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인사 "경협 반대보다 한·미 간의 페이스를 맞추자는 취지"
주한 미국 대사관이 지난달 북한을 방문했던 국내 4대 기업과 대북 사업을 진행중인 산림청에 직접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이 처럼 미국 정부가 청와대나 외교부를 통하지 않고 국내 은행과 민간 기업을 직접 접촉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31일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주한 미 대사관이 삼성·현대차·SK·LG 등 지난달 방북했던 주요 기업 등에 직접 전화해 방북 과정에서 논의됐던 기업 차원의 협력사업 추진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미국 대사관은 평양공동선언에 따라 현재 북한과 우선 협력을 추진하는 산림청과도 별도 접촉했다. 산림청은 대북제재 완화 논란에도 북한 양묘장 현대화 등을 위해 이미 내년도 예산 1137억원을 편성했다.
이에 앞서 미국 재무부는 평양공동선언 직후인 지난달 20~21일 국내 7개 은행과 관련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을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 측은 "(대북제재 위반 관련)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하지 말라"는 등 강도 높은 우려를 국내 은행 측에 표명했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청와대나 외교부를 통하지 않고 국내 은행과 민간 기업에 직접 접촉에 나선 건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 경협 과속을 우려한 미국 정부가 민간 분야에 속도 조절 등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속도 조절을 요청했지만 조속한 협력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하자 미국 측이 민간을 직접 접촉하는 우회로를 찾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경협 반대보다는 비핵화 협상에서 한·미 간의 페이스를 맞추자는 취지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업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4대 기업 관계자는 "미국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맞다. 하지만 구체적 요청 내용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며 "수출에 의존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할 수도, 그렇다고 한국 정부의 뜻을 거스를 수도 없지 않겠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일부 기업은 혹시 모를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등에 대비한 비상 대책팀도 가동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경제단체 관계자도 "4대 기업뿐 아니라 방북했던 기업을 미 대사관이 순차적으로 추가 연락하는 것으로 안다"며 "구체적인 대북 사업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거나 가능성이 있는 곳이 (미국 접촉의) 우선 대상"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평양 정상회담 때 방북한 경제인은 17명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 등 4대 기업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CJ그룹 회장) 등이다.
북한은 현재 27곳(중앙급 5곳, 지방급 22곳)의 경제특구를 추진 중이다. 사실상 국내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전제로 한 계획이다.
한편 주한 미국 대사관 측은 "산림청과의 접촉 등 공개되지 않은 특정 면담이나 대화에 대해 확인하거나 부인하지 않는 것이 대사관의 원칙"이라고 전했다.
KPI뉴스 / 손지혜 기자 sjh@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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