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생산적 금융④] "부실 나면 누구 책임?"...손실 분담 없인 또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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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금융④] "부실 나면 누구 책임?"...손실 분담 없인 또 실패

유충현 기자
기사승인 : 2026-01-07 14:11:00
이전 정부도 유사한 정책…'정책-감독 엇박자' 속에 헛바퀴
정부가 먼저 손실부담…독일·이스라엘 성공사례 참고해야

생산적 금융은 '이재명 경제'의 핵심 키워드다. 부동산 대출에 치우친 돈의 흐름을 산업과 혁신으로 돌리겠다는 게 핵심이다. 2026 신년사에서 금융권 수장들은 예외없이 '생산적 금융'과 'AI'를 외쳤다. AI를 축으로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혁신 기업이 성장하려면 자본이라는 '총알'이 절실하다. 생산적 금융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필수 조건인 셈이다. 생산적 금융의 현주소와 과제, 전망을 4회에 걸쳐 입체적으로 짚어본다.

"단순히 정책자금을 확대하거나 기업 대출을 늘리라는 신호만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습니다. 금융회사가 위험을 회피하는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자금은 여전히 담보가 확실한 부문으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KPI뉴스가 이재명 정부의 '생산적 금융' 정책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 묻자 여러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진단이다.

 

사실 생산적 금융은 완전히 새롭지는 않다. 이름만 달랐을 뿐, 이전 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시도된 바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창조경제'와 '기술금융'이 있었다. 당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취임사에서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일자리를 확대하는 생산적 금융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할 정도로 중점 정책 중 하나였다. 코넥스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 이때였다.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 정책도 비슷한 취지를 공유했다. "유동자금이 부동산과 같은 비생산적인 부문이 아니라 생산적인 부문으로 돈이 흐르게 해야 한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2020년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했던 말이다. 지금 논의되는 내용과 다르지 않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이억원 금융위원장에게 질문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이전 정부에서 실행된 정책들은 금융시스템의 관성을 바꾸지 못했다. 정부 정책은 모험적 금융을 장려하면서도, 감독 현장에서는 여전히 '무사고'를 강조하는 이중 잣대가 유지되면서 정책이 헛바퀴를 돌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기술신용평가(TCB) 제도다. 담보 대신 기술력을 평가해 대출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은행들은 여전히 부동산 담보를 요구했다. 정책금융이 '마중물'이 돼서 민간 금융을 끌어들이겠다는 목표도 실현되지 않았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술평가와 금융기관의 책임 구조가 분리돼 있어서 평가가 있더라도 최종 책임은 금융회사에 귀속된다"며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평가 결과를 (자금공급에) 적극 반영할 유인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손실 책임 구조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해외 정책금융은 손실 부담 구조가 명확하다. 특히 정부가 먼저 위험을 떠안아 민간 금융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점이 공통적이다.

 

독일 정책금융기관 KfW가 대표적 사례다. KfW는 온랜딩(on-lending) 방식으로 민간 은행에 저금리 자금을 제공하고, 민간 은행이 이를 중소기업과 혁신기업에 대출한다. 핵심은 손실 분담이다. 대출 부실이 나면 정부가 일정 금액까지 먼저 손실을 떠안고, 민간 은행은 그 이후 발생한 손실만 부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스라엘 요즈마(Yozma) 펀드도 비슷하다. 요즈마 펀드는 정부 40%, 민간 60% 출자 구조로 시작했다. 투자가 성공하면 민간 투자자는 정부 지분을 미리 정해진 가격에 매입할 수 있고, 투자가 실패하면 정부가 40% 지분 손실을 떠안는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KfW는 저금리·위험분담을 통해 중소기업·혁신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며 경제 구조 변화를 촉진했고, 요즈마 펀드는 정부-민간 리스크 분담 구조로 벤처 생태계를 구축해 GDP 대비 투자 비중을 OECD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며 "우리나라도 이런 구조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독일 KfW 손실분담 구조. [금융경제연구소 이슈페이퍼에 담긴 내용을 토대로 시각화]

 

또한 전문가들은 생산적 금융 확대와 함께 '비생산적 금융'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대출 같은 비생산적 금융에 대해 일정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등 규제를 대폭 강화해야 물길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생산적 기업대출의 위험가중치를 단계적으로 인하하거나, 부동산담보대출의 가중치를 현실화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신규 주택담보대출에 한해 부문별 체계적 위험완충자본(SyRB)을 점진적으로 상향해 은행이 부동산대출을 늘릴수록 더 많은 자본을 적립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규제의 강약을 조절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금융자본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라며 "담보 중심의 금융을 기업성과와 기술기반의 금융으로 전환할 때, 한국 금융은 다시 성장의 엔진으로 복원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생산적 금융이 성공하려면 기업들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언급도 있었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은행연구실장은 "기술이 좋다고 사업성이 좋은 건 아니다"며 "물건을 잘 만드는 것과 잘 팔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고 말했다.

 


 

KPI뉴스 /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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