1호는 220×160mm, F50호는 1167×910mm, F100호는 1620×1303mm로 성인 여성 키만한 대작이다. 그런데 이 숫자에 '호당 얼마'가 붙는 순간 예술은 계산기 위의 숫자로 전락한다.

이 관행은 1970~80년대 국내 미술시장이 상업화되면서 본격적으로 발호했다. 작가의 이력과 경력, 갤러리의 위상을 토대로 일종의 공식처럼 '호당 단가'가 매겨졌고, 그렇게 예술은 유통의 프레임에 포획됐다. 그 당시의 시장 논리는 명확성과 객관성을 포장지처럼 입혔지만, 실제로는 '예술을 기계처럼 가격화하는 치명적 사고방식'을 심었다.

이제는 작가들조차 호당 단가를 입에 올린다. 그 단가에 따라 작품 크기를 정하고 같은 세대 작가들의 가격에 눈치를 보며 '체면가'를 맞추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다. 작품의 사유나 실험성은 뒷전이다. 단가는 예술보다 앞서 있다.

호당 단가제는 처음부터 결함투성이였다. 예술작품은 본래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맥락과 감각, 개념을 지녔다. 그런데도 이 제도는 작품의 고유 가치를 면적당 가격으로 뭉개버렸다. 천편일률적인 등가교환의 논리가 예술 시장을 잠식한 것이다.


물론 블루칩 작가, 이를테면 김환기, 이우환, 박서보, 백남준, 권진규, 하종현, 윤형근, 이불, 양혜규 같은 이들에겐 이런 계산은 통하지 않는다. 이들의 작품은 크기와 무관하게 맥락과 상징성에 따라 개별적 가치가 부여된다. 그러나 그런 예외는 소수일 뿐, 대다수 작가는 지금도 캔버스 넓이에 맞춰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해외는 다르다. 미국, 프랑스, 독일 같은 미술 선진국에서는 애초에 호당 단가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해외시장에서 작품의 가치는 크기가 아닌, 작가의 철학과 사유, 작품의 전시 이력과 미술사적 위치로 결정된다. 뉴욕, 런던, 파리의 아트페어에서는 '호당 얼마'를 묻는 이가 있다면 백이면 백, 그는 한국에서 온 컬렉터일 가능성이 높다. 국내에서도 프리즈서울(FiezeSeoul) 같은 세계적 아트페어 현장에서 여전히 호당 단가를 놓고 흥정이 벌어지는 장면은, 씁쓸함을 넘은 비극이다.

호당 단가제가 초래한 또 하나의 폐해는 '작가를 공장형 생산자'로 전락시킨다는 점이다. 단가에 맞춰 캔버스를 키우고, 그에 맞춰 그림을 채우는 행위는 창작이 아니라 납품에 가깝다. 자연스럽게 실험적이고 소형 작업은 외면받는다. 작품은 점점 더 거대해지고, 그 안엔 비어 있는 감정과 비슷비슷한 구도만이 남는다. 결국 작품은 예술이 아닌, 고가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진화해 간다.

결과적으로 호당 단가제는 "크기 = 가격"이라는 괴상한 등식을 만들었다. 이는 예술가의 내면 표현을 가두고, 예술을 시장 논리에 종속시키는 '악성 구조'를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작품의 크기가 예술의 깊이를 대변할 수 있는가?"

물론 시장에 기준이 필요하다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호당 단가제는 그 기준이 될 수 없다. 이 제도는 예술의 본질을 훼손하고 창작을 획일화하며 작가를 수공업자로 만드는 퇴행적 프레임일 뿐이다.

 

호당 단가가 한국 미술계가 스스로 만들어 낸 '업보'란 점에서 결자해지는 미술계가 감당할 숙명이다. 이제 더는 돼지고기처럼 미술을 팔아선 안 된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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