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윤봉길 의거 94주년, '잊힌 조력자' 여성 투사 이화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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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거 94주년, '잊힌 조력자' 여성 투사 이화림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기사승인 : 2026-04-28 16:14:43
윤봉길과 함께 폭탄 투척 준비→조력자로 역할 변경
윤봉길 의거 전에 결행된 이봉창 의거 조력자이기도
김구와 결별…'백범일지'에는 이화림 이야기 안 나와
한인애국단 활동 경력 등 때문에 문화대혁명 때 고초

올해는 윤봉길 의거 94주년이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은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폭탄으로 일본 침략자를 처단했다. 독립운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많은 중국인이 한국인을 다시 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 동아시아의 대사건이었다.

24세 청년 윤봉길 혼자 준비한 의거가 아니었다. 의거를 기획·총괄한 한인애국단장 김구, 폭탄을 준비한 김홍일 등 함께한 이들이 있었다. 윤봉길은 물론 함께한 이들 중 다수도 그간 많은 조명을 받았다.

그와 달리 의거를 함께 준비하고 윤봉길을 도왔지만 오랫동안 잊힌 사람도 있다. 윤봉길보다 세 살 연상인 여성 독립투사 이화림이 그런 경우다. 

 

▲ 노년의 이화림(왼쪽 사진), 이화림이 다친 대원을 응급 처치하는 모습. [독립기념관 홈페이지 갈무리]

 

1995년 중국에서 출간된 '이화림 회고록'(원제 '정도(征途): 머나먼 여정')에 따르면, 처음에 한인애국단은 윤봉길과 이화림이 부부로 위장해 훙커우공원에 가서 폭탄을 투척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두 사람은 공원을 사전 답사하며 의거를 준비했다.

거사를 앞두고 김구는 윤봉길 단독 결행으로 계획을 바꿨다.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윤봉길과 달리 이화림은 일본어를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화림이 검문에 걸리면 거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화림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조력자 역할을 받아들였다.

이화림은 윤봉길 의거 석 달 전인 그해 1월 일본 도쿄에서 결행된 이봉창 의거의 조력자이기도 했다. 상하이에서 도쿄로 가져갈 폭탄을 바짓가랑이에 숨기는 데 필요한 비밀 주머니를 김구 지시로 만들어 이봉창에게 건넸다.

1905년 평양 태생인 이화림은 1930년 상하이로 망명했다. 1931년 한인애국단에 가담해 활동했다. 이화림은 상하이에서 사격과 무술을 배우고 김구를 도와 밀정 처단 활동 등을 했다고 생전에 밝혔다. 윤봉길 의거 무렵 김구와 긴밀한 사이였다는 얘기다.

김구의 '백범일지'에는 이화림 이야기가 안 나온다. 이는 그 후 이화림이 김구를 떠나 사회주의자로 활동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있다. 회고록에는 이화림이 김구를 존경하지만 투쟁 방식에 의문이 생겨 떠났다고 나온다.

김구와 작별한 이화림은 1930년대 후반부터 김원봉의 동지이자 아내였던 박차정이 이끈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의 일원으로 항일 선전 활동 등을 전개했다. 1943년에는 일본군과 전투가 벌어진 타이항산의 조선의용군 야전 병원 간호사로 활동했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든 1945년 초 의대에 진학해 의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의대 졸업 후에는 중국에서 의사로 일하는 한편 옌볜조선족자치주 인민대표 등으로 활동하다가 1999년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문화대혁명(1966~1976) 광풍에 휘말려 반혁명 분자로 몰리기도 했다. 홍위병은 이화림이 김구와 함께 활동한 한인애국단 시기 등을 문제 삼았다. 이화림은 1978년 복권되기는 하지만, 그에 앞서 3년간 외양간에 갇혀 지내는 등 고초를 겪어야 했다.

2015년 국내에 번역 출간됐으나 절판됐던 '이화림 회고록'이 지난 3·1절을 맞아 재출간됐다. 많은 한국인이 오랫동안 모르고 지냈던 윤봉길·이봉창 의거 관련 이화림의 활동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다. 식민지 조선의 한 여성이 어떤 과정을 거쳐 독립군 여전사로서 대륙을 누비며 살아갔는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료이기도 하다.

이화림에 대한 서훈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분단이 지속되는 한 서훈은 쉽지 않은 문제다. 이화림이 한국전쟁 때 중국·북한군 진영에서 군의관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KPI뉴스 / 김덕련 역사전문기자 kdr@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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