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멕시코 아티스트 '마뉴엘 솔라노', 손끝으로 본 '밝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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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아티스트 '마뉴엘 솔라노', 손끝으로 본 '밝은 세상'

제이슨 임
기사승인 : 2023-12-11 10:15:02
26세에 시력 잃어버렸지만,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
'포토그래픽 메모리'에 손끝으로 만든 '촉각 회화'
'긍정의 에너지' 전하는 한국 첫 전시 '파자마', 내년 1월14일까지
▲ Mexican Artist Manuel Solano. [심그린, SayArt(세이아트)]

 

두 눈을 감은 채 손끝으로 캔버스 위를 누비는 아티스트. 때론 탱고 리듬을 탄 듯 경쾌하게, 때론 블루스 박자처럼 잠시 머뭇거린 채. 서서히 그의 손끝을 떠난 유체는 캔버스 위에 흔적을 남기며 새로운 초감각 우주를 생성한다.

26세의 꽃다운 나이에 시력을 잃어버렸지만,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한 멕시코 화가 '마뉴엘솔라노'의 이야기다. 한국에서의 첫 전시에 부쳐 그는 "전시를 찾는 모든 한국인도 유년기로 돌아가 자신 속에 살아 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하길 바란다"며 느린 말투에도 밝은 웃음을 전했다.

▲ 페레스 프로젝트가 진행하고 있는 마뉴엘 솔라노의 한국 첫 전시회 '파자마' [심그린, 세이아트(SayArt)]

 

그의 한국 전시 타이틀은 '파자마(Pijama)'다. 전시장을 찾는 이들의 반응은 천양지차다. "암흑에 살지만, 솔라노의 그림은 밝은 세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아요"라는 이도 있고 "앞이 못 보는데 어떻게 그림을 그리죠"라며 그의 예술 세계를 기예처럼 여기는 이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시력 장애를 갖고도 자신의 예술 감성을 표출해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된 그의 성공 스토리와 작품에 드러나는 그의 긍정의 힘은 오히려 시력을 가지고도 자신만의 지옥에 박혀 사는 수많은 현대인에겐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가 빛을 잃은 시기는 대략 10년 전이다. HIV 관련 합병증으로 그는 결국 작가에겐 생명 같은 빛을 잃고 말았다. 처음엔 처지를 비관하며 야속한 운명을 향해 저항했다. 그런 그의 감정은 당시 화폭에 고스란히 지뢰처럼 숨겨져 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이런 자신을 극복했다. 차츰 분노가 가라앉자, 캔버스도 자신이 처한 우주도 예전의 것이 아니었다. 어둡던 세상이 더는 어둡지 않았다.  

 

▲ 담당 큐레이터가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Manuel Solano Mi Primer Beso, 2023 Painting - Acrylic on canvas Courtesy Peres Projects. [심그린, 세이아트(SayArt)]

 

앞을 볼 수 없으니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었다. 우선 손에 쥔 붓은 거추장스러웠다. 그는 아예 두 팔을 걷고 캔버스 위에 손끝을 놓았다. 서서히 손끝을 타고 오르는 감각은 그에게 희망을 주기 시작했다. 캔버스 위에 못, 핀, 줄을 놓아 손끝 길을 만들기도 했다. 그만의 유일한 방식인 '회화의 촉각화'가 실현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극도로 그의 예민해진 더듬이는 붓만큼이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낼 수 있었고 눈보다 더 정확히 사리를 분별하기 시작했다.

전시 타이틀인 '파자마'는 이런 그의 작품세계를 포괄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다. "파자마는 잠잘 때 입는 옷이죠. 편안하고 친밀한.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준 파자마를 기억해요." 과거와 연결된 긍정의 에너지를 그는 파자마란 주제를 통해 현재와 연결하고 있다.

▲ Manuel Solano Pijama, 2023 Painting - Acrylic on canvas. [심그린, 세이아트(SayArt)]

 

그는 사실 잠시 자리를 옮길 때조차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에 종종 애플리케이션이나 보조자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그의 모든 작업은 혼자의 몫이다. 볼 수 없는 건 장애지만 한번 본 것을 사진처럼 찍어 기억해 내는 '포토그래픽 메모리(Photographic Memory)'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 대한 욕망은 거세지만 현실적 장애로 그는 일 년에 작품 열점도 채 완성하지 못한다. 그래도 그의 기억의 통로에 저장된 스냅숏(Snapshot)은 매번 캔버스에서 '긍정의 에너지'로 되살아난다. 이런 환희의 순간은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로 번지고 있다.

한국 전시엔 최근 신작들 위주로 꾸려졌다. 'La Patita(2020)', 'As A Child(2015)'와 같은 영상 작품도 관객을 맞고 있다. 1990년 캠코더로 찍은 고전미 있는 가족 영상은 미래 아티스트인 솔라노의 어린 시절을 훔쳐볼 기회를 준다. 또 부모의 침대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 솔라노의 자화상인 담긴 전시 타이틀과 동명인 'Pijama(2023)'와 장난감과 사탕을 든 '피냐타'와 싸우는 장면이 담긴 'Big Bird(2023)'는 영상 속 순간들을 회화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 Manuel Solano, Big Bird, 2023 Painting - Acrylic on canvas, Courtesy Peres Projects.

 

그는 이미 세계 유수 기관인 영국 던디 컨템포러리 아츠(Dundee Contemporary Arts, 2022)를 비롯해 상파울로 피보(Pivô, 2021), 리스본 쿤스트할레 리사본(Kunsthalle Lissabon, 2021), 마이애미 현대미술연구소 (ICA Miami, 2021), 멕시코시티 카리요 길 미술관(Museo de Arte Carrillo Gil, 2016) 등에서 여러 차례 주목할 만한 개인전을 선보였다. 또 노르웨이 호비코덴의 헤니 온스타 아트센터(Henie Onstad Art Center, 2022), 파리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 2019), 개리 캐리온 무라야키(Gary Carrion-Murayari), 알렉스 가텐필드, 뉴욕 뉴뮤지엄(2018) 등 단체전에도 참여했다. 특히 그의 작품은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에 영구 소장돼 그를 세계적인 아티스트라 부르는 데 부족함이 없게 했다.

 


 Courtesy of SayArt(세이아트)

 

계묘년 '검은 토끼의 해'가 저물고 있다. 12월 어느 날 오후에도 관객의 발길은 이어지고 있다. 편견일지 연민일지, 더러 관객의 눈길 속엔 그를 향한 동정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잠시 전시장을 둘러본 이들은 금세 그가 '어떤 현대인보다 밝은 우주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올해조차 그에겐 '하얀 토끼의 해'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한국 갤러리계에 긍정의 에너지를 사방에 뿜고 있는 멕시코 아티스트 '마뉴엘 솔라노'의 한국 전시가 주목받는 이유다.

이번 전시는 세계 유명갤러리인 '페레스프로젝트 서울'가 진행하고 있으며 2024년 1월 14일까지 이어진다.

 

KPI뉴스 / 제이슨 임 아트전문기자 Jasonyim@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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