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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는 '황교안' 에서 민주주의 위기 본다"

윤흥식
기사승인 : 2019-04-01 11:30:20
[직격 인터뷰] 4·3항쟁 71주년 맞는 '한라산 시인' 이산하 격정 토로

장편 서사시 '한라산'으로 유명한 이산하(59·본명 이상백) 시인은 매년 이맘 때면 몸살을 앓는다. 30여 년 전 엄혹했던 군사정권 아래서 목숨을 걸고 서사시로 고발했던 제주 4·3 민중항쟁의 참혹한 기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 이산하 시인 [이산하 시인 페이스북]


4·3 민중항쟁으로부터 71년. 그리고 '한라산' 발표로부터 32년. 강산이 서너 번 바뀌고 시인의 가슴을 달구던 불덩어리들도 어지간히 식을만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군부독재에 대한 단죄가 있었고, 4·3 민중항쟁에 대한 재평가가 있었다. 


그런데도 올해 시인이 피부로 느끼는 봄은 그 어느 해보다도 어수선하고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촛불의 열기와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려는 불온한 움직임이 도처에서 감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산하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 현대사의 관절을 무자비하게 꺾은" 공안검사 출신의 정치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있다. UPI뉴스가 시인을 만나 '격정 토로'를 들었다.

-그동안 여러 지면과 SNS를 통해 황교안 대표와의 '악연'에 대해 밝힌 바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인연인가


"1988년 내가 제주 양민학살 사건의 비극을 고발한 장편 서사시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재판을 받을 당시 2심 담당 검사가 바로 황교안이었다. 당시 그는 "이런 자는 평생 콩밥을 먹여야 한다"며 나의 사상적 거처를 집요하게 수색했다."

-그가 당시에 그렇게 독기를 품을만한 이유라도 있었나


"얘기하자면 길다. 당시 내 필화사건은 변호사가 없었다. 유명한 진보적 문인들까지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며 증인 진술을 거부했다. 나는 위선과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당대의 양심'들에게 분노와 경멸의 침을 뱉는다는 생각으로 항소이유서에 다른 표현 없이 '김일성 장군의 노래' 가사만 적어냈다."

-전두환 군사정권 말기에 파장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검찰과 법원이 발칵 뒤집혔다. 공안검사 황교안이 눈에 불을 켜고 추가범죄를 캐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다. 그러나 이미 경찰 수사단계에서부터 잔혹한 고문 등을 통해 뭘 엮어보려 해도 엮을 것이 없다는 게 드러나 있는 상황이었다."

-'한라산' 발표나 항소이유서를 쓸 때 두렵지 않았나


"나도 꿈이 있고 목숨이 하나인데 왜 떨리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누군가 해야 할 일이었기에 시를 썼고 항소이유서를 썼다.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황교안과의 악연은 그 뒤에도 이어졌다는데


▲ 지난 2013년 극우단체로 부터 백색테러를 당했을 당시의 이산하 시인 [이산하 시인 페이스북]

​"2013년 10월 한 일간지에 '황교안과의 악연'이라는 칼럼을 실었다. 그날 집 앞에서 서북청년단으로부터 극우 테러를 당했다. 검은 가죽장갑에 이빨들이 나갔고, 검은 군홧발에 왼쪽 발목이 분쇄됐다. 3년간 철심 10개를 박고 살았다."

-우리 사회 민주주의 흐름에 회의를 느끼는 순간은


"세월호 사고가 대표적이다. 이 사고가 달리 터졌겠는가. 난 4·16 세월호 사건에서 70년 전 수천 명을 바다에 던져 죽인 제주 4·3 민중항쟁의 수장을 본다. 우리 현대사의 동맥 속으로 흐르는 물은 모두 핏물이다."

-극우 공안세력이 다시 고개를 드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문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지난 촛불시위에서 아날로그 양초 촛불이 디지털 LED 촛불로 바뀐 것이 함축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아날로그 촛불은 자기 온몸을 다 태우고 녹지만 디지털 촛불은 장렬하게 전사할 심지와 근육이 없다. 땅을 갈아엎어 토양을 바꿀 근본적인 변화 없이 나무를 골라 옮겨 심는 정도의 기회주의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다시 점령한 것이다."

-극우 보수세력의 반격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독재의 무기인 칼과 돈으로부터 정신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 칼은 몸을 베고 돈은 정신을 벤다. 우리는 몸도 베였고 정신도 베였다. 우리는 아직 이것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아프게 인정하고 새롭게 각오를 다져야 한다. 촛불의 열매를 챙긴 소수 민주주의적 엘리트들이 아니라 노동대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제2, 제3의 '황교안들'이 다시 역사의 관절에 테러를 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지난해 독일과 동유럽 국가들에 흩어져 있는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들을 돌아보며 "동시대인의 침묵이야말로 나치의 반인륜적 범죄를 가능케 했던 토양이었음을 실감했다"고 밝힌 시인은 올해 <김근태 평전>을 집필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중에게 각인된 '투사 김근태'보다 '아름다운 인간 김근태'를 그려내는 데 힘을 쏟겠노라고 포부를 밝혔다.

 

KPI뉴스 / 윤흥식 기자 jardi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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