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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가파른 원화값 하락, 필리핀보다도 저평가된 한국 증시, 왜?

안재성 기자
기사승인 : 2022-09-16 17:01:06
"금리 0.25%p씩만 올리겠다는 이창용 총재 발언이 원화가치 하락 유발"
"세계 최저 배당성향·취약한 기업 지배구조가 한국 증시 저평가 불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강도 긴축으로 전세계가 고물가·고환율에 신음하고 있다. 달러화 대비 자국 통화 가치 하락과 증시 부진을 모두 겪는 중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은 더 심하다. 원화 가치와 증시 하락세가 유난히 가파르다. 한국보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동남아나 남아메리카 국가들보다 심하다.

16일 한국은행과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7월 마지막 거래일 대비 5.9% 떨어졌다. 같은 기간 중국 위안화(-2.7%), 인도 루피화(-0.4%), 튀르키예 리라화(-1.7%), 남아공 랜드화(-2.6%) 등의 가치 하락폭보다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또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와 태국 바트화는 달러화 대비 보합세(0%)였고, 멕시코 페소화(2.7%), 브라질 헤알화(1.5%), 러시아 루블화(2.7%) 등은 오히려 평가절상됐다. 

유로화(-1%), 파운드화(-4.1%), 캐나다달러(-1.4%), 호주달러(-1.3%) 등 주요 선진국 통화는 물론 신흥국 통화들보다 원화의 가치 절하가 더 큰 까닭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주 원인으로 8월 무역적자가 월간 사상 최대치(94억7000만 달러)를 기록한 것과 더불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섣부른 발언을 꼽는다. 

이 총재는 지난달 25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만 올린 금융통화위원회 후 "앞으로 당분간 금리를 0.25%포인트씩만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대폭적인 금리인상이 예고된 상황에서 한은이 당분간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만 밟겠다는 말은 원화 가치가 떨어질 거라는 얘기와 동의어"라고 지적했다. 

성 교수는 "이 총재 발언은 원화를 팔고 달러화를 사려는 수요를 촉발했다"며 "한은이 스스로 금리인상폭을 제한한 게 상당한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독립 증권리서치사 더프레미어의 강관우 대표도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거듭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고 있는 상황에서 한은의 소극적인 대처가 원화 가치를 떨어뜨렸다"고 분석했다. 

강 대표는 위안화 하락의 영향도 꼽았다. 그는 "한국 경제는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기에 위안화의 달러화 대비 가치가 절하되면 원화 가치는 그 이상으로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 최근 원화 가치의 내림세가 동남아·남미 국가들보다도 더 가파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베이비스텝'만 밟겠다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이 원화 가치 하락을 불렀다고 진단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증시는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저평가되는 현상)'를 겪고 있다. 

지난 15일 금융위원회·한국거래소·자본시장연구원이 개최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정책 세미나'에서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주식은 과거 10년 간 선진국의 52%, 신흥국의 58%, 아시아·태평양 국가의 69% 수준으로 디스카운트됐다"고 말했다. 

2012~2021년까지 10년 간 한국 증시의 평균 PBR(주가순자산비율· 주가를 주당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은 1.163으로 자본시장연구원이 조사한 주요 45개국 중 41위에 머물렀다. 한국보다 평균 PBR이 낮은 곳은 그리스(1.128), 폴란드(1.068), 루마니아(0.833), 러시아(0.817)뿐이었다. 

덴마크(3.359), 미국(3.098), 스위스(2.799) 등 서구 선진국은 물론 인도(2.491), 중국(2.237), 베트남(2.140), 태국(2.062), 필리핀(2.047), 대만(1.935), 일본(1.437) 등 아시아 국가들도 모두 한국 수준을 웃돌았다.  

김 연구위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세계 최저 수준의 배당성향과 소액주주 보호에 미흡한 기업 지배구조 취약성, 회계 불투명성 등을 꼽았다. 자본시장연구원 조사에서 한국 기업의 배당성향은 45개국 중 최하위였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상장사의 이익이 배당을 통해 모든 주주에게 비례적으로 분배되지 않고 지배주주에게 주로 귀속된다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상장사의 지배주주들이 고액의 보수, 개인 회사로의 일감 몰아주기, 계열사 간 불공정한 합병 비율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본인의 지분 비율을 초과한 이익을 편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윤수 금융위 자본시장정책관은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의 지배구조가 불투명하고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 건강한 압력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낮은 배당성향, 기업 지배구조의 취약성 등과 더불어 한국 기업의 이익 변동성이 심한 점도 원인"이라고 거론했다. 그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 한국 대표기업들이 경기민감주라 경기에 따라 실적이 크게 출렁이는 점이 저평가를 불렀다"고 말했다. 

KPI뉴스 / 안재성·박지은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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