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기자의 눈] 실손보험 강제전환 또 '만지작'…왜 가입자만 때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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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실손보험 강제전환 또 '만지작'…왜 가입자만 때리나

유충현 기자
기사승인 : 2026-03-25 17:38:19
'1·2세대 실손' 재매입설 다시 솔솔…'언젠가 강제매입?'
가입자 '도덕적 해이'만 문제인가…사적 계약 훼손 안돼

"헌법재판소에 가더라도 아마 합헌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초 1·2세대 실손의료보험 '강제매입'이 위헌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금융당국 핵심 당국자의 답변이었다. 거센 비판에 흐지부지 되긴 했지만 정부가 법률적 검토를 포함한 구체적 실행계획을 준비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5세대 실손의료보험 출시를 앞두고 1·2세대 실손보험 재매입 이야기가 다시 솔솔 흘러나온다. 그런데 함께 전해지는 당국발(發) 발언들이 묘하다. "필요시 법 개정을 통해 약관 변경 조항을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거나 "현 단계에서 강제하지 않겠다"는 식의 언급이 곳곳에 섞여 있다. 일단은 자율이지만 언젠가 강제하겠다는 것처럼 들린다. 

 

1년 쯤 전에도 이랬다.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가 반발에 부닥치니 슬그머니 물러섰다. 그때는 대놓고 입에 올렸고 지금은 은근히 간을 본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결국 1·2세대 실손보험 계약을 없애고 싶어하는 밑바탕은 똑같다. 전체적으로 보장을 축소해서 보험사 손해율을 개선해주려는 방향이다.

 

실손보험은 가입 시기에 따라 성격이 크게 다르다. 2013년 이전에 팔린 1·2세대는 자기부담금이 사실상 없고 도수치료, 비급여 주사 등 대부분의 의료비를 보장한다. 약관 변경(재가입) 조항도 없어 만기인 100세까지 같은 조건이 유지된다. 반면 3세대부터는 비급여 항목이 특약으로 분리되고 보장 범위도 제한된다. 문제는 1·2세대 초기 계약자가 약 160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의 계약이 보험사 손해율을 악화시키는 주된 요인이라는 게 당국의 시각이다.

 

정부와 보험업계가 갖고 있는 문제인식은 공감한다. 초기 실손보험을 오·남용하는 일부 병원과 피보험자의 과잉 진료가 보험금 누수를 부추기고 의료 시스템을 왜곡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수의 이용자가 많은 보험금 상당액을 타 간다. 이들 때문에 병원이라고는 별로 갈 일도 없는 다수 선량한 이용자들의 보험료가 오른다는 점도 문제다.

 

다만 '강제 전환'이라는 애드벌룬을 띄워가며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어찌 보면 1·2세대 가입자들이 한 일은 단순하다. 보험사와 약관에 합의하고 계약을 맺은 뒤 그 약관대로 보험금을 청구했다. 정당한 계약에 근거한 정당한 행위다. 어떤 계약이 결과적으로 한쪽에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해도 계약을 무효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보험사도 원래는 이윤을 기대하고 1·2세대 실손을 설계해 팔았다. 그런데 운용해보니 시장 환경이 변했고 손실이 났을 뿐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사업이 원래 그런 것 아닌가. 기회가 들어맞으면 이윤을 얻고, 판단이 틀리면 손실을 입는다. 만약 반대로 약관이 보험사에 유리하게 작용해 막대한 이익이 났다면 어땠을까. 보험사들이 자발적으로 약관을 바꾸겠다며 나섰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잘못된 베팅의 손실을 감수하는 것도 시장경제의 원칙이다.

 

실손보험 손해율 악화를 막는 다른 방법도 있다. 실손보험 누수의 상당한 책임은 과잉 진료를 일삼은 의료기관 역시 피할 수 없다. 보험업계와 정부가 병원 측의 과잉진료를 입증한 뒤 구상권을 청구하면 된다. 그런데 의료계와 맞서는 것은 최대한 피한다. 대신 싸우기 쉬운 개별 가입자에게만 '도덕적 해이' 프레임을 씌운다. 비겁한 '강약약강(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이다.

 

차라리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리는 게 나을 수 있다. 2013년 4월 이후 가입한 실손보험은 15년마다 재가입해야 하는 구조다. 오는 2028년부터는 자연히 손해율이 개선될 수 있다. 나머지는 1·2세대 초기 가입자들뿐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고령이다. 언젠가는 도수치료를 받으러 가는 거동조차 어려워진다. '상품 실책'의 대가도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실손보험은 의료개혁, 건강보험 등이 복잡하게 얽힌 사안이다.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정부의 의지가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꼬여 있는 실타래를 억지로 풀려고 할수록 더 단단하게 꼬이는 법이다. 정부가 사적 계약에 개입하는 선례를 남기면 보험사의 손해율은 낮출지언정 나중에 누가 계약을 신뢰할 수 있나. 복잡할수록 원칙이 중요하다.


▲ 유충현 경제부 기자

 


 

KPI뉴스 /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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