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기업가정신 살릴 '배임죄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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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기업가정신 살릴 '배임죄 개선'

조홍균 객원논설위원
기사승인 : 2025-08-04 11:14:54
기업활동 메카 美델라웨어 최근 반기업 우려로 기업 탈출
기업가정신 창달에 경제적 성과 높이는 일관된 제도변화 긴요
경영자 배임죄 법제 개혁, 경영판단 존중은 변화 출발점
친기업, 'Corporate Korea' 韓명성 쌓는 데 대통령 나설 때

미국 델라웨어(Delaware) 주는 기업활동의 메카로서 오랜 기간 위상을 확고히 해온 곳이다. 미국 기업들의 최대 다수가 델라웨어 주에 회사의 법적 본거지를 두고 설립(incorporation)되어 운영되고 있다. 기업경영에 가장 유리한 제도와 사법 시스템을 갖춘 최고의 주(First State)로 평가받아 온 덕분이다. 'Corporate America, 그 보금자리(The Home)'라는 명성을 그간 누려 왔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6경제단체·기업인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그 델라웨어가 1년 넘게 '덱시트(Dexit)' 현상과 직면하고 있다. '덱시트'는 기업들이 회사법상 본거지인 델라웨어를 떠나는 현상이다. 델라웨어가 기업에 적대적인 곳이 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리콘 밸리에서 A16Z라고 지칭되는 벤처캐피털 회사 앤드리슨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는 2009년 설립 이후 델라웨어에 법적 본거지를 두어 왔는데 곧 네바다로 이전한다고 지난달 밝혔다. 이 회사 경영진은 델라웨어에 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당연시했던 인식이 더 이상 현실이 아니라고 했다. 경영자와 이사회에 기업경영의 합리적인 재량을 부여하는 명확한 룰을 가지고 있던 델라웨어의 사법 시스템이 이제는 전례 없는 수준의 주관성(subjectivity)을 갖게 되어 기업들이 값비싼 주주 소송에 취약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A16Z는 손꼽히는 벤처캐피털사로 스타트업들에 영향력이 커 금번 '덱시트' 발표의 파장이 적지 않다. A16Z는 그간 스타트업들이 델라웨어에 회사를 설립할 것을 권했지만 이제는 네바다가 이전을 고려하기에 적합한 대안이라는 의견을 말하고 있다.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배당금 지급 계획을 반복적으로 저지받은 이후 델라웨어에서 그의 회사들을 이전하기 시작했다. 드롭박스, 퍼싱 스퀘어, 트립어드바이저 등 회사가 이미 이전했고 메타는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미 델라웨어 주에서마저 기업들이 떠나고 있는 시점에 한국에서 경영자의 경영판단을 처벌하는 배임죄에 대한 개선 필요성을 이재명 대통령이 제기했다. 경영판단에 대한 배임죄가 없는 델라웨어 못지않게 한국에서 더욱 기업들이 떠나서는 안 되는 시점이기에 시의성이 매우 높은 문제 제기다. 경영판단까지 처벌하는 과잉 범죄화는 기업경영을 위축시키고 결국 경제적 성과의 저하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정치경제학자 다론 아제모을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 The Origins of Power, Prosperity, and Poverty)'에서 국가의 성패는 제도에 달려 있고 번영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는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포용적(inclusive) 경제제도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포용적 경제제도에는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창달하는 룰이 포함된다.

 

현대 회사법은 회사를 주인-대리인 구도(principal-agent paradigm)로 개념화하고 대리인에 해당하는 경영자에게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duty of care)를 부여하고 있다. 미국법률협회(American Law Institute, ALI)가 제정한 기업지배구조원칙(Principles of Corporate Governance)에 따르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는 회사에 최선이라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이익을 위해 유사한 상황의 유사한 지위에서 보통의 분별력을 지닌 사람이 합리적으로 행사할 것이라고 기대되는 주의를 기울일 의무로 설명된다.

 

경영자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고 권한 내에서 의사결정을 했다면 그 경영판단을 존중하여 사후 책임을 묻지 않는 경영판단원칙(Business Judgment Rule, BJR)은 기업가정신의 창달에 부합하는 포용적 경제제도라고 할 수 있다. 경영자가 기업에 최선의 이익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행한 합리적인 경영판단에 대하여 면책하는 룰이다. 이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경영판단에 관한 문제에 배임죄의 잣대를 들이대다 보니 기업가정신이 위축될 우려가 컸다. 경영자가 기업에 최선의 이익을 가져오기 위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한 경영판단에 대해서는 비록 나중에 손해가 나더라도 배임죄를 묻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변화가 필요하다. 경영자 배임죄의 법제 개혁과 경영판단 존중은 기업가정신 창달을 위한 제도변화의 출발점이다.

 

기업가정신의 창달은 정치적 구호나 이벤트성 정책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업가의 경영판단을 존중하는 대통령이 일관성과 진정성을 가지고 앞장서며 입법부가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제도변화, 특히 경제적 성과를 높이기 위한 일관된 제도변화를 통해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한국 정치의 특징인 극한적 당파주의(vicious partisanship)가 더 이상 기업가정신의 창달을 막는 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경영판단원칙은 고정되어 있는 일률적 원리(one-size-fits-all doctrine)가 아니다. 시대의 경영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며 '진화하는 생물체(evolving creature)'와도 같은 존재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더욱 높아지는 파고(波高)의 글로벌 경제전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신축적이고 종합적인 경영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변화가 긴요한 시점이다. 우리 경제가 당면한 대내외 불확실성과 복합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근본적인 원동력은 혁신을 선도하는 기업가정신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의 하나가 경영판단원칙이다. '진화하는 생물체'로서의 경영판단원칙은 우리 시대의 기업가정신을 작동하게 하는 원리임과 아울러 기업경영의 신축성, 자율성, 창의성을 촉진하여 경제제도의 거래비용(transaction costs)을 줄이는 '진정한 룰의 지배'와도 부합하는 원리이다.

 

기업활동의 메카로서 미 델라웨어가 한때 구가했던 명성에 못지않은 'Corporate Korea, 그 보금자리(The Home)'라는 친기업(pro-business)의 명성을 지금부터 한국에 쌓아 나가는 데 매진해야 한다. 대통령이 경제적 성과를 높이는 제도변화로 기업가정신 창달에 나설 때다.

 

 

▲ 조홍균 논설위원

 

●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 현재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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