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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펑'에서 반도체까지…AI시대의 기업 생존법

박철응 기자
기사승인 : 2026-01-22 16:41:39
'트래펑' 회사가 반도체 소재 총력
현대차 로봇 기업 가치 128조 추산
두산, 포목점→맥주→중공업→로봇·반도체
건설업 대안도 원전, 현대건설·대우건설 앞

PKC는 1954년 설립돼 70여년간 천일염을 원료로 기초 화학 제품을 주로 생산해온 업체다. 막힌 배수관을 뚫어주는 '트래펑'으로 익숙한 백광산업에서 현재 사명으로 지난해 변경했다. 새로운 비전 중 하나는 "반도체 핵심 소재 분야에서 '퍼스트 펭귄'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고순도(99.999%) 염화수소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웨이퍼(얇은 원판)의 세정, 식각(etching) 공정에서 핵심 소재로 사용된다. 식각은 패턴에 따라 웨이퍼의 불필요한 박막을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공정이다. 

 

최종경 흥국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PKC에 대해 "반도체로 향하는 제품군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올해는 첨단 소재 신사업이 개막하는 해"라고 평가했다. 반도체 산업 호황에 올라타고 있는 것이다. 

 

▲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6' 개막을 앞두고 열린 현대차그룹과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미디어데이에서 공개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뉴시스]

 

기업은 늘 변화를 추구하지만, 특히 최근에는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변신'이 생존 조건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한국 주식시장 상승의 쌍두마차 역할을 했으며, 올해 들어서는 현대자동차 주가가 급등하면서 코스피 5000이라는 전인미답의 장을 열었다. AI에 쓰이는 반도체 수요 급증, AI와 결합한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의 본격적 개화를 상징한다. 

 

현대차는 2020년 미국의 로봇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이후 투자를 지속해왔다. 이달 초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6'은 기술력을 입증하며 결정적 전환기를 알린 무대였다. 

 

지난 21일 KB증권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를 128조 원으로 산정했다. 향후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중국의 노동가능 인구가 1억1000만 명가량 줄어들 전망이며, 이를 대체하기 위해 2035년 기준 960만 대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생산돼야 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했다. 그 중 15.6%인 150만 대를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생산해 매출액이 400조 원을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두산그룹의 변신도 눈에 띈다. 130년 전 종로에 문을 연 포목점에서부터 시작해 대표적 맥주 기업에서 중공업 중심으로 변해왔는데 이제는 로봇과 반도체에 승부를 걸고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인간과 로봇이 협업하는 '협동로봇'(Cobot)에 주력하고 있는데 지난해 말 영국 매체 '매뉴팩처링 디지털'이 선정한 세계 10대 산업용 로봇 제조업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글로벌 선두 주자들과 경쟁하며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평가였다. 

 

두산로보틱스는 2015년 출범 이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꾸준히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두산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만들기 위한 투자로 보인다. 

 

두산그룹은 지난해 말 반도체 웨이퍼 전문기업 SK실트론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거래 규모는 3조~4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SK실트론은 세계 시장점유율 3위(12인치 웨이퍼 기준)의 알짜로 평가된다. 두산그룹은 2022년 반도체 후공정 테스트 기업 '테스나'를 4600억 원에 인수하는 등 반도체 역량을 쌓아 왔다. SK실트론까지 품는다면 반도체 산업의 한 축을 수직계열화하는 구조를 갖게 된다. 

 

AI 시대가 키운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는 에너지다. 막대한 전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다양한 산업에 기회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전력 기기 산업은 초유의 슈퍼사이클에 올라타 있고,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지지부진한 배터리 업계에도 활로를 제공하고 있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미국 행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와 연비 규제 완화 등을 고려해 배터리 업계에 대해 "당분간 악재의 연속"이라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성장으로 올해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실적은 지난해 대비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와 함께 ESS가 필수적이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ESS 시장 규모는 57기가와트시(GWh)로 전년 대비 25% 성장했다. AI가 반도체뿐 아니라 배터리 업계에도 강력한 수요를 제공하는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북미 ESS 생산라인을 확대할 예정이다. 삼성SDI의 경우 미국 인디애나주 공장의 전기차 배터리 라인을 일부 변경해 ESS 생산에 쓰고 있다.  

 

수년째 침체기에 놓여 있는 건설업계는 원전에 집중하고 있다. 이 역시 AI로 인한 수요 확대를 노리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원전 재건을 핵심 에너지 전략으로 제시하며 설비 용량을 100기가와트(GW) 수준에서 2050년 400GW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중간 목표로는 2030년까지 신규 원전 10기 착공을 제시했다. 

 

국내 토목이나 주택 사업의 성장은 한계에 이르렀고 해외에선 중동 원유 관련 플랜트 수요가 줄고 있다. 원전이 유력한 대안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상호 교보증권 연구원은 "중동 국가들의 에너지 정책 기조는 원유 중심에서 빠르게 친환경 및 LNG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다"면서 "향후 해외 수주의 중심은 발전소, 특히 원전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현대건설과 대우건설이 대표적이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10월 미국 텍사스 마타도르 원전 프로젝트의 기본설계(FEED)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건설사 최초로 미국 대형 원전 사업에 진출했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팀코리아 컨소시엄'에 속해 체코 두코바니 5·6호기 원전 본계약을 체결했다. 

 

이 연구원은 "원전은 수주 금액이 크고, 착공 이후 장기간에 걸쳐 매출 인식이 가능하다"면서 "원전 수주는 국내 대형 건설사들의 중기적인 실적을 높이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짚었다. 

 

KPI뉴스 / 박철응 기자 hero@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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