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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란의 토닥토닥] 새 학기, 새 교실…'내 자리'는 어디에?

UPI뉴스
기사승인 : 2019-03-27 08:00:42
청소년과 부모를 위한 코칭
▲ 직장인이나 학생에게 자기 자리는 매우 중요하고 상징적이다. [셔터스톡]

 

오랜만에 햄버거를 먹으러 동네 어귀의 가게에 들렀다. 하교 시간 언저리여서 가게 안에는 몇몇 여학생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크게 이야기하는 소리가 내 자리까지 들렸다.


 "아우, 걔 작년에도 짝이 된 적이 있는데 수업 시간에 맨날 중얼거리고 준비물도 안 가져와서 내꺼 빌려가서는 안주고 힘들었는데 또 짝이 됐어. 학교 가기 싫어"


"우리 선생님은 맨날 번호 순으로 강제로 앉게 해. 아무리 말해도 안 들어주고 한 달에 한번 분단만 바꾸니까 내 눈이 사시가 될 지경이야. 그리고 왜 남학생 여학생을 따로 앉혀? 이상해"


"야, 우리 반처럼 남자애들하고 같이 짝하는 것도 힘들어. 체육 시간 끝나고 오면 얼마나 냄새가 나는지, 그리고 수업 시간에 잠자는 애하고 짝 해봐라. 코 고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야. 집중 안 돼"


"헐, 너 코 고는 소리도 장난 아니야. 흐흐!"


 "뭐? 너 화장품 냄새도 머리 아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과학시간에 실험실 가고, 영어시간에 영어전용실에 가고, 음악 시간에 음악실에 가는데 교실에서 왜 고정된 자리를 굳이 정하지? 그냥 오는 대로 자리 정하면 안 될까? 수준별 수업하러 다니다 보면 우리가 학급교실에 있을 때도 몇 시간 안 되잖아?"


이렇게 시끌벅적 이야기하는 친구들은 심신이 건강하게 보인다. 서로 이야기하는 가운데 감정이 해소되기도 하고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직장인이나 학생에게 자기 자리는 매우 중요하고 상징적이다. '책상 빼!'라는 말은 IMF 이후 한동안 직장에서 자기 자리가 없어지는 뜻으로 통용되어 왔다. 직장에 다니지 않는 어느 전업주부는 "전 아침에 출근하고 직장에 가서 자기의 자리에 앉아 소속감을 느끼면서 차 한잔하고 업무를 시작하는 모습을 그려보곤 해요. 숨 가쁜 직장생활이겠지만 그런 로망이 있어요"라고 말한다.

 

고된 사회생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자기 자리가 있는 삶'이란 안정감이 있고 인정받는 삶의 '로고'같다. 더구나 그 자리에 햇볕이 잘 들고, 소통이 잘 되는 동료가 가까이 있다면 작은 행복감마저 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자기 자리'란 그야말로 그 자리에 맞는 업무와 역할을 가리키는 공간일 뿐이다. 학생들은 학창시절에 그런 사회생활의 바탕이 되는 체험을 한다.

 

교실에는 학생이 앉는 자리가 있다. 한 주 단위, 또는 이 주 단위로 자리를 바꾸기도 하는데, 학년 초에는 자리바꿈을 자주 하지 않는다. 교사는 일단 학생들이 아이스브레이크를 할 수 있도록 서로 낯을 익히고 성향을 파악할 때까지 3월엔 보통 고정된 자리에 앉도록 한다.

 

대부분 새 학급에서 앉을 자리를 정할 때 교사의 지시로 학생 이름의 가나다 순서로 앉게 하는 경우가 많다. 키 순서대로 앉기도 하지만 대개 출석부에 적힌 순서대로 자리를 정한다. 간혹 등교하는 대로 자유로이 앉는 학급도 있다. 그러나 성장과정에 있는 학생들이 다양한 친구와 사귀지 않고 친한 친구들끼리만 앉을 우려가 있어 3월에는 그런 시도를 잘 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는 '교실에서 어느 자리에 앉느냐'가 큰 관심사이다. 자리를 바꾸는 시간이 되면 교실은 그야말로 아이돌 공연을 앞둔 때처럼 술렁인다. '이번엔 누구와 앉게 될까, 앞에 앉게 될까 뒤에 앉게 될까, 창가일까 복도 쪽일까' 하면서 사소한 변화에 대한 기대를 품는다.

