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강준만의 직설] '최선' 빙자해 '최악'의 길 열어젖힌 文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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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직설] '최선' 빙자해 '최악'의 길 열어젖힌 文정권

UPI뉴스
기사승인 : 2022-01-29 17:09:39
'최선'이 '차선'의 적 된 문재인 정부 정책
무주택자 입장에선 '실수'가 아니라 '죄악'
'"최선은 차선의 적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의 말이다. 이 세상의 거대한 문제와 씨름하는 사상가가 추상적인 이론의 세계에 빠져 최선을 추구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현실 세계의 작지만 구체적인 고통의 문제를 외면하기 쉽다는 뜻이다.

시간의 문제도 있다. 최선을 추구하는 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지금 당장, 최선은 아닐망정 차선의 해결책이라도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최선은 적이 될 수밖에 없다.

논쟁적인 로티의 철학 세계까지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최선과 차선의 관계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맞닥뜨리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이므로, 현실의 세계에만 집중해 생각해보자.

지난 1월 9일 문재인 정권에서 초대 경제부총리를 지낸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 김동연이 유튜브 채널 '삼프로TV' 방송에 출연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최선은 차선의 적이 될 수 있다"를 넘어서 "최선은 차선의 적이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동연은 경제부총리 재임 시절 문재인 대통령에게 부동산 대책을 보고하는 중에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다주택자 양도 차익 100% 과세"를 주장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쳤냐.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고'라고 거절해 분위기가 안 좋아졌다"며 "1대15~20으로 싸웠고 거의 고성이 오갔다"거나 "배석한 비서관으로부터 '대통령에게 항명하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부동산에 정치 이념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던 김동연은 투기 억제 일변도만으론 안 되니 공급 확대를 계속 주장했지만, 문재인과 그의 청와대 참모들에겐 우이독경(牛耳讀經)이었다. 부동산 정책의 대실패는 김동연의 주장이 옳았음을 말해준다.

왜 이런 어이 없는 일이 벌어졌을까? 문재인과 그의 참모들을 '탈레반'이라고 비난하면 속은 편할지 몰라도 진실의 전모를 이해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일단 선의 해석을 해보자.

나는 토지가 빈곤 문제의 핵심이라고 했던 미국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1879년에 출간한 <진보와 빈곤>이란 책에 담긴 주장들에 깊이 공감한다. 그는 토지가 공동의 소유로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주의적 토지 소유를 주장한 건 아니다. 개인 소유 형태에는 손을 대지 않고 지대만 세금으로 거둬 국가 재원으로 사용하는 한편, 다른 형태의 세금은 폐지하는 방법으로 사회적으로 부를 공유하자는 것이다.

현 한국적 상황에서 보자면, 조지의 주장은 '최선'이다. 나는 조지의 주장에 공감하지만, 그걸 곧장 현실 세계에 적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말에 담겨 있는 이른바 '경로의존(path dependency)' 때문이다. 혁명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걸 어느 정도 가능케 하지만, 개혁은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기존 제도와 이에 따라 형성된 사람들의 관습과 습관을 고려하면서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해야만 한다. 이게 좋거나 바람직해서가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해 '최선'은 커녕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혁명을 하면 모든 걸 다 일시에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 역시 착각이다. 개혁에 비해 어느 정도 파격적인 정책을 취할 수 있을 뿐, 여전히 '경로의존'의 굴레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철학자 칼 포퍼가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 낸다"고 주장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와 무관치 않다.

"다주택자 양도차익 100% 과세"를 주장한 청와대 참모는 부동산 불로소득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정의로운 사람이었을 게다. 비극은 그가 너무도 성급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집단적 차원에서 부동산 불로소득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역사는 반세기가 넘는다. 그 세월 동안 사람들은 "부동산만이 살 길이다"는 삶의 문법을 체화시켰다. 그걸 무슨 수로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겠는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하면서 한 걸음씩 개혁의 길로 나아가는 '차선'만으로도 박수를 받을 일이었다. 그런데 문 정권이 한 일은 '최선'을 앞세워, 아니 '최선'을 빙자해 '최악'으로 가는 길만 활짝 열어 젖힌 것이었다. 다른 주요 정책들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무주택자들의 입장에선 볼 때엔 이건 '실수'가 아니라 '죄악'이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의원 노웅래는 지난 1월 25일 "국민들이 진정한 사과다 생각할 때까지 국민이 그만해도 된다고 생각할 때까지 반성해야 한다"며 "과거 부동산 정책 실패, 우리의 가치나 이념에 치우쳐 국민 눈높이와 달랐던 정책이 있다면 그것과 관련된 책임자는 더 과감하게 석고대죄,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사과를 해줘야 국민들의 아픈 마음과 반감을 덜어낼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감동적인 말씀이지만, '관련된 책임자'의 범위에 문재인은 해당되는지 궁금하다. 문재인을 비롯한 문 정권의 관련 인사들은 석고대죄나 고해성사까진 하지 않아도 좋으니, 내내 속으로나마 참회하는 여생을 보내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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