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류순열 칼럼] 일본 전범은 어떻게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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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 칼럼] 일본 전범은 어떻게 한국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나

류순열 기자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20-06-24 21:16:30
"일본인 수천명, 국적 지우고 한국인 이름으로 참전"
우리에겐 비극인 전쟁, 미국과 일본 전범에겐 기회였나
일본은 전범국이다. 식민지 전쟁으로 인류에게 막대한 고통을 준 범죄국가다. 1945년 패망후 전쟁할 수 없는 나라가 된 이유다. 그래서 일본이 지난 70여년간 전쟁을 하지 않았을까.

아니다. 경악스럽게도 그들은 패망후 곧 전쟁에 뛰어들었다. 놀랍게도 6·25 한국전쟁에, 그 것도 일제 전범들이 참전했다. 이 모든 걸 공식 확인할 수는 없다. 일본인은 전원 국적을 지우고 한국인 이름을 썼다고 한다.

공식 문건이 아니라 기사와 사료들로 확인되는 사실이다. "8000명으로 이뤄진 유령 부대가 한국 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그들은 일본에서 건너간 재일 조선인 지원부대다." 1952년 9월29일 미국 CBS 도쿄지국장 조지 허먼은 이렇게 보도했다.

다음날 재일 한국 대표부 발표 내용은 다르다. "민단계 재일 한국인이 지원해 참전한 건 사실이지만 그 수는 625명에 불과하다. "

625명을 뺀 나머지 7375명은 누구인가. "적어도 일본인 7375명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본의 아니게 증명하고 말았다."(류 고이치 '현대 한국의 역사') 일본인 참전 사실을 확인해주는 기사도 있다. 아사히 신문은 1952년 11월19일 미국과 함께 한국 전선에 참가해 전사한 시게하루 군에 대해 보도했다.

이들은 어떻게 한국전쟁에 참여하게 되었을까. GHQ(General Headquarter·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GHQ는 전후 일본에 주둔하면서 점령 통치 전체를 지휘한 조직으로,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최고사령관이었다. 패망후 일본은 6년간 GHQ의 지배를 받았다.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15일)도 일본 전범들에 의존했다. 한국 지형이나 해역의 수심 등에 대해 일본군 만큼 풍부한 자료를 갖고 있는 조직은 없었다. GHQ 별관인 유센 빌딩내 '역사 지리과'엔 수많은 전직 일본 군인 상급 장교가 참여하고 있었다. 핫토리 사쿠시 대령도 그중 하나. 그는 태평양 전쟁을 주도한 A급 전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의 비서관이었다.

이렇듯 맥아더 사령부는 일제 전범 유산을 아낌 없이 활용했다. 우익 전범들을 처단하다가 멈추고 1949년 중국 공산화 등 아시아의 공산화 물결을 저지하기 위해 전범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이로써 일제 전범들은 면죄부를 받고 화려하게 부활했다. 한국에서 친일파들이 부활한 배경도 마찬가지다.

맥아더 사령부는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만주 세균전 부대(731부대)를 이끈 이시이 시로 중장도 비호했다. 소련이 그를 전범으로 지목해 재판에 세우려 했으나 그를 끝까지 감쌌다. 

우리에게 6·25 전쟁은 참혹한 비극이다. 수많은 이들이 비참하게, 억울하게 죽어나갔다. 같은 민족끼리 강간과 학살의 악순환을 반복했다. 생이별의 고통과 한이 영구화했다. 

미국과 일본은 달랐다. 기회였던 모양이다. "한국은 하나의 축복이었다. 이 땅 혹은 세계의 어딘가에 한국이 없으면 안되었다"고, 1952년 당시 미8군 사령관이자 유엔군 사령관 밴 플리트는 말했다.

또 요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는 6·25전쟁이 터지자 "덴유(天佑·천우신조)!"라고 했다던가. 전후 피폐해진 일본은 6·25전쟁 병참기지 역할을 하면서 기사회생했다. 당시 일본주재 미국 대사였던 윌리엄 J. 시볼드는 '미국 CIA 한국전쟁관련 보고서'에서 "일본의 경제가 한국전쟁으로 횡재(windfall)를 했다"고 썼다.

전쟁 70주년을 맞았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평화는 오지 않고 반목 갈등 증오가 무한 반복중이다. 첫단추부터 잘못 꿰였다. 미국과 일본이 기회를 잡는 동안 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만 되풀이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나.

그러고도 정전협정 현장에 우리는 없었다. 1953년 7월27일 판문점에서 이뤄진 정전협정에 서명한 이는 연합군 총사령관 클라크(Mark Wayne Clark),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공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 셋이다. 

100년이 넘도록 남의 손에 맡겨진 운명. 전쟁 70주년을 맞아 또 다시 자각하게 되는 불편한 진실이다. 

▲ 류순열 편집국장


KPI뉴스 / 류순열 편집국장 ryoosy@kpinews.kr

*참고도서: 마쓰모토 세이초의 미스터리 논픽션 <일본의 검은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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