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강준만의 직설] 문제의 핵심은 김어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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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직설] 문제의 핵심은 김어준이 아니다

UPI뉴스
기사승인 : 2021-04-14 16:06:41
본질은 진행자가 아닌 책임자
법·제도보다 공정방송 의지 중요
지난 3월 26일 KBS·MBC·EBS 등 공영방송 3사 노동조합이 공동명의의 요구안을 통해 공영방송 이사·사장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는 법 개정을 6월 말까지 완료하라고 국회에 촉구했다.

이들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 "대선·총선 정책협약, 방통위 업무보고 등으로 무수히 약속되었"으나 "한 발짝도 진전이 없다"며 "청와대와 국회가 공영방송을 국민으로부터 탈취할 수 있는 전리품, 권력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구시대적 발상으로부터 정말 단절되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 요구에 뜨거운 지지를 보낸다. 보수정권에서 공정방송을 위해 애쓰다가 가혹한 탄압을 받았던 고 이용마 MBC 기자는 죽는 날까지 일반 시민이 공영방송 이사·사장을 뽑는 '국민 대표단 제도'를 부르짖었다. 암 투병 중이던 이 기자의 집을 두 번이나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이 기자의 외침에 적극적 찬성을 표한 바 있다. 이 찬성을 실행에 옮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 시민사회의 수준과 역량을 믿고, 이제 권력에 휘둘리던 공영방송의 흑역사와 작별해보자. 그런 작별을 위해 나와 같은 언론학자들부터 반성해야 한다. 왜 학자들은 모두 다 공정방송이라는 대의에 찬성하면서도 그걸 요구하는 목소리는 정파성의 지배를 받는가?

진보 학자들은 보수정권을 향해선 공정방송을 외치다가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닫는다. 보수 학자들 역시 똑같은 행태를 반복해 왔다. 이제 이런 유치한 내로남불은 사라져야 한다.

방송인들 스스로 할 일은 없는가? 문 정권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끝내 외면하면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고 친정권 방송만 할 생각인가? 친정권 방송이 방송인 개개인의 이념적·정치적 소신에 따른 것일 수 있으며, 사실 문 정권에선 '외부'나 '위'의 압력보다는 오히려 이게 더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이 또한 옳지 않다. 공정방송보다 개인적 소신이 더 중요하다면 직장을 유튜브로 옮기는 게 옳다.

4·7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의 서울시장 취임 이후 교통방송(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진행자인 김어준 씨의 거취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나는 이 논란을 지켜보면서 김 씨를 중심에 두는 '의제 설정'은 잘못됐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김 씨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왜 그런가?

정파적 이익을 위해 무책임한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사회적 약자를 모욕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 진행자가 있다면, 그리고 그런 행태가 반복된다면, 우리가 우선적으로 문제삼아야 할 대상은 진행자가 아니라 담당 PD들이다. 그들에게 프로그램 통제권이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열성 지지자들이 많아 청취율 1위의 '효자 상품'인 데다 대통령을 포함해 정권 실세들이 사랑하는 진행자인지라 통제권을 발휘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래도 괜찮은 것인지 따져 물어야 한다. 담당 간부들과 사장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교통방송 측은 지난해 재단법인화(즉, 정치적 독립)가 이루어진 걸 강조하면서 앞으로 달라질 게 없다는 당당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결여돼 있다는 점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보수정권(또는 보수 지방정부)에서 보수 정파성을 잘 구현해줄 수 있는 사람을 방송사의 대표로 영입해 보수 일변도의 방송을 해온 상황에서 진보정권(또는 진보 지방정부)이 들어섰다고 가정해보자. 그 방송사가 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내세워 계속 하던 대로 하겠다고 그러면 동의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이용마 기자가 말한 국민대표단이 공정방송 의지와 비전을 밝힌 후보들 중 한 사람을 택해 대표로 뽑았다면, 교통방송 측의 주장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잖은가. 다시 말하지만, 처음부터 문제는 김어준 씨가 아니라 담당 PD들, 담당 간부들, 그리고 사장이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그간 방송인들은 마치 권력의 노예나 되는 것처럼 공정방송을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모든 책임을 법과 제도 탓으로만 돌려왔다. 방송인들에게 공정방송의 의지 자체가 없는데, 법과 제도를 아무리 바꾼다 한들 그 어떤 변화가 가능하겠는가. 방송인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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