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통과 초읽기…‘줄소송 공포’에 떠는 의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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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통과 초읽기…‘줄소송 공포’에 떠는 의료계

안재성 기자
기사승인 : 2023-09-25 17:44:49
보험사 “소비자 편의” vs 의료계 “개인정보보호”…핵심은 ‘소송’
“보험사에 자료 보내는 주체가 병·의원 돼…소송 제기 용이해져”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는 보험사기를 뿌리 뽑는 계기가 될 거다. 보험사들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를 골자로 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지난 21일 오전 국회 법사위를 통과해 오후 본회의에 상정됐다. '9부 능선'을 넘었으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의 후폭풍으로 본회의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가 사퇴하면서 본회의 일정이 표류 중이지만, 전례를 볼 때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의 본회의 의결은 시간문제라 할 수 있다.

 

개정안 핵심은 실손보험금 청구에서 병·의원이 필요 서류를 보험사에 다이렉트로 전자 전송하게 하는 점이다. 그동안은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병·의원에서 필요 서류를 받아다가 보험사에 내야 했다.

 

이게 불편해 소액 보험금은 포기하는 가입자들이 많았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에 따르면, 청구되지 않은 실손보험금은 재작년 2559억 원, 작년 2512억 원에 달한다. 올해는 3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업계는 “개정안으로 소비자들 편의성이 개선되고, 소액 보험금도 빠짐없이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찬성한다.

 

반면 의료계는 “환자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 방대한 의료 정보를 손에 넣은 보험사들이 이를 유리하게 활용할 것”이라며 반대한다.

 

그런데 사실 병·의원에서 보험사로 전자 전송하는 서류는 지금까지 환자들에게 떼 주던 서류와 같은 내용이니 특별히 개인정보보호에 허점이 생긴다고 볼 수는 없다. 즉, 반대의 근거가 약하다.

 

또 개정안이 보험사에 그리 유리해보이지는 않는다. 소액 보험금까지 모두 청구되면, 보험사들은 매년 수천억 원의 실손보험금을 추가 지출해야 한다. 실손보험 손해율도 뛸 수 있다.

 

▲ 보험업법 개정안 통과 시 예상되는 실손보험금 청구 흐름. [보험연구원 제공]

 

그럼에도 왜 의료계는 타당해보이지 않는 이유를 들어 결사반대하고 보험사들은 손해를 무릅쓰면서 소비자 편의성 개선을 원하는 걸까. 의료계가 ‘악(惡)’이고 보험사가 ‘선(善)’이라서는 아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25일 “병·의원으로부터 직접 자료를 받게 되면 보험사기 등의 소송 대상이 병·의원이 된다”며 “이게 보험업법 개정안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소위 과잉진료 및 유도진료, 나아가 보험사기는 실손보험금 누수의 주 원인으로 꼽힌다. 보험사들은 보험금 청구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될 경우 분쟁을 신청하거나 소송을 제기했는데, 사실 그간 약간 엉거주춤한 자세였다. 실손보험 가입자가 필요 서류를 내기에 소송 대상도 보험 가입자, 즉 그들의 고객이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은 약간 억울한 점이 있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보험금을 성실하게 지급했다”며 “고객과 싸우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객과 소송하는 건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고 금융당국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병·의원에서 직접 필요 서류를 받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보험사들은 과잉진료나 유도진료가 의심될 경우 서류를 낸 주체, 병·의원을 상대로 소송을 걸 수 있다. 나아가 보험사기 의심이 들면, 형사 고소도 가능하다.

 

생명·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손해보험사 분쟁신청 건수는 1만6967건, 소송 건수는 75건이다. 생명보험사 분쟁신청 건수는 2690건, 소송 건수는 13건이다. 손보사 실손보험 분쟁 비중이 높은 건 주로 손보사들이 실손보험을 팔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분쟁신청에 비해 소송 건수가 극히 적은 편이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달라질 것”이라며 “소송 건수가 수십 배로 부풀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개정안을 통해 보험업계는 실손보험금 누수를 막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고객과 싸우지 않게 돼 그만큼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실손보험금 누수 방지로 얻을 수 있는 편익이 소액 보험금 지급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추정돼 보험사들이 찬성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개정안의 법사위 통과 후 의료계는 울상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이미 많은 의사들이 보험사로부터 줄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병·의원 대다수는 규모로는 중소·중견기업 수준이라 대기업인 보험사를 소송전에서 감당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사실 그간 병·의원들은 실손보험에 기대 많은 돈을 벌었다”고 했다. 의사들은 비싼 진료비를 받을 수 있는 비급여 진료(국민건강보험에서 보장하지 않는 진료)를 선호하는데, 당연히 가격이 높아서 환자들은 부담스러워한다. 병·의원은 진료비를 실손보험금으로 처리해 환자들이 부담 없이 비급여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수법을 쓰면서 과잉진료를 할 경우 즉시 보험사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앞으로는 보험사가 공격할 빌미를 주지 않도록 조심할 수밖에 없다”며 “병·의원 좋은 시절은 다 지나간 듯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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