그 동안 앉았던 의자와 책상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서 이동할 때 자기 책상과 의자를 그대로 가지고 가는 때가 많다.

 

교사는 자리 정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하며 고민하기 마련이다. 학교생활에 적응이 어렵다고 생각되는 아이에게는 학업에 진지하고 성숙한 친구를 짝으로 해 본다. '몸이 불편한 친구는 잘 도와줄 수 있는 친구 옆에, 눈이 나쁜 친구는 앞자리에…' 등으로 고려한다.

 

미리 짝이 되기로 언약을 한 친구들이 있고 불행하게도 누구도 함께 앉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도 있다. 앉으려 하는 자리를 보면 그 친구들이 어떤 성향을 지니고 어떤 친구들을 좋아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곁에 앉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 또 누구와 앉아도 별 상관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아이들은 교사의 배려가 필요하다.


만약 자녀가 학교에서 앉는 자리 때문에 수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거나 등교하기 싫다거나 할 때는 잘 들어주고 공감하되 정황을 파악해본다.

 

어떤 경우는 뒤에 앉은 아이가 심심풀이로 샤프심 따위로 앞에 앉았던 학생의 등을 콕콕 찌르는 장난을 해서 문제가 되었다. 앞에 앉은 아이가 수개월 동안 참고 지내다 감정이 폭발한 적이 있었다. 그럴 경우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간하기가 매우 어렵다.

 

많은 학교 폭력 사건이 한순간의 우발적인 감정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교사는 평소 자리를 정할 때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지도할 수밖에 없다. 부모로서는 자녀가 특별한 말이 없이 다닌다면 좋은 거고, 계속 불평을 이야기하면 투정인지 진짜 불편하고 힘든 상황인지 구별해 볼 필요가 있다.

 

일단 자녀가 직접 선생님께 이야기해보도록 하는 게 좋다. 부모님이 처음부터 세세하게 나서면 아이의 자존감이 상할 수도 있다. 자녀가 짝이나 앞뒤에 앉은 친구들을 단순히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고민할 때 사람이 항상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들하고만 지낼 수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외국여행을 해 본 사람이라면 자신이 낯선 이방인 취급을 당해 아무도 곁에 오지 않는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을 듯하다. 이탈리아의 폼페이에서 나폴리로 가는 기차를 탔을 때였다. 마주보며 가는 자리였는데 내 옆에 아무도 앉지 않았다. 그리고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그 지역 학생들은 무리지어 서서 갔다. 빈자리가 충분했는데도 그들은 낯선 나라의 여행객 주변에 앉지 않았다.

 

내가 함께 앉기 싫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살다보면 내 곁에 앉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나의 고유한 성정을 이해하고 나의 개성을 알아주고 따스하게 안아주는 이는 생의 어느 주기에서나 많지 않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매일 다양한 친구와 더불어 배워야 하고 한 공간에서 지내야 한다. 학창시절에 공간과 시간을 함께 해야 하는 처지라면 상대방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고 그때그때 합리적인 방책을 구하는 편이 낫다.


가끔 전철을 타다 보면 빈자리가 눈에 띄어도 앉지 않는 자리가 있다. 사람들이 그 자리의 옆을 살피고 가까이 가지 않는다. 어떤 의미로든 불쾌하지 않을까 해서다. 반면 아무 거리낌 없이 금방 가서 앉게 되는 자리가 또 있다. 누구나 앉고 싶어 하는 자리는 아마 일순위가 어린 아이 옆이 아닐까. 멋진 젊은이 옆에 앉고 싶은 마음들도 있겠지만 보통 더 선호하는 자리는 아이 옆이리라. 아이의 맑은 기운과 에너지가 자신에게까지 전해지는 느낌 때문일 터다. 전철 안에서 내가 남에게 주는 인상, 또 남이 내게 주는 인상이 절묘하게 작용되어 시시각각 앉는 자리가 정해지는 걸 보면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자녀가 간혹 자기가 원하는 자리에 앉지는 못하더라도 곁에 있는 친구를 이해하고 서로 적응해가는 과정은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경험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박형란 청소년상담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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