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팍팍한 현실, 'BTS'라 쓰고 '버티슈'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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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현실, 'BTS'라 쓰고 '버티슈'라 읽는다

손지혜
기사승인 : 2018-12-29 10:33:48
"새해에도 정규직 일자리 줄고 '갑뿐싸'에 시달리고"
"그래도 버텨야하는 일상 이어질 것"

2018년 방탄소년단(영어로 BTS)은 위대했다. 세상을 빛냈고, 희망의 아이콘이 됐다. K팝 최초로 빌보드 1위에 오르며 K팝 역사를 다시 썼기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가수 최초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의 표지를 장식하며 비틀즈에 비견되고 차세대 리더로 칭송되어서만도 아니다.

 

▲ '버티슈.' 팍팍한 현실에 지쳐가는 청춘들은 BTS를 이렇게도 읽는다. 가혹한 현실에서 BTS는 지쳐가는 청춘들이 서로 위무하고 격려하는 레토릭이기도 하다. [정병혁 기자]

BTS의 성과는 놀라운 것이지만 그들의 성공 비결과 그들이 세상에 던진 메시지는 성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세상을 열광케 하는 힘, 들뜨게 하는 희망이 단지 빌보드 1위와 타임지 표지모델이라는 타이틀에서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막아내고 당당히 우리들의 음악과 가치를 지켜내겠다.' 방탄소년단(BTS· Bulletproof boys)의 작명에 담긴 메시지야말로 '성공비결'(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이자 희망의 원천이 아닐까. BTS는 2018년 9월 UN연설에서도 세상을 향해 같은 메시지를 던졌다. "너의 목소리로, 너의 얘기를 하라"(Tell your story, Speak yourself)고.


'버티슈.' BTS의 현실버전이랄까. 팍팍한 현실에 지쳐가는 청춘들은 BTS를 이렇게도 읽는다. 경제성장률은 바닥을 기고 취업시장의 한파는 언제 누그러질지 알 수 없는 현실. 그 가혹한 현실에서 BTS는 지쳐가는 청춘들이 서로 위무하고 격려하는 레토릭이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버티기는 일상이 된지 오래다. 정규직을 꿈꾸는 20∼30대는 고용주 갑질에 시달리며 '알바'를 전전한다. 40대 노동자 둘은 75m 높이 굴뚝위에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400일 넘게 농성을 벌인 끝에서야 노사협상을 시작했다. 60대 택시기사는 "카카오 카풀이 택시기사를 죽인다"며 오늘도 카카오택시 콜을 거부하고, 70대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은 '용역' 덩치들의 완력을 견딘다. 모두 엄혹한 시절, 생존을 위한 버티기다. 

 

정규직 꿈꾸며 알바 전전하는 20대

 

A(28·여)는 5년차 비정규직이다. 스물넷에 비정규직 리포터로 방송사에 취업했지만 사투리 때문에 마이크를 잡을 수 없었다. 결국 대필작가로 일할 수 밖에 없었는데, "가십거리가 될 만한 아이템을 더 자극적으로 쓰라"는, 상사의 끝없는 지시에 의욕을 잃었다. 1년 계약기간이 끝나고 '알바'를 하며 대기업 도전에 나섰다.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결국 다시 PD의 꿈을 이루고자 '언론고시'에 도전. 그러나 결국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지 못했다. 어느새 스물 일곱. 부모님에게서 이제 그만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악순환의 굴레에 갇힌 느낌에 A는 꿈을 잠시 접고 여행 관련 스타트업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그를 맞은 건 대표의 갑질. 대표는 '갑뿐싸'(갑질 뿐만 아니라 싸가지가 없다)의 전형이었다. 6시에 퇴근하려니 "무슨 인턴이 칼퇴냐"며 질책했다. 억지로 야근을 했는데 수당은 없었다. 대표는 "요즘 이런 일자리를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해야지. 야근수당 운운하는건 열정이 없는 거"라고 핀잔했다. 그러곤 김씨를 "직원 사이 계파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해고했다. 한 해가 또 흘러 스물여덟. '대기업에선 여자 나이 27이 마지노선'이라는 통념에 따라 A는 대기업 도전을 포기했다. 이제 스물아홉이 되는 A는 PD의 꿈 하나만을 붙잡고 팍팍한 현실을 견디는 중이다.


