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김기성의 경제분석] 빚보증 약속 무시한 강원도는 금융시장의 '빌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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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성의 경제분석] 빚보증 약속 무시한 강원도는 금융시장의 '빌런'

UPI뉴스
기사승인 : 2022-10-22 13:41:53
불안한 PF대출, 금융시장 뇌관으로 등장
신뢰 바탕으로 하는 금융시장에 큰 충격
단체장 바뀌어도 빚보증 약속 지켜져야
고금리, 고환율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던 금융시장에 불길한 총성이 울렸다. 마치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사라예보의 총성이 떠오르는 불길한 느낌이 금융시장에 엄습했다. 강원도가 지급보증한 채권을 갚지 못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강원도, 레고랜드 건설비 보증 '나 몰라라'

강원도는 레고랜드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44%의 지분으로 참여했다. 이 회사는 2020년 특수목적법인 아이원제일차를 설립하고 2050억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Asset Backed Commercial Paper)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이 ABCP는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섰다. 지자체가 보증을 섰으니 당연히 국고채 수준의 대우를 받았고 시장에서 무리 없이 소화됐다.

그러나 강원도는 지난달 29일 만기가 다가오자 빚을 대신 갚지 못하겠다고 밝히고 법원에 GJC의 회생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아이원제일차의 신용등급은 한순간에 A1에서 C로 강등됐고 2050억 원의 ABCP는 지난 6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레고사태로 금융시장 쑥대밭 

지자체가 보증한 어음까지 부도가 나자 금융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돈값이 가파르게 치솟은 것이다. 기업어음 금리는 금융위기 때인 2009년 1월 말 이후 처음으로 4%를 넘어섰다. 돈 구하기 어려워진 기업들은 은행 창구로 몰려가 대출을 요구했고 은행은 대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채를 발행했다. 그러지 않아도 한전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대규모 채권을 발행해 경색돼 있던 채권시장은 더욱 얼어붙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부동산 PF대출을 바탕으로 유동화 증권을 발행한 증권사에 의심의 눈길이 쏟아졌고 부동산 사업에 지급보증을 선 건설사도 온전치 못할 것이라는 의구심이 증폭됐다. 이렇게 되자 불안한 시장 심리를 반영한 듯 찌라시가 돌기 시작했다.

A증권, B증권이 매물로 나왔고, C건설, D건설이 부도가 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기업 이름까지 적시하고 있어서 시장 불안을 더욱 증폭시켰다. 금융감독원은 이런 찌라시들은 사실과 다른 악성루머라며 주가 조작에 악용될 소지가 있어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신뢰에 금이 간 금융시장, 깨진 유리잔
 

사태가 커지자 강원도는 지난 19일 2050억 원에 대한 예산을 편성해 늦어도 내년 1월 29일까지 갚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정부도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채권시장안정 펀드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번 무너진 시장의 신뢰는 쉽게 회복하지 못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깨진 유리잔이 된 것이다.

지난 6월 기준으로 은행과 제2금융권의 부동산 PF대출 잔액은 112조2000억 원이고 이를 기초자산으로 증권사가 발행한 유동화 증권까지 포함하면 152조 원에 달한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 PF대출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던 금융사들은 살얼음판을 걷게 됐다. 지자체마저 지급보증을 거부하는 마당에 어느 것도 안전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강원도의 지급보증 거부는 최악의 선택 

레고랜드는 그동안 무수한 잡음이 있었다. 지나치게 사업을 낙관적으로 본다는 본질적 비판이 계속됐다. 또 레고랜드의 용지를 100년 동안 무상임대한 것, 그리고 테마파크 운영에 대한 강원도의 수익률이 3%에 불과하다는 점을 들어 불공정 계약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김진태 지사는 레고랜드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전임 최문순 지사의 치적이 김진태 지사의 혹이 됐다는 말까지 나왔다.

레고랜드 사업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중단할 수는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에 대한 약속은 지키는 것이 원칙이다. 불순한 혐의가 있으면 감사를 진행하거나 수사를 요청할 수는 있겠지만 금융시장과의 약속은 지켜야만 한다.

레고랜드 사태, 다른 지자체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국가 단위든 지자체 차원에서든 선거를 통해 책임자가 바뀌면서 사업이 중단되거나 변경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임자의 사업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순한 혐의가 있다고 빚을 갚겠다는 약속을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레고랜드의 ABCP처럼 전국 각 지자체가 지급보증한 ABCP는 현재 1조3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정권이나 지자체의 단체장이 바뀌어서 사업이 중단되거나 변경되더라도 보증한 빚은 갚겠다는 믿음을 금융시장에 심어줘야 할 것이다. 당연히 지켜야 할 약속을 꼭 지킬 것이라는 말을 되풀이해야 하는 비정상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다행히 금융 불안이 잘 해결되더라도 이번 레고랜드 사태는 금융 교과서에 실릴만한 충격이다.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해 영국의 위기를 가져왔던 콰지 콰탱 영국 재무부 장관과 더불어 지급보증을 거부한 강원도의 사례는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금융시장의 대표적 빌런으로.

*빌런, villain : 영화나 소설 속에서 악당을 뜻하는 단어

▲ 김기성 경제평론가

● 김기성

△ 서울대 사회학과 △ SBS 경제부장 △ SBS 뉴욕 특파원 △ SBS 보도제작국장 △ SBSCNBC 대표이사 △ TV조선 뉴스센터장 △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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