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뉴스 - 16세 일본 소녀 청주 3.1운동 목격하고 박열과 함께 일제에 항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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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일본 소녀 청주 3.1운동 목격하고 박열과 함께 일제에 항거

박상준 Google구글에서 선호하는 출처로 추가
기사승인 : 2023-04-30 10:36:19
일본의 양심 '가네코 후미코'와 '후세 다쓰지' 5월 독립운동가 선정 일본 요코하마 출신 16세 소녀 가네코 후미코는 1919년 3월 고모 집이 있던 충북 청주에서 3.1운동을 목격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박열을 만나 평생을 조선독립에 헌신했다.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이 펴낸 반일잡지 '후토이센지' 2호.[독립기념관 제공]

또 미야기현이 고향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변론을 맡아 일제 식민지 지배의 부당성을 비판했다.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가네코 후미코, 후세 다쓰지 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야외특별기획전시장에서 연다.

가네코 후미코는 19세때인 1922년 박열과 만나 흑우회(黑友會), 불령사(不逞社) 등의 아나키스트 단체에 참여해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글 등을 발표했다.

관동대지진 당시 일경에 붙잡혀 심문받던 중 일왕과 요인 처단 계획이 드러나자 1926년 2월 26일 열린 대심원 1차 공판에서 박열과 함께 한복을 입고 등장해 법정투쟁을 전개했으며 1926년 3월 25일 사형선고를 받았다. 

일제는 회유목적으로 은사령(恩赦令)을 내렸지만 그녀는 문서를 찢어버리는 방식으로 저항했고 그해 7월 옥중에서 사망했다. 정부는 그녀의 공훈을 기리어 2018년 애국장을 추서했다.

▲1925년 후세 다쓰지 변호사가 김지섭 의사 동생인 김희섭에서 보낸 편지.[독립기념관 제공]

후세 다쓰지는 1919년 2·8독립선언으로 붙잡힌 재일 한인 유학생을 변호한 것을 시작으로 지속적으로 한국 독립운동을 지지했다. 1926년엔 법정투쟁을 벌이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변론을 맡아 일제 식민지 지배의 부당성을 비판했다.

이후 1926년 동양척식주식회사와 봉건 지주층을 상대로 한 전남 나주군 농민들의 토지반환 투쟁을 도와 한국 농민의 입장을 대변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04년 애족장을 추서했다.

KPI뉴스 / 박상준 기자 psj@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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