지방 출신 B(28·남)는 요즘 편의점에서 '알바'를 한다. 원래 꿈꿨던 직업은 소방공무원. 대학졸업을 1년 남기고 상경해 노량진에 거처를 마련하고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대략 월 100만원을 쓰며 2년 준비했지만 낙방했다. 패배감에 젖어 고향 집으로 돌아온 그가 대안으로 찾은 것은 지게차와 크레인 운전. 6개월 동안 관련 자격증을 땄으나 그 것도 자리가 나야 한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울산 현대차 플랜트부문 촉탁직(계약직)에 지원했다. 2개월마다 재계약하는 시스템인데, 여기도 기다려야 한다.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편의점 알바를 시작한 것이다. B는 "빈틈만 메우다가 취업길이 영영 끝나버릴까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없으니 '알바'로 버티는 수밖에.

울분에 차 버티는 50∼70대


K(63·남)는 서울 G운수 소속 택시기사다. 세밑 G운수 풍경은 무겁고 싸늘했다. 차고지 한쪽엔 검은색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근조. 카카오 카풀만행 항거한 택시 열사 고 최우기 기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카카오콜 앱 삭제와 콜거부합시다.' K는 "이제 '카풀'이라는 말만 들어도 화가 난다"고 했다.


카카오는 지난 12월 7일 '카카오T 카풀' 베타 서비스 개시를 알렸다. '카카오T 카풀'은 일반 운전자가 방향이 비슷한 사람을 태워 돈을 벌고, 탑승자는 출퇴근 교통불편을 더는 공유경제 서비스다. 비용이 택시요금의 70% 수준. K는 "택시기사 대부분이 50~70대"라며 "카카오 카풀을 허용하는 것은 이 택시기사들을 모두 죽이는 일"이라고 했다. 

 

노량진시장 상인 C(74·여)는 신시장 입주를 거부하고 물과 전기가 끊겨버린 구시장에서 버티는 중이다. 이미 옆 가게는 울며 겨자먹기로 신시장으로 떠난 터. 그는 "신시장∼"이라며 운을 떼자 손사레부터 쳤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조건은 노량진 전체를 다 죽이는 것이라고, 실제로 구시장과 신시장이 나뉘고 나서 매출이 말도 못하게 줄었노라고 했다. C는 "25년 장사하면서 용역깡패가 사람 때리고 물건 부수는 광경을 처음 봤다"면서 "상인들 덕분에 먹고사는 사람들(수협)이 상인들한테 이럴 수 있나. 난 끝까지 버틸 것"이라고 말했다.

언제까지 버텨야 하나


2019년은 더 힘들 전망이다. 경제성장률은 더 떨어진다. 2%대 초반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고용사정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신규 취업자가 2018년에 비해 대폭 늘 것으로 보지만 얼마나 나아질지 의문이다.

 

민간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은 '2019년 경제전망'에서 새해 취업자 증가폭을 11만명으로, 2018년보다 1만명 줄였다. "취업자 증가폭은 인구구조 변화, 산업 구조조정 등의 영향으로 낮은 수준을 기록할 것이며 임금상승, 기업 투자부진으로 고용시장 개선이 힘들 것"이라는 게 국가미래연구원의 관측이다.

 

4차산업 혁명과 공유경제의 확산도 기회이자 위기다. 카카오 카풀이 예고하듯 당장은 수많은 일자리를 줄이는 효과를 내며 사회 갈등을 증폭시킬 것이다.   

 

경기가 바닥을 찍을 것이란 전망은 역설적으로 위안이다.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은 지난 12월 20일 경총포럼에서 "한국경제는 새해에 하락세의 바닥을 찍는 최저점이 형성될 것"이라며 "기업들이 당분간 잘 견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닥을 찍으면 반등할까. 그때까지 '버티슈'의 행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손지혜·오다인·김이현 기자 sj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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