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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가 뭐길래, 금융시장의 지뢰밭 되었나

류순열 기자
기사승인 : 2019-10-18 15:11:03
잇단 사모펀드 부실..."DLF원금손실, 라임자산운용 사태는 시작일 뿐"
1억원 투자에 '선수 입장'...지나친 규제완화, 독 묻은 부메랑으로
요즘 금융시장이 흉흉하다. DLF원금손실이니, 라임사태니, 여기저기서 부실이 터져나온다. 은행들이 판 금리연계 파생상품에서, 자산운용사가 판매한 메자닌펀드에서, 증권사가 판 해외부동산펀드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게 다가 아닐 거라는 점이다. 상당수 금융시장 전문가들이 불안감을 숨기지 않는다. 이제 시작일 거라고, 어디서 얼마나 더 터질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지금 금융시장을 두고 지뢰밭이라고 한다. 경제위기가 발생한다면 금융시장에서 발화할 것이란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꼬리를 무는 부실사태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사모펀드라는 점이다. 사모펀드가 뭐길래, 또 어쩌다 금융시장의 지뢰밭이 된 것인가.

▲ 그래픽=장한별

규제완화가 키운 사모펀드


사모펀드(PEF· private equity fund)란 50명 미만의 소수 투자자에게서 사모(私募)방식으로 자금을 모아 운용하는 펀드를 말한다. 50명 이상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돈을 모아 법적 규제를 받아 운용하는 공모펀드와 대비된다. 다시 말하면 소수의 투자자에게서 돈을 모아 운용상의 제약 없이 투자하여 수익을 내는 펀드다.

공모펀드가 엄격한 규제를 받는 데 비해 사모펀드는 자유롭다. 투자자보호나 건전성, 정보 공개 등에 있어 규제가 느슨하다. 그래서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정한 요건을 갖춘 '적격투자자'여야 한다. 이른바 기관투자자에 준하는 '선수', '빠꼼이'들이나 뛸 수 있는 무대라는 얘기다.

이런 사모펀드가 최근 수년새 급성장했다. 정부의 규제완화 덕분이다. 2015년 10월 금융위원회는 사모펀드 운용사의 자기자본 요건을 완화하고 설립요건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는 등 대대적인 규제완화에 나섰다.

지난 9월말 기준 국내 자산운용사의 사모펀드 운용자산은 400조 원에 육박한다. 규제완화가 시작된 2015년 10월말 197조여 원에 비해 두 배 이상 커졌다.

금융위가 규제완화에 나선 것은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다. 선진 외국에 비해 규제가 너무 빡빡하다 보니 모험자본으로서 사모펀드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사모펀드는 금융산업 내에서 가장 창의적· 혁신적 자산 운용이 가능한 분야로, 선진 외국의 경우 금융산업의 부가가치 창출과 경제 역동성 제고에 기여해온 것이 사실이다.

▲ 우리·하나은행의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펀드(DLS·DLF) 피해자비대위가 지난 1일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앞에서 연 'DLS판매 금융사 규탄 집회' 현장. 한 투자자가 자신의 통장을 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뉴시스]

독이 된, 규제완화 부메랑

문제는 규제완화의 정도였다. 사모펀드는 개인이라도 '선수', '빠꼼이'들이나 참여할 수 있는 시장인데, 그 선수(적격투자자)의 자격 문턱을 너무 낮췄다. 2015년 금융위는 사모펀드 적격투자자 기준을 최소 투자자금 5억 원 이상에서 1억 원 이상으로 대폭 낮췄다. 금융지식이 없어도, 전체 자산이 얼마건 1억 원만 투자할 수 있으면 사모펀드에 가입할 수 있는 '선수'가 된 것이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2014년 말 개인투자자들의 사모펀드 투자금액은 10조 원에서 2018년 말 23조 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렇게 개인들의 사모펀드 투자규모가 급증하는 동안 바로 지금 부실이 터진 DLF 등 문제의 사모펀드들이 선수로 둔갑한 개인들에게 팔려나간 것이다.

그 결과 금융사들의 불완전판매에 낚여 노후자금을 날리게 된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DLF사태 이후 이런 개인투자자들에게 고위험상품을 판 은행들에 거센 비판이 쏟아지지만 은행들의 불완전판매만을 탓할 일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불완전판매의 멍석을 깔아준 건 결국 정부다. 지금 터지고 있는 부실사태는 규제완화의 결과물인 것이다. 규제완화 흐름속에 시장에 매설된 지뢰가 글로벌 경기침체를 맞아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터에 11월 20일경 전문투자자 자격중 금융상품 잔고 기준이 5억 원 이상에서 5000만 원 이상으로 대폭 완화된다. 규제완화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낮춰도 너무 낮췄다

최소 1억 원만 투자할 수 있으면 사모펀드에 가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 것은 선진 외국과 비교할 때 지나치게 느슨한 것이다. 1억 원 이상 투자할 수 있다고 해서 그들이 손실을 완전히 감당할 수 있다거나, 사모펀드의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는 전문성을 갖췄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미국은 개인투자자의 경우 투자능력과 위험감수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사모펀드 투자를 허용하고, 유럽은 일반투자자는 아예 사모펀드 투자가 금지돼 있다. 기관투자자나 전문가라 할 개인투자자로 한정되는 외국과 달리 한국은 1억 원만 투자할 수 있으면 적격투자자라는 이름으로 '선수 입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모펀드는 원래 복잡한 구조를 보이고 리스크가 높아 전문가 영역에 속하는 분야"라면서 "일반 투자자들이 대거 들어간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힘들고 해외에서 이런 상황은 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오프사이드가 유지되는 이유

축구 룰 가운데 오프사이드(offside)라는 게 있다. 공격팀 선수가 공보다 앞쪽에서 플레이하는 것을 제한하는 일종의 '규제'다. 있어야 할 위치가 아닌, 즉 오프사이드에서 플레이할 경우 반칙을 선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자유로운 플레이를 제한하는 것이기에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이 규칙엔 중세 유럽축구에서 유래한 역사적이고도 분명한 이유가 있다. 적진 골대 근처까지 깊숙이 침투해 숨어 있다가 공이 오면 낚아채 득점하는 '비겁한 행동'을 규제하려는 것이다. 궁극의 지향점은 공정성이다. 스포츠의 품격을 유지하며 발전시키는 핵심 가치다. 자유로운 플레이를 제한하는 불합리한 룰이라며 폐기한다면? 골문 밀집 현상과 함께 축구는 질적 타락과 신뢰의 위기를 맞을 것이다.

경제도 다르지 않다. '오프사이드'의 폐기처분이 어떻게 위기를 몰고오는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반복적으로 증명되는 일이다. 1929년 대공황,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렇고, 멀리 갈 것 없이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대란이 또한 그렇다. 위기가 터지기 전 규제완화, 시장자유 확대가 진행된 것은 공통 현상이었다. 오프사이드 폐기가 재앙으로 이어졌음을 역사는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 신자유주의 첨병으로 규제 철폐를 이끌었던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반성문'을 읊조려야 했다. 사진은 2014년 5월14일 워싱턴에서 폴리티코와의 인터뷰 장면. [AP 뉴시스]

규제완화의 역설을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 있다. 2006년까지 18년간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지낸 앨런 그린스펀(1926∼)이다. 신자유주의자인 그는 규제철폐의 첨병이었다. 극단적 규제혐오증으로 은행들의 수신금리 규제(금리상한선)인 '레귤레이션 Q'를 폐지하다시피 하는 등 금융산업의 규제 빗장을 풀어나갔다.

그의 눈에 모든 규제와 정부 개입은 '나쁜 것'이었다. 예금은행과 투자은행을 엄격히 구분했던 '글래스 스티걸법'도 그가 재임 중이던 1999년 철폐됐다. 대공황 이후 제정된 규제법에 대한 최후의 일격이었다. 경제석학 폴 크루그먼은 "이후 규제시스템은 점차 허물어졌고 은행들은 자신감에 도취했으며 위험이 커지면서 위기를 향한 여정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저서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규제완화 10년이 이룬 '경제불안'  

지난 10년여간 한국경제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전개됐다. 2014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를 두고 '암덩어리','쳐부숴야 할 원수'라는 과한 표현을 동원하며 규제완화의 진군나팔을 불었다. 이어 규제완화는 그해 여름 초이노믹스(최경환 경제부총리 경제정책)로 본격화했다. '금리인하 + 주택금융규제(LTV·DTI) 완화'의 위험한 정책조합이 단행됐다.

"한겨울에 여름옷을 입은 격"이라고, 최 부총리가 사자후를 토하자 관계당국 수장들은 풀잎처럼 누웠다. 오늘날 천문학적 가계부채와 고공행진한 아파트값은 그 결과물이다. 그 당시 잇단 금리인하는 옳은 결정이었나. "금융안정을 해치는 결정이었다"는 때늦은 후회와 반성의 목소리가 지금 한은에서 나온다.

▲ 경제석학 폴 크루그먼은 "경제위기가 반복되는 것은 예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지난달 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2019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성과공유 컨퍼런스에 참석,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폴 크루그먼. [문재원 기자]

경제사에서 위기는 수없이 되풀이됐다. 본질적 이유는 똑같다. 폴 크루그먼은 "예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위기를 겪으면 규제를 강화했다가 탐욕과 망각의 늪에 빠져 규제를 걷어치우고 다시 위기를 맞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물은 엎질러졌다. 사모펀드는 만개가 넘는다. 어디에서 또 뭐가 터질지 알 수 없다. 전반적 실태조사는 불가능하다. 사모펀드의 부실이 경제 전반으로 번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KPI뉴스 / 류순열 기자 ryoos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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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 기자 진실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좇겠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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