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제로금리, 양적완화 지속…거꾸로 가는 일본, 자신감인가 딜레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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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금리, 양적완화 지속…거꾸로 가는 일본, 자신감인가 딜레마인가

안재성 기자
기사승인 : 2022-06-21 17:30:05
일본은행, 저금리·양적완화 유지…글로벌 트렌드와 거꾸로 가
금리 상승 감당하기 힘든 일본…국가부채 1000조엔 넘어
"엔저 장기화는 내수 망가뜨려…일본 경제에 부정적 영향"
일본의 통화정책이 이상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등 글로벌 중앙은행들이 긴축의 고삐를 바짝 죄는데, 일본은행(BOJ)만 거꾸로 가고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 17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1%로 동결했다. 양적완화는 오히려 더 강화했다. 10년물 국채 금리 상한선 목표치를 0.25%로 유지하면서 무제한 매입 대상 국채를 기존 10년물에서 7년물까지로 확대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은행 관계자는 "일본은행이 구입할 수 있는 채권의 양에 제한은 없다"며 국채 금리 사수를 자신했다. 

일본은행이 글로벌 트렌드와 반대로 가면서 일본 엔화 가치는 뚝뚝 떨어지고 있다. 최근 엔화 가치는 1달러당 135엔을 넘어서면서 1998년 10월 이후 약 2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1달러당 150엔까지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엔저가 수출 증대로 연결돼 일본 경제에 도움이 될 거라는 자신감의 표현일까. '미스터 엔'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재무관(인도경제연구소 이사장)은 "'일본을 팔자'로 엔저가 되는 것이 '나쁜 엔저'"라면서 "현재 상황은 나쁜 엔저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엔저로 인한 수출액 증가 효과보다 오히려 수입액 확대 효과가 더 컸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올해 5월 무역수지가 2조3847억 엔(약 22조7290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1979년 1월 이래 두 번째로 큰 월간 무역적자다. 엔저의 영향으로 10개월 연속 무역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에너지 등 수입물가 상승이 일본 가계를 짓누르면서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도 떨어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과 TV도쿄가 지난 17~1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60%로 전월 대비 6%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물가 상승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응답자가 64%에 달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도 "물가 상승이 일반 가정에 고통스럽다는 인식은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책을 바꿀 생각은 없다고 강조했다. 사카키바라 전 이사장은 "구로다 총재가 퇴임하는 내년 4월까지 현재의 양적완화 정책이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일본은행은 글로벌 트렌드와 정반대로 저금리와 양적완화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급격한 엔저로 연결돼 일본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은 구로다 히로히코 일본은행 총재. [뉴시스] 

전문가들은 일본의 과도한 국가부채 탓에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려야 할 때도 올릴 수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현재 일본의 국채 발행 잔액은 1000조 엔(약 9600조 원)을 넘었다. 금리가 1%포인트만 뛰어도 연간 이자로 지급해야 하는 돈이 10조 엔에 달한다. 이는 일본 정부가 감당하기 힘드니 억지로라도 금리를 눌러야 하는 것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빚이 너무 많아서 저금리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독립 증권리서치사 더프레미어의 강관우 대표도 "금리 상승은 일본 정부가 견디기 힘들다"며 "일본은 이미 금리 조절 능력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행은 2016년부터 국채 10년물 금리가 0%를 유지하도록 공개시장조작을 통해 개입하고 있다. 2021년 3월부터는 상하 0.25% 정도의 변동까지만 인정하고 있다.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가 0.25%를 넘어서면, 즉시 국채를 무제한으로 매입해 그 이하로 낮추는 것이다. 일본은행은 올해에만 12차례 무제한 국채 매입을 실시했다. 거듭된 무제한 매입으로 일본은행의 국채 보유액은 500조 엔까지 부풀었다. 

엔화가 세계적인 안전자산으로 일컬어질 때는 이런 '무리수'도 통했다. 그러나 과도하게 늘어난 부채, 잃어버린 금리 조절 능력, 중국 위안화의 부상 등으로 인해 엔화의 '안전자산 신화'에도 금이 가고 있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주요 국제결제통화 중 위안화 비중이 2.70%를 기록, 처음으로 엔화(2.58%)를 추월했다. 

이미 민간 투자자들은 '일본을 팔고' 있다. 도교금융시장에서 지난 15일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는 장중 0.30% 선을 돌파했다. 일본은행이 국채 무제한 매입을 선언하고서야 다시 0.25% 이하로 내려갔다. 

강 대표는 "과거에는 일본 국민 등 여러 민간투자자들이 일본 국채를 샀다"며 "하지만 지금은 일본은행이 대부분 매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엔저 장기화는 일본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구로다 총재도 "최근의 급격한 엔저는 일본 경제에 마이너스"라고 인정했다. 

김 교수는 "엔저로 인한 수출 증대 효과가 과거 같지 않다"며 "오히려 내수를 망가뜨려 일본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해외로 생산 시설을 이전한 일본 기업이 많아 엔저 효과가 크게 낮아졌다"고 분석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엔저가 수출 증대에 일정 부분 도움은 될 것"이라면서도 "일본의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구조 개혁이 동반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구조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긍정적인 효과도 지속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성 교수는 "구조 개혁이 동반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엔저는 일본 경제에 대한 신뢰를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이미 일본 경제에 대한 신뢰는 점차 약해지고 있다"며 "엔저가 장기화할수록 신뢰도 하락은 점점 더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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