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최(78)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라디오코리아'의 간판 방송인이었다. 37년간 매일 새벽 3시 출근해 아침방송을 진행했다. 라디오코리아는 LA 한인타운의 상징이자 구심점이었다.
그런 라디오코리아가 오랜 보금자리를 떠나면서 리처드
최도 마이크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본사가 멀어져 출근하려면 한시간 더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라디오코리아는 지난해 12월 오렌지 카운티 라팔마(La Palma)로 옮겼다.
현지 유력 언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타임스)는 6일자에서
이런 소식을 전하며 "라디오코리아 이전이 한인사회에 아쉬움과 상실감을 안기고 있다"고 촌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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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디오코리아 이전 소식을 전한 LA타임스 6일자 기사. |
LA타임스에 따르면 사옥 이전의 직접적인 원인은 재개발이다. 건물주 제이미슨 프로퍼티스(Jamison Properties)가 해당 상업용 건물을 저소득층 주택으로 재개발하기로 하면서 퇴거가 불가피해졌다.
라디오코리아 마이클 김 CEO는 "1992년 폭동 당시의 상징성을 고려해 LA에 남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주차 공간과 비용 문제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라디오코리아는 팬데믹 이후 지속된 광고 수익
감소 등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결국 라팔마 건물을 매입했다고 한다.
또 김 CEO는
한인타운의 한인 인구 비율이 줄어드는 반면, 가든그로브와 부에나파크 등 오렌지카운티에 새로운 한인타운이
공식 지정되며 성장하고 있는 현실도 언급했다. 다만 라디오코리아는 여전히 LA에 소규모 위성 사무실을 운영하며, LA 지역 보도는 변함없이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1992년 LA 폭동과 잊을 수 없는 유산이 많은 미주 한인들에게 라디오코리아는 단순한 방송국 그 이상이다. 1992년 4.29 LA 폭동 당시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한 한인 사회에서 라디오코리아는 비상 연락망이자 재건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 당시 최 씨를 비롯한 직원들은 24시간 철야 방송을 하며 청취자들의 전화를 통해 실시간 피해 상황을 중계하고 한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공헌했다.
라디오코리아 이전은 한인 사회에 큰 상실감을 안겨주고 있다.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며 커뮤니티 활동을 해온 혜빈 임(Hyepin Im)은 "1992년 당시 그들이 한인타운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큰 차이를 만들었다"며 사옥 이전이 커뮤니티의 손실이라고 말했다. 많은 한인 가족들이 오렌지카운티나 다른 외곽 지역으로 이주하고 있지만 여전히 LA 한인타운은 미주 한인 사회의 '감정적, 상징적 중심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최는 "아무리 많은 한인들이 오렌지카운티로 이주하더라도 한인 사회의 상징적 중심은 여전히 한인타운"이라고 말했다.
KPI뉴스 / 유충현 기자 babybu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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