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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역사왜곡 논란 '나랏말싸미', 뚜껑 열어 보니…

홍종선
기사승인 : 2019-07-29 11:02:55
▲ 영화 '나랏말싸미' 스틸컷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 제작 영화사 두둥, 배급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는 산 넘고 산 넘어 오늘에 이르렀다. 기각됐지만 표절시비 속에 상영금지가처분소송을 치렀고 역사왜곡 논란은 아직 유효하다. 지난주 개봉한 영화는 75만명이 선택했다.

지난 주말 극장을 찾았다. 객석이 꽉 차 C열에 자리를 잡았다. 선입견 없이 봤다고 말하긴 어렵다. 뭔가 문제가 있으니 논란이 일겠지, 다소 부정적 시선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영화적 매무새가 촘촘했고, 한글 창제 과정에 대한 하나의 흥미로운 가설로 설득력 있게 만들어 고개가 끄덕여졌다. 15세기 중반 그날들의 진실과 거리가 가까운 것인지 먼 것인지 판단할 만큼 역사적 지식이 많지 않아 진위는 평가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영화적으로'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만했다.

무엇보다 영상미가 뛰어났고 대사가 차졌고 배우들 연기가 좋았다. 세종대왕 역을 맡은 송강호, 신미 스님 역의 박해일, 소헌왕후를 연기한 전미선, 세 배우의 조용하면서도 힘 있고 정갈한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학조스님 탕준상을 비롯해 신미를 돕는 승려들, 세종의 세 아들 김준한 차래형 윤정일이 믿음직했고 궁녀 진아 역의 금새록이 단아했다. 그리고 오현경 배우를 빼놓을 수 없다. 여든넷의 나이에 서슬 퍼런 정기와 선문답식 유머를 연기하는 노배우, 그리고 그 앞에 앉은 전미선 배우를 보며 좋은 앙상블이라는 생각을 했다. 오랜 역사 속에 연기 인생을 지켜가는 오현경 배우를 보며 우리가 뭔지 모를 울컥함과 존의를 품듯 전미선 배우도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이제는 부질없는 꿈도 꾸었다.

한글 창제 과정을 재미있게 또 시각적으로 풀어 이해하기 쉽게 보여 준 점도 좋았다. 소헌왕후 천도제 장면에서 궁중아악 연주, 비구니 스님의 혼령을 위로하는 승무 등 전통문화를 맛보게 한 장면도 좋다. 영화의 본류는 아닐지 몰라도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서 벌어지는 임금과 신하의 팽팽한 대결, 유교를 숭배하고 불교를 억눌렀던 숭유억불의 실재,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조선의 외교적 위치와 생존법 등에 대해서도 영화적 상상력을 바탕하여 압축적으로 잘 보여 줬다.

스토리 진행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강도 높은 속도감으로 내달리지 않지만, 그래서 영화 말미 "이게 끝인가"라고 말하는 관객 분들도 있지만, 영상미로부터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스토리텔링까지 영화판에서 뼈가 굵은 초로의 조철현 감독이 왜 이런 생각을 영화로 상상했고 연출했는지 공감이 간다.

왜 실제 역사가 아니고 영화적 상상력이냐고 묻는다면 답을 찾기 어렵다. 역사서가 아니라 영화 아니냐는 항변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하지만. 역사라는 게 기본적으로 과거 그때와 현재 지금의 대화일 수밖에 없다. '과연 배우기 어려운 한자를 기반으로 지식과 권력을 독점한 사대부가 자신들의 손으로 세운 조선의 지배기반을 흔들 한글을 기꺼이 만들었을까?'라는 의구심 측면에서 본다면. 세상의 지식을 백성에게 나눠 주고픈 성군 세종의 주도 아래 소리글자인 산스크리트어를 잘하는 불교 승려와 천재 아버지의 명을 받드는 수양‧안평대군의 뒷받침으로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열어 두게 되었다는 개인적 공감 정도를 얘기할 뿐이다.

현재진행형인 역사왜곡 논란은 조선왕조실록의 다음 부분을 근거로 한다.

# 문종 즉위년 경오(1450) 4월6일(기묘), 영의정 하연 등과 신미의 관직 제수와 영응대군의 거처 등을 의논하다.
임금이 영의정 하연, 좌의정 황보인, 우의정 남지, 좌찬성 박종우, 우찬성 김종서, 좌참찬 정분, 우참찬 정갑손을 불러 도승지 이사철에게 명령해 의논케 하기를, "대행왕(大行王: 세종대왕)께서 병인년(1446: 훈민정음 반포년도)부터 비로소 신미의 이름을 들으셨는데, 금년(1450)에는 효령대군의 사제(私第)로 옮겨 거처해 정근(精勤)할 때 불러 보시고 우대하신 것은 경들이 아는 바이다"

말하자면, 한글이 반포된 1446년에야 세종께서 신미의 이름을 들었다, 효령대군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뒤 1450년에야 신미의 얼굴을 보았다, 그런데 어찌 영화에서처럼 신미가 세종의 한글창제를 도왔겠는가, 라는 게 요지다.

필자는 같은 내용에서 다른 면이 읽힌다. 어찌하여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좌참찬, 우참찬 등을 대거 불러 신미의 관직 제수를 논의했을까. 왜 세종은 왕의 자리를 양위한 후 효령대군의 집에 거하면서 별세 직전이었던 1450년 신미를 우대했을까. 왜 신미의 이름은 조선왕조실록에 66번이나 언급될까.

영화 속에서 신미 스님이 팔만대장경을 내놓으라고 겁박하는 일본의 승려들에게 말한다. 팔만대장경의 주인은 이 나라 백성이다. 백성들의 허락을 구해 오라. 티벳도 고려도 그러했듯이 스스로 대장경을 만들어야 신심의 중추가 되는 것이지 남의 것 빌어다가 뺏어다가 모시는 건 대장경이 아니다. 영화 '나랏말싸미'는 만든 이의 손을 떠나 평론가의 손을 거쳐 관객에게로 갔다. 한글이 주인이 언중이듯 '나랏말싸미'의 주인은 관객대중이다. 외면당해 사장될지 한글처럼 살아남게 될지는 주인 손에 달렸다.


KPI뉴스 / 홍종선 기자 dunasta